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인데...
18.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친 뒤 이불을 뒤집어쓴 후에야 열무와 둘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해줄 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모든 말들이 이기적인 것만 같았다. 죄책감에 휩싸여 대부분 미안하다는 마음밖에는 전해지 못했다.
유산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 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것이 핑계였고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밤새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었다.
댓글을 달았던 글들 어디에서도 답장 온 곳은 없었고,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어 차선으로 생각했던 병원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썩 내키진 않지만 일단 병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보고 결정을 하기로 남편과 상의한 후 집을 나서던 그때였다.
진동이 울렸다. 댓글을 남겼던 한 곳에서 답장이 온 것이다.
"OOO산부인과에서는 수술 가능한 병원을 따로 알려주시지 않았어요. 유산하기로 하셨으면 빨리하는 게 맞긴 해요. 근데 13주 이상이면 다 유도분만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가던 분만병원에서 다른 곳 살짝 알려줘서 거기서 했고요. 제가 간 곳 분위기도 그렇고 쉬쉬하는 분위기라 알려드리긴 힘들고 대신 저도 정해지기 전에 이래저래 알아봤는데 가가산부인과, 나나산부인과, 다다 산부인과, 여기서 많이 하시더라고요. 상담 가보셔요. 맘카페 유산 방이 따로 있는데, 거기 들어가 봐도 많이 도움 많으실 수 있을 거예요."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을 이때 써도 되는 건가.
맘카페를 수없이 드나들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정보들이었고, 힘들게 찾아 해 매던 답변이었다. 본인도 힘드실 텐데 답장을 주신 분께 너무 감사했다.
다행스럽게도 저 중 한 곳이 친구에게 들어본 적 있던 곳이었다. 만족스럽게 진료받으면서 출산까지 한 곳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 그 병원으로 전화를 해 사정을 말씀드렸다. 상담사께서는 일단 선생님을 만나 봬야 하니 방문을 하라고 했다.
바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남편과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날씨는 참 화창도 하였다.
병원으로 가는 길, 이 길은 분명 열무와 함께인데 이 길을 돌아오는 순간은 혼자 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근근이 눈물을 참고 있던 그때 남편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은호(조카)가 감기에 걸려서 엄마랑 동생이랑 다들 병원 간다고 난리네."
'????'
평소 나도 시조카들을 좋아하고 아끼지만 오늘은 달랐다. 우리 아기는 하늘의 별이 될지도 모르는 날인데, 지금 이 상황에 조카가 감기 걸려서 병원 가는 걱정을 한다고?? 분명 나를 위로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아무 말이나 하려던 차에 생각 없이 뱉었을 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남편은 그랬다. 그렇지만 이해하는 머리와 서운함이 폭발하는 내 마음은 따로였다.
"지금 우리 아기 보내러 가는 거 아니야? 나는 마음이 찢어질 거 같은데 자기는 지금 조카가 감기로 입원한다는 말을 여기서 해야겠어?? 그 말을 듣고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기를 바라? 내가 내 아이 보내러 가는 길에 시조카 감기 걱정해 주게 생겼어? 자기 아빠 맞아?! 그래, 시어머님이랑 아가씨는 지금 나와 뱃속에 열무보다 손자, 자식의 감기가 중요할 수 있어. 전전긍긍 시간시간 내 걱정하는 우리 엄마와 손자 걱정이 먼저인 시어머니를 비교할 수는 없지. 근데 자기는 열무 아빠잖아! 열무는 감기 따위랑은 비교도 안되게 훨씬 더 많이 아파! 아빤데 왜 그걸 몰라?!!"
남편 입장에서는 티끌을 밟았는데 지뢰가 터지는 꼴이었겠지만 나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고 슬펐다.
남편은 어찌할 바 모른 채 사과하며 우선 나를 진정시켰고 우리는 엉망진창인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어리석은 부모라서 열무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모습이 결국 이런 꼴이 돼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