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돈 Aug 07. 2024

불어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불어 쓰며 파리 올림픽 다녀오기

불어 배우고 싶다


“여기가 파리 맞을까요?”

“넌 어디라고 생각하는데?”

“Sortie?”

 

불어로 ‘Sortie’는 출구(Exit)! 청년은 출구라고 자기를 소개한 파리와 처음 만났다.


32년 전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일이다. 불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등 딱 표현 세 개만 알던 시절.


불어 레벨테스트 결과, A1(초보)은 완전히 넘어섰고 A2(초급)라기에는 좀 어중간한 상태임을 알게 됐다. 그사이 공부를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32년 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꽤 많이 늘었다는.. 이제 적어도 불어를 불어답게 대하기는 하고..




에어 프랑스 탔는데 승무원이 정말 ‘Bonjour!’라고 인사한다. 신기하다.


머릿속에서 불어로 작문을 다 해놓고도 막상 닥치면 커피 한 잔 달라는 간단한 얘기를 영어로 한다. 역시 40년 넘게 배우고 쓴 영어랑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불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별생각 안 해도 반사적으로 툭 튀어나오는 말과 짜내고 짜낸 뒤에도 어색해서 내뱉지 못하는 말이.. 그래도 그냥 막 좀 어떻게 해 보려고 하면 난데없이 독일어가 튀어나오려고 하기도 하고.. 좀 이따 착륙해서 불어에 완전히 포위되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어느 나라든 올림픽 출장길엔 영어 잘하는 사람이 주위에 가득하긴 하지만..




비가 오기에 우산을 쓰고 아침 먹으러 나왔다. 손이 모자라 앉을자리 옆에 먼저 우산을 놓고 식판 가득 음식을 담아 왔는데 우산이 없어졌다. 오늘부터 정장 입고 현장에 다녀야 하는데 우산이 없으면 정말 큰일이다. 주변 자원봉사자들에게 형편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내 입에서 뭐가 터진 듯 마구 쏟아져 나오는 영어. 역시 급하니까..


불어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입구 쪽 봉사자가 우산을 찾아가지고 왔다. 정말 고마웠다.


“메르시 보쿠!”


불어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불어로 물어봤는데 영어 대답을 들어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불어 대답을 들으면 제대로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ㅎㅎ


프랑스 사람들 영어 못한다는 얘기는 옛날 편견인 듯. 짧은 불어로 물으면 이내 영어로 좔좔좔 대답하기 십상이다.




구사 수준과 상관없이 어떤 언어를 써도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 게 기쁘다. 뭘 익혀도 구어, 특히 발음에 집중하는 덕인 듯. 각국의 polyglot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올림픽! 온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오늘 엘리제궁 앞에서는 경찰관과 100% 불어로 대화해 길안내를 제대로 받았다는.. “엘리제도 기뻐해!”




집에 간다. 이제 어지간한 불어 문장은 불어 비슷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평소 독어 읽던 수준 정도?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윤곽은 대충 잡는다.


J’aime Pari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