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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 Mar 08. 2022

내가 성인 ADHD 일지도 몰라

나는 성인 ADHD가 맞을까?


이번 주 할 일: 정신병원 내원


캘린더에 적어 넣으면서도 현실감이라곤 없었던 단어들. 여느 때처럼 말짱한 정신과 의지로 또박또박 적어 넣은 일정이었다. 그것도 아주 우선순위가 높은 일로 말이다.


언제부턴가 혹시 내가 ADHD가 아닐까? 의심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생각을 하다가도 금세 잊곤 했는데, 내 집중력을 방해하는 문제보다 집중을 요해서 월급과 맞바꿔야 하는 업무 데드라인이 주는 압박이 더 셌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 일 욕심과 책임감은 있었기에 나름 우선순위도 잘 세워서 해야 할 일들을 쳐내곤 했다. 이게 선생님이 이야기한 성인 ADHD 특성 중 하나인 사회화 잘된(?) 케이스 인지도 모르겠다.  


내 집중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분 단위로 떠올리게 된 건 퇴사 이후였다.


정확히 말하면 퇴사를 하고, 창업을 하고, 그 브랜드를 접고 다시 0으로 돌아간 이후. 이제 다시 0으로 돌아갔으니 뭐라도 시작해야 하는데 정말 마음과는 달리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하다 못해 블로그에 글 쓰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무기력이었다. 마음은 급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결국 스스로를 탓하게 되고, 시간은 무의미하게 흐르고, 이런 것들이 반복되어 결국 우울해지고 마는 날들이 계속되던 와중, 지인 중 하나가 브런치에 ADHD 진단과 치료 과정에 대해 글을 쓴 것을 보게 됐다.


그 지인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스타트업 업계에서 나름 잘 알려진 일잘러였는데, 누구보다 성실하고 똑똑하게 일도 잘하고 일 벌이는 것도 선수급이던 그 사람이 ADHD 였다고?


놀라운 마음에 글을 자세히 읽게 됐는데.. 어? 증상들이 나와 매우 비슷하다?


내가 집중도 시작도 못하고 있는 건 그냥 어서 나를 탓하고 채찍질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돌보고 치료해야 하는 증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ADHD 간이 검사 같은걸 찾아서 체크해보기까지 했는데 내가 정말 ADHD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 ADHD 자가 질문지와 온라인 테스트]

성인 ADHD 자가 질문지 <자료: WHO(ASRS-v1.1)>

https://testharo.com/adhd/ 




드디어(?) 정신병원을 방문했다


자가 테스트도 해보고, 여러 가지 관련 문서들을 더 읽고 나서 스스로가 성인 ADHD 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했던 당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건 일단 매우 비쌌던 검사비 때문도 있었지만, 정신병원을 예약하려고 알아보니 진료를 보기까지 무려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남 한복판에 있는 병원이라 1. 절대적 방문자수가 많을 것이고, 2.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의 상대적 수가 많을 것 같았다.


그렇게 여차저차 우선순위에서 점점 멀어지다 잊혀진 미션이 6개월 뒤 뿅 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나에게 그 어떤 스트레스도 압박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딘가에 긴 시간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에는 불안해서 그런가 보다 싶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마음은 평온한데 도무지 집중은 하기 어려우니 미칠 노릇이었다. 흥미로운 책을 읽어도 30분 집중도 어려웠다. 심지어 넷플릭스를 볼 때도 손 하나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건 스스로를 ADHD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기로 했다.


검사를 받아보고 만약 내가 ADHD라면 치료하면 될 일이다.

검사를 받아보고 만약 내가 ADHD가 아니라면 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면 될 일이다.


내가 ADHD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집중이 되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가 역시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느라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마치 내 잠재의식에 내가 문제가 있다고 끊임없이 새겨지는 기분을 느끼고싶지 않았달까.


그리고 드디어, 병원을 예약했다.


아무래도 몇 달 전에는 가지 말아야 할 핑계를 잔뜩 찾았던 게 아닐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도 성인 ADHD 진료를 보는 병원이 있었고, 바로 예약해서 진료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진료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간단해서 좋았다. 뇌파 촬영이나 정밀검사를 바로 진행하는 곳도 있지만, 이곳은 일단 간단하게 검사를 하고 약한 성분의 약을 복용해본 뒤 증상에 차도가 있다면 추가 검사나 증량을 실시하는 곳이었다.


ADHD와 관련해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전문의와 상담을 했다. 의사 소견으로는 ADHD일 수도 있으나 정도가 심하지는 않은 것 같고, 지금의 집중력 저하가 작년에 겪은 불안이나 우울의 여파일 수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인 ADHD의 경우 후천적 요인으로 스트레스가 심할 경우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이렇게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ADHD 판정을 받고 나서 1주일 분량의 약을 처방받았다. 내가 처방받은 약은 가장 함량이 적은 콘서타다. 부작용으로 심장 두근거리는 증상과 밤에 잠이 안 오는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반드시 아침 9시 전에 복용하라고 했다.



1주일 동안 내 집중력에 변화가 생길까?


나는 정말 ADHD 가 맞는 걸까?




번외) ENFP와 ADHD의 상관관계?


약간 논외긴 하지만 ADHD에 대해 알아보면서 좀 의아했던 부분은 성인 ADHD의 몇 가지 의심 증상들과 MBTI 유형 중 하나인 ENFP의 특성들이 겹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 (ENFP 맞음)


예를 들면,


1. 충동적이고 계획성이 없다.

2. 야심 차게 어떤 것을 시작했는데 끝까지 마무리짓지 못한 적이 많다.

3. 딴짓을 많이 한다.


혹자는 ADHD 환자를 '순간을 사는 사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는데, ENFP라면 한 번쯤은 들었을 이야기 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특성들이 심하게 나타날 경우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MBTI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내가 중도 ENFP(?)인 것에 감사했던 이유와 같아서 조금 놀라고 말았다는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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