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 사랑

by 수수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전 생애를 낭비한다.”


언젠가 어떤 잡지에서 만난 글귀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최근에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전 생애를 낭비하기 전에 나의 리듬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곁일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그러나 그건 아무 노력 없이 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와 친구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행위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기꺼이 감당하고 오늘까지 껴안고 온 ‘사랑의 수고’에 대해 말이다.


현재 내가 만들고 잇고 이어나가는 삶 앞에는 항상 친구들이 놓인다. 그들과 함께 만들어왔던 공통의 경험과 공동의 역사에 대해서 자주, 곰곰이 생각한다. 그것들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변화하면서 새로이 만나지는 것들과 또 한데 어우러진다. 우리의 관계가 언제나 진행형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살면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행운을 손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귀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그 운이 날아가 버리지 않게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운은 운으로만 남지 않고, 우리에게 필연처럼 짙은 흔적이 되었다.


언젠가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전 받은 메일에서 니키 리는 “우린 이렇게 사랑하고 웃고 그러다가 죽겠지”란 글을 썼다. 나는 그 문장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렇게 사랑하고 웃고 그러다가 죽겠지. 그것은 허무한 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한 자의 삶이다. 누군가들과 사랑하고 서로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삶에 대해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태껏 살아온 집의 모양들을 살펴보는 작업은 결국 내가 어떤 사람들과 살아왔고,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히 집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집 안에는 여러 촉감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고민과 지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이 있었다. 어떤 시절 나에게 씨앗처럼 자리 잡은 그 사랑은 해를 거쳐 가며 작아졌다가 커다랗게 되었다가 숨었다가 넓어졌다가 깊어졌다가 납작해졌다가 바깥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제 혼자 잘나서 만들어진 줄 알았던 사랑의 시작을 찾아가다 보니, 사랑으로 연결된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엄마가 거기 서 있었다. 오랜 노동시간과 가난에 치여 매일이 고된 삶을 살았던 명자는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는 것을 즐기고 살뜰하게 챙기던 사람이었다. 그런 명자가 내 몸에서도 잘 자라나고 있었음을 이 글을 마치며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명자를 나눠 받은 나연 역시 겉으로는 툴툴대고 짜증냈지만, 그의 몸속에는 타인을 보살피는 다정한 마음이 있음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사이에는 미움 같은 모난 것들이 잔뜩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서로를 생각하는 단단한 마음이 멋지게 존재했다. 그것을 품고 나는 오늘도 환대하는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예외적 사랑’이라 이름 붙였다.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이 너무나 모호하면서도 정확한 단어가 나를 설명하고 나와 맺는 관계들을 설명한다고 믿는다. 나는 여전히 나의 친구들과 놀 때가 질리지도 않고 너무너무 재미있다. 나만의 글이 아닌 우리들의 이 ‘예외적 사랑’ 이야기에 마무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다 들어가 있는 이내의 노래로 마무리 하고 싶다.

새로운 문이 열릴 때 두려워하지 않기를

마음을 열어올 때에 그대로 볼 수 있기를

슬픔이 찾아올 때에 끝까지 바라보기를

용기가 바닥날 때도 한 걸음 내어 딛기를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ㅡ 지금, 여기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ㅡ 우리, 함께

내가 외울 수 있는 유일한 주문 ㅡ 사람, 사랑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주문 ㅡ 지금, 여기

지금 여기,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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