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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스타트 힐러 Mar 31. 2024

아빠의 선물

캐슈너트 떡국

“아들아~점심에 캐슈너트 떡국 먹을래?”

“네.” 경쾌하지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다는 듯 무심한 대답을 했다. 

“맛있게 해줄게.” 

아들의 마음이 변할까 부리나케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크리미한 것이 먹고 싶을 때는 캐슈너트 떡국이 늘 떠오른다. 나에게 떡국은 설맞이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 먹고 싶을 때 생각나는 음식이다. 

떡국에 캐슈너트를 넣으면 담백하고 고소해진다. 무엇보다 조리가 너무 쉬워 한 끼로 간단히 해결하기 좋다.

현미 떡국, 캐슈너트, 소금, 물만 있으면 조리하는 데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따로 육수 낼 필요도 없다. 

먼저 냄비부터 꺼내 물을 반도 안 되게 채운 뒤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냉동실에서 현미 떡국 떡과 캐슈너트를 꺼낸 후 캐슈너트만 미지근한 물에 담가 놓았다. 견과류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좀 더 크리미한 식감을 위해서였다. 그사이 가스레인지에 올려두었던 물이 보글거리며 끓기 시작했다. 냉동실에서 막 꺼낸 현미 떡국 떡을 찬물로 한 번만 휘리릭 행군 뒤 바로 물이 끓는 냄비에 투하했다. 현미 떡국 떡은 냉동상태에서도 끓는 물에 10분만 조리하면 금세 말랑말랑해진다. 먹고 싶을 때 바로 조리 가능해 현미 떡국 떡을 좋아한다. 끓는 물에 투하했던 떡국 떡이 말랑해질 때쯤 불려둔 캐슈너트에 물과 소금을 소량 첨가하여 믹서기에 돌렸다. 떡국의 크리미한 정도는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 캐슈너트 형체가 보이지 않게 부드러운 크림 상태가 될 때까지 믹서기에 돌린 후 이제 제법 말랑해진 떡국 떡에 부어주었다.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2~3분 정도만 더 끓이니 군침 도는 캐슈너트 떡국이 완성되었다. 한 수저 떠서 간을 보았다. ‘이 맛이야.’가 절로 나왔다.

제법 큰 그릇에 캐슈너트 떡국을 가득 채워 담았다. 식탁에 캐슈너트 떡국 두 그릇만 달랑 놓고 아들을 불렀다. 

“아들아, 떡국 먹자. 반찬은 필요 없지?” 반찬으로 내놓을만한 것도 없으니 그냥 먹자는 뜻으로 넌지시 물었다.            

“네.” 늘 음식 투정 없이 잘 먹어준 아들의 반응은 오늘도 긍정이었다. 

“맛있어?” 

“먹을 만해요.” 고등학생답게 살짝 건조한 말투에 웃음이 피식 나왔다.

한참 고소한 크리미함을 느끼며 맛있게 먹고 있을 때 15년 전 돌아가신 아빠가 불현듯 떠올랐다.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친정집에 갔었다. 엄마는 아빠가 몸이 안 좋아지셨다며 음식에 신경을 쓰셨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몸에 좋다는 것은 잘 챙겨 드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비리고 맛없는 것도 몸에 좋다면 잘 드셨던 아빠였다. 게다가 나는 아빠에게 썩 관심이 없었다. 아니 아빠를 미워했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아빠였다. 누구에게도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으셨다. 허나 가족에게는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대우받기를 원하셨고 본인의 생각이 다 맞는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하셨다. 불통이며 다정하지도 않았던 아빠는 내 삶에 전혀 비중이 없었다. 

말도 섞기 싫었다.     


엄마가 잠깐 외출하셔서 아빠와 둘만 집에 있어야 하는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아빠가 말을 걸어왔다.

“연경아!, 떡국을 견과류 넣고 끓이면 건강에도 좋고 맛도 있다더라.”

“떡국에 견과류를 넣는 게 말이 돼?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이상한 맛이겠네.”

 단 1초의 생각도 필요 없었다. 본인 몸만 챙기시는 아빠가 얄미워 톡 쏘아붙였다. 

큰딸의 냉대함을 느끼셨는지 더이상 아빠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1년도 되지 않아 아빠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죽음이 오갈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셨다는 것을 나는 한참 만에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견과류 넣은 떡국은 아빠에게 생명을 지키고 실은 한 줄기 빛과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떡국을 끓여주셨다.

“연경아! 진짜 맛있게 떡국 끓이는 법 있어. 세상 쉽기도 해.” 

‘얼마나 맛있길래 저렇게 흥분해서 말씀하시지’ 내심 기대하며 식탁에 앉았다.

하얗고 뽀얀 국물의 떡국은 너무 정갈하게 보였다.

한 수저 떠서 맛을 음미해보았다.

“음~ 엄마 이거 진짜 맛있는데 어떻게 끓인 거야?”

“아무것도 안 넣고 캐슈너트만 갈아 넣고 소금간만 하면 돼. 진짜 고소하고 맛있지?”

아빠가 말씀하셨던 견과류 떡국을 나는 그때 처음 맛보았다.

캐슈너트 떡국

그 후 캐슈너트 떡국은 나의 최애 음식이 되었다.      


‘아빠에게 견과류 떡국이 뭐냐고 톡 쏘아붙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네.’

아들과 맛있게 떡국을 먹다 한 번 더 피식 웃었다. 

캐슈너트 떡국은 그토록 싫어했던 아빠를 가끔 그리워하게 해주는 음식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늘 차갑기만 했던 큰딸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고 싶으셨는지 아빠는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선물로 주시고 가셨다.     


‘아빠! 편안히 잘 지내시지요? 죄송했어요. 덕분에 캐슈너트 떡국 잘 먹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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