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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14. 2024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_맡겨진 소녀

사랑이랑 것이 무슨 모양일까. 받아본 적 없고 배운 적 없는 소녀는 상상으로 어떤 판단을 하기도 하고 긴장을 하지만 ‘맡겨진’ 집에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엄청 다정한 표현은 아니더라도 충분한 돌봄과 끊기지 않는 사랑을 받는 일상을 보내게 된다. 사랑이 어떤 건지 몰라서 놀라거나 낯선 마음. 그러나 이 소녀가 이제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알았으니 그 뒤의 인생에 있어 그가 타인들과 또 자신과 주고받을 사랑에 대해, 사랑을 머금고 성장하고 살아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으로 소녀의 내일이 궁금했다. 비록 다시 돌아온 집에는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사랑의 흔적이 소녀에게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니. 사랑의 흔적이여, 소녀에게서 사라지지 말아주렴.


&쓰고나니 나에게도 맡겨진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엄마는 살림살이가 어려워 나를 외가에 맡긴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이든 이모•이숙의 등에 타기고 웃거나 그 집에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이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거기서 사촌언니에게 숟다락으로 이마를 맞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크리스마스라고 양말을 머리맡에 두고 잔 어린이에게 시골 두 노인이(엄마와는 이모보다 오히려 이모 자녀들과 나이차가 더 가깝다)  싱망시키지 않으려 넣어두었던 간식, 지금와서 보면 참 하찮은 그것이 오랜 시간 내 마음에는 남아 나와 함께 자라왔다.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다산책방


p17 아빠가 나를 여기 두고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아는 세상으로 다시 데려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제 나는 평소의 나로 있을 수도 없고 또 다른 나로 변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다.


p19 엄마는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들, 버터 만들기, 저녁 식사, 씻기고 깨워서 성당이나 학교에 갈 채비시키기, 송아지 이유식 먹이기, 밭을 갈고 일굴 일꾼 부르기, 돈 아껴 쓰기, 알람 맞추기.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여기에는 여유가, 생각할 시간이 있다. 어쩌면 여윳돈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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