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오늘은 무슨 색이지? 미세먼지가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도 어김없이 일어나 발을 내딛고 하염없이 하늘을 봐본다.
뿌얗다 그리고 밝다. 탁한 하늘색 앞에서 자주 가는 카페 야외 의자에 잠시 걸터앉아 멍을 때려본다.
미세먼지멍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듯하다.
야채는 먹여야겠고 생선도 먹여야겠고 뭇국도 먹여야겠고 계란도 먹여야겠고 다 먹여야 되는데 한두 가지 성공 후에 간신히 등원을 시켰다. 오늘 어디가?라고 몇 번이나 묻는 아이는 아마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었던 것 같다. 나도 일하러 가기 싫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기 싫고 하지만 그래도 하기 싫은 걸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싫고.
세상에 덧없음을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알 텐데 그것도 참 가슴이 아프다. 아이는 나를 닮아 민감한 오감을 갖게 되었다 그중 청각이 가장 민감하다.
남편과 다툴 때면 고작 33개월 아이가 시끄러워! 귀 아파! 하고 말리곤 한다. 정말 시끄러운 게 아니라 괴로워서 내는 소리가 분명했다. 다투는 것이 가장 죄악이라는 것을 알면서 컸으면서도 참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고 죄스럽다.
남편은 육아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다. 나에게 전적으로 맡겼지만 그것도 인정하지만 나를 열받게 자신 마음대로 행할 때가 있다.
“안 먹으면 내버려두어” 성장기에 가능한 말인가.
“안 먹을 거 같은데” 새로운 음식을 입에 넣기 직전에 하는 말이 적합한 말인가.
“아빠 뽀뽀시간이야 “ 싫어하는 아이에게 행해도 되는 말인가.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 나쁜 엄마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 가스라이팅 맞는 말인가.
“아빠가 만든 거 부시면 어떡해! 하...” 같이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에 한숨이 적합한가.
답답한 마음으로 지내다가 결국 내 온몸엔 화병이 번져버렸다. 분노조절이 잘 안 되고 어느새 표정은 없어지고 아이에게도 영향이 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참으로 덧없는 책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