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스펙(spec)이 없어도, 목소리 큰유창한 언변이 아니어도마음 씀씀이가선하고 순박하여 마음으로들어오는 이가 있다.
타인을 배려하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
책임감 있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몫을 다하며삶이 원활히 흘러가게 돕는다.
사람의 관계는 '나'와 '너'의관계다.
그 '너'는 나와 밀접한 가족에서부터 친구, 동료, 사회, 국가까지 이른다.
나의판단과시선, 시스템 속에서 '나'와'너'가원만하지 못하면그 관계때문에 평안이 깨지고존립이 위태하다. 당연히삶의 행복감이사라진다.
사람에겐 두가지의 마음이 있다.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이기심'과 다른 사람을 위하고 이롭게 하는 '이타심'.
이기심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위하는 마음으로써 시간과 노력의 대가를자신을 우선해 사용한다.
''인간은태어나면서부터 한정된 자원이라는 생존 조건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몫을 빼앗기 위해서는 배신, 속임수, 회유나 설득을 위한 정치기술을 사용하고 폭력이나 살인 같은 범죄조차 불사해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우선 하게 되어 있다. 모두가 모두에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가족, 친구, 연인 간의 사랑도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장치일 따름이다."
(중략)
이제 나는 고향이며 가족처럼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족쇄에 속박되지 않을 것이다.우연과 운명, 내가 만들지 않은 신념 따위는 거부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이기성을 타고났다.
이에 근거해 작가는 현실을 냉철히 간파했고 인간의 본질과 속성을 예리하게 통찰했다.
통찰은 독자의 공감과 공명, 감동을 일으키며 소설의 주제와연결된다.
소설의 주인공 그(만수)는 이기심보다 이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자신의 이익이나 안위보다 조부와 부모,형제를위해 수고와 헌신을 다한다.
나아가 직장 동료를 위해 빚을내어회사가 부도로 문 닫는것을 막고, 자신은 파산에 이른다.
그의 처사는 어리석고 무모해 보인다.그래서더욱마음이 끌리는 인물이된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고 모자라내세울 만한 외모도 경제 형편, 학벌도 없는 그. 능력이 별 볼 일 없어 무시당하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는 약자다.
그래도 공장에서고생하며 일해번돈을오로지자신을 위해 사용하며살 자격이있었다.
그럼에도그는 그럴만한 가치가없는 사람처럼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혼신을다해그들의안위를 살핀다.
자신보다 가족이나 직장동료를 더 중하게여기고그들을돕는 일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둔다.
그렇게 사는 것이 그의 할아버지의가르침대로 염치 있게 사는 거라고 그는믿었고행동했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리라. ~ 욕심이 과하면 탐심이 생긴다. 탐심은 남의 것을 훔치게 만든다. ~ 필요한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진 것과 바꾸어라~훔치고 나면 너는 네 것을 모두 도둑맞게 된다. 네 삶을 도둑맞는다~''
이 ‘염치‘라는 의미를 그는가슴깊이 새겼다. 그리고 험난한산업화시대에 가족들을 위해고생하며 자신을 희생했다.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쏟았다.
"그들은 나의 뿌리이고 울타리이고 자랑이다. 나는 그들이 정말 좋다.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진짜 나다."
나만 행복하면 되는이기심이 팽배한 이시대에그의 타인을 위한 지극한헌신은 존경스럽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그를 투명 인간으로취급한다.
보이지 않는 인간,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그가 세상이 인정하는 상위 직업인이 아니며, 시대의 보편에 해당하는 의식과행동을하
지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안쓰럽고 안된, 부조리한 인물로까지폄하된다.
그러나 그는 소설에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이다.
그의 가족, 친구, 직장 동료가 자신의 관점으로각자의눈에 비친 그의 삶을 서술한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내세워드러내지않는다.
그의 주변인들에 의해 그의삶은객관적이고 신빙성 있게 설득력을발휘하며조명된다.
여러 에피소드 속에서 그는 주목할만한 주인공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끝없는헌신으로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챙기지못한 사람.
일제 강점기부터 2000년대 초까지가치관 혼란과 생활양식이 격동하는시기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최선을 다하지만 끝내 어떠한 보상도, 무엇을 누려 보지도 못하고투명 인간이 되는 그.
''개인의 삶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베풀 여유가
있다.""
''자신이 먼저 있고 타인이 있는 것이며,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의보편적인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도 만수 - 그처럼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수고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주변에는다수있다. 생계목적이라 해도 투명 인간처럼 일하며 최선을 다한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각자의 다른 위치가 있고,살만한 환경이 이루어지며, 편리한 생활을 영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