코코어 [Fire, Dance with Me]
아주 오래전에 음악 웹진을 하면서 쓴 리뷰가 있지만 지금 보면 마음에 안드는 것도 많고, 억지로 쥐어짠 것들도 많았다. 이것도 쓴 지 거의 거의 15년은 넘은 것 같다. 하지만 이 앨범의 경우 애정을 갖고 썼었다. 시대를 앞선 음악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또 국내 인디 명반이라고도 생각하기 때문에 올린다.
영화든, 음악이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도그마 선언으로 유명한 라스 폰 트리에가 말하길 '영화는 신발 속 돌멩이 같아야 한다.', 즉 유희의 매체로서가 아닌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소리다. 코코어의 음악으로 말하자면 절대 '편한' 음악은 아니다. '불편하다'라고 단정짓기엔 인디 음악 1세대들, 또는 소수 매니아 층에 의해 뜨거운 지지를 받는 소신의 밴드이고, '편하다'라고 하기엔 요즘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멜로디에 훅 달린 밴드들처럼 쉽게 보이지도, 쉽게 들리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맨 처음 코코어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코코어의 음악이 너바나(Nirvana)와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실제로 그들은 90년대 얼터너티브의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건 굉장히 싱거운 이야기다. 요즘 음악 하는 사람들치고-특히 록 음악-90년대 음악 한 번 안 들어 본 사람이 있겠느냐 만은, 놀랍게도 90년대 얼터너티브의 감흥을 기똥차게(이 말이 꼭 하고 싶었다!) 표현해 낸 밴드는 단 코코어 밖에 없었다. 너바나의 대표작인 'Smells Like Teen Spirit'가 저변에서 수면으로 오를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그 유명한 중간 가사 '"Hello, Hello, How Low?(넌 얼마나 저속하니?)" 같은 언어유희에 숨겨진 기존 세대를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에도 있다. 쓰리코드로도 음악이 되고, 분노도 되고, 이것을 좋아할 팬들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커트 코베인은 죽었지만, 그런 비슷한 코코어는 살아있다.
여기서 이 얼터너티브의 후예들은 21세기 새로운 예술로 승화되기 시작한다. 이우성, 황명수, 김재권 이 세 사람의 각자 다른 음악이 모이고, 한때 속옷 밴드의 드러머였던 정지완이 뭉쳤다. 각기 색깔도 뚜렷하다. 황명수의 음악에는 오리엔탈적인 요소와 싸이키델릭이 배합되어 있으면서도 4-50년대 때, 장난감으로 많이 쓰인 카주(Kajoo) 라는 피리를 쓰기도 했다. 김재권의 음악에는 뉴 웨이브와 디스코, 일렉트로니카가 안락하게 들어가 있다. 오히려 보컬이 반주가 된 느낌이다. 이우성 이야말로 종잡을 수가 없다. 코코어 앨범 이전에 포크 프로젝트인 '싸지타'를 했던 느낌이 없지않아 남아있으면서도 랩을 한다든지, 멜로디를 거역하는 불안한 보컬 등 끊임없이 자신을 실험하고 또 실험한다(오히려 그에겐 이런 실험이 일상적인지도 모르겠다).
코코어의 는 길고 긴 한 편의 장황한 영화를 연상케 한다. 아무것도 없는 흰 색의 커버를 넘기면 깨알 같은 가사가 큰 여백의 옆에서 불온하게 정렬되어 있고, am과 pm이라는 경계선을 노이즈로 뭉갠 뒤, 일탈과 노동으로 범벅이 된 스린 청춘을 추상적으로 묘사하고, 초현실적인 사운드로 아물게 한다. 앨범을 열어보면 pm이 마치 a-side처럼 앞에 놓여져 있다. 술에 절여진 환각의 밤을 스르르 넘어서 am은 새벽이 된다. 눅눅한 하늘빛을 보이기 시작한 그 때 즈음에 구토로 회환을 개어내면, 다시금 am은 pm을 반복한다. 그 어지러움이 가시기 전에 무려 28분의 대장정 'Fire, Dance with me'는 그 수많은 곡을 단번에 압축하듯 무(無)의 세계에서 활화산 같은 불꽃을 터뜨린다.
라스 폰 트리에, 너바나, 그리고 코코어. 불편한 심상을 드러내는 이 아티스트들은 끈질기게 오래갔다. 철저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고, 자신들이 바라본 세상을 비틈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때론 우린 불편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자신이 모르던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이것은 당신을 예술로 이끌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음악을 이 땅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눈물겹다. 웬만한 영미 록 밴드 나와도 코코어와 바꾸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