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진_점거 당한 집
소설의 맨 첫 장을 읽고 잠시 책을 덮었던 것은 밀려오는 기억때문이었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점거에 잠입하여 취재하는 기자가 화자인 이 소설의 첫 장에는 ‘최루액’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명백한 국가폭력을 의미한다. 소설 속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을 점거한 시위대를 쫓아내기 위해 ‘최루액’을 이용했다. 점거하는 자들의 이유에 대해 아무리 생각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이것은 앞으로도 존재해야할 방식인가? 하물며 이 소설은 약 10년뒤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점인데도 말이다.
2015년 5월 1일 노동절로 머릿 속은 돌아간다. 경찰은 시민들의 행진을 막고 차벽을 만들고 캡사이신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시민들에게 뿌렸다. 세월호 사건 1년이 지나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하던 저녁밤이 그렇게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날 경찰들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경찰의 공격으로 밀리면 뒤에 있던 사람들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마침내 내가 앞에 섰을 때, 나는 경찰 대오 안으로 밀려들어가 넘어졌다. 그 잠시의 시간동안 나는 경찰들의 방패를 막던 ‘밖’에서 방패 ‘안’으로 경계지어졌고, 익명의 경찰들에게 온몸을 맞았다. 내가 아무리 당신들과 대치하는 것이라고 해도 이렇게 나를 짓밟을 권리나 이유는 대체 어디서 오는가. 발로 걷어차이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뜯기고 많은 욕설을 듣고 쫓겨나 울면서 걸었고 친구들을 만나 다시 부둥켜 안고 울었고 물대표를 맞으며 울었다.
이 책은 사회적 재난을 겪은 사회 속 시민들의 특히 예술 작업, 기록 작업으로서 작동하는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다. 10년 후의 시간이 현재 시점은 소설은 경주의 원전사고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데, 과연 이 설정은 우리가 소설 속 허구라도만 치부할 수 있을까. 작가와 같이 나 역시 빗나가고 말았으면 하는 이 재난의 설정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불안의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는 소설을 만나 반가웠고 슬펐다.
그리고 그 재난과 다른 재난, 사건, 폭력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있다. 나는 소설 속 금일이 사망된 것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금일을 비롯해 두 명의 여성을 더 살해한 남성’이 ‘하필 금일을 죽인 데 어떤 의도도 없었다는‘ 그 말 자체가 의도라고 생각하고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회정치적 소수자에게 향해지는 재난, 사건, 폭력들의 이유.
<점거 당한 집>, 최수진 소설, 사계절
p15 “하지만 정말로 비었다고는 하지 못할 거예요. 잊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억도 남아 있는 거지요. 안 그래요?"
의문문으로 끝맺는 눈 씨의 말버릇은 상대에게서 반박의 여지를 슬그머니 빼앗았다. 하지만 공정히 말해, 1980년대를 기억할 만큼 나이 든 시위대는 단 두 명뿐이었다. 겪지도 않은 역사를 기억하나, 못 하나는 문제가 아니다. 왜 다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지부터가 이미 짐스러운 문제다.
p24-25 불편은 도미노처럼 번졌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발에도 자주 걸러 넘어졌다.
내 말은 시위대 모두 딱 자기 역할만 수행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는 것처럼 굴었지만 정말로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같은 공간에 고립되어 지냈고, 마땅찮아하며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모두 더럽고 냄새나고 아프고 짜증 난 상태라 비틀 거리지 않기란 불가능했고, 그럴 때면 옆 사람이 부축해줬다. 무대는 지켜보고 기록하는 관찰자 덕에 존재한다.
p29 말로는 전해질 수 없는 부재를 눈 씨는 스스로 헤아리며 자랐다. 그리고 그 결과 남의 딱한 사정까지도 제 것처럼 거둬들이며 살게 되었다.
p31-32 그러니까 현재 진행 중인 시위대를 향한 고소의 쟁점을 나로서는 이렇게 축약하고 싶다. 역사와 예술이 포개진 전당은 어떻게 공공공간으로 기능하는가? 시민의 공공공간 점거가 언제 어느 때라도 부당한 거라면, 그곳을 짓밟고도 연이어 되풀이된 폭력은 누구의 책임인가?
p47 생각할수록 양 씨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어슬렁대며 둘러보다 보니 이곳이 꼭 임시 주거공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지 않고 분명한 목적지도 모르지만 우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돕고 단정해야 하는 구명보트.
p56 하마: 아니, 그런 식으로는 안 끝나겠지. 책임이란 인간이 질 수 있는 몫이 아니지. 지나간 시간은 누구도 책임 못 지지. 그러니까 지나간 시간도 인간에게는 대답하지 않지. 함부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마음먹은 인간에게는 아무도 대답 안하 지. 그런 자만하는 인간이 듣게 되는 건 자기 자신의 목소리 뿐이야. 그러니 물어보더라도 내가 바라는 대답이 들릴 거라 기대해서는 안 돼.
p166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올바른 정치적 용어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 무엇을 알게 된 척하고 싶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것을 모를뿐더러 앞으로도 정확히 알지 못할 거라는 사실만 알면서 쓰고 있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 나는 부끄럽게도 난해하고 에두르며 곁눈질하는 방식이기는 해도, 함께 걸을 동료를 구하고자 글을 쓰고 있다.
p167-168 나는 살인범이 지껄인 동기가 옳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필 금일을 죽인 데 어떤 의도도 없었다는 말. 가장 부조리한 일들은 이 세상에서 그냥 일어나 우리를 덮치곤 한다. 언제나 우리 중에서 가장 약한 쪽을. 가장 무르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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