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낼 결심
16. 아직 심장이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
2024년 12월 12일.
13주 4일. (아기크기 12주 3일 추청)
열무와 우리 부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을까...
태어난다 해도 평균 한 달을 채 살지 못한다는 기형 진단을 받았지만 아직 심장이 뛰고 있다.
내 선택으로 아기가 하늘나라로 간다니...
차라리 뱃속에서 심장이 멈추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했다.
"내가 엄만데!! 심장이 뛰는 내 아기를 보내야 해!! 어떻게 그래!! 엉엉엉..."
슬픔은 점점 분노가 되어갔다.
양가 부모님과 남편은 이렇게 된 거 산모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보내주자고 하셨다.
중기유산, 그러니까 13주 차부터(상황마다 다를 수 있음)는 수술이 산모에게 위험해져 분만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을 아는 엄마와 남편은 더더욱 하루도 지체하지 못하게 했다.
엄마에게는 뱃속에 태아보다 내가 소중한 게 당연했고, 하루하루 내 걱정만 가득했다.
분만은 보통 1박 2일, 길게는 2박 3일을 진통하고 심장이 멈춘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엄청날 것 같아 나도 제발 그 고통만은 피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내 손으로 아기를 보낼 병원까지 알아봐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어 비통함의 눈물이 두배로 흘렀다. 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도에 떠 밀려가듯 일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멈출 도리가 없어 더 아팠다.
급하게 검색창 광고에 나와있는 병원을 찾아 가보기도 했다.
"사실 이 주수에 오시는 분들은 거의 없어서... 원장님과 상담을 하셔야........"
"네."
'경험이 거의 없구나.. 이 병원은 안 되겠다.'
접수창구 상담원의 한마디로 열무를 이곳에서 보낼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나와 비슷한 임산부의 경험이 많은 분만병원을 찾아야 했다. 일단 접수는 해놓은 상태라 원장 선생님의 상담은 진행되었다.
"......(생략) 이런 상황입니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주수가 많이 차있다. 그죠? 비용이......"
내 상황을 하나도 공감하지 못한 표정과 말투, 위험하지만 비싼 비용을 감당하면 해주겠다는 식의 발언이 굉장한 불편함으로 다가왔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소 죄송스러운 질문을 했다.
"혹시 14주 이상도 갈 수 있는 분만병원을 아실까요? 암암리에 진행하다 보니 정보 얻을 길이 너무 막막하네요. 저 같은 경우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좀 도와주세요..."
조금은 안 됐었는지 포스트잇에 병원 이름 하나를 적어주셨다.
"아직도 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감사합니다."
그렇게 낡고 오래된 분만병원 전화번호 하나를 겨우 받아왔다.
온종일 흘러대고 있는 눈물 탓에 옷이 젖을 정도였지만, 아기를 조금 더 잘 보내주기 위해 검색창, 블로그, 카페의 글들을 찾아 나와 비슷한 상황, 같은 지역이다 싶으면 모조리 댓글을 남겨댔다.
"안녕하세요.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실 텐데,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슷한 상황이고 너무 답답한 마음에 질문드립니다. OOO산부인과에서 에드워드 1차 확진받았습니다. 2차 확진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면 선유(선택유산) 방법도 바뀌고 14주 이상 수술해 주는 곳이 없더라고요. 혹시 OOO산부인과에서 2차 확진을 받으면 선유병원을 추천해 주시나요? 제가 다니던 분만병원에서는 사산아가 아니면 수술은 불가하다 하셔서 급하게 병원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간곡히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수시로 분노가 치밀었다.
"아기랑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아기를 보내기 위한 시간들로 채우는 게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리 가혹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