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명절인 한국의 창공엔 선명하고 밝은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달빛이 먼 하늘가엔 작은 별들도 반짝인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밤하늘의 달과 별은 이렇듯 변함없이 영원을 흐르건만, 사람의마음과 생각, 육신은 변하며 서서히 자연으로 회귀를 한다.
광대한 우주에서 한 티끌에 불과하다는 우리!
'나'의탄생과 소멸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의미를 찾아 글의표현에 집중하니생각과 감정이움직인다.글을 쓰고 읽는 몰입감이 있다.
표현된 의미에서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수긍하거나부정하며새로운인식으로 조화를 추구한다.
의미를 통해 생각과 사고가 환기되며 마음이 조화롭게정리된다.
다음 글의 표현과 의미를감상해 보자.
코스모스(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 잡히고는 한다.
코스모스를 정관 한다는 것이 미지 중미지의 세계와 마주함이기 때문이다.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어머니와 아버지,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부패한 정치가들,'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COSMOS)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코스모스(COSMOS)의 자녀들이다.
코스모스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보물 창고로서 그 우아한 실제, 절묘한 상관관계 그리고 기묘한 작동 원리를 그 안에 모두 품고 있다.
우리가 바로 이 바다(코스모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슴 저 깊숙한 곳으로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간절히 품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태양은 인간 경험의 한계가 범접할 수 없는 권능자체의 화신이다.
숭배의 대상은 자신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은하는 미답의 대륙이다. 그 대륙에서는, 규모는 별의 차원이지만 정체의 오묘함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과 실체들이 우리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상상은 조건을 거부한다지만, 우리의 상상은 항시 숨은 조건의 노예일 뿐이었다.
회의의 정신은 공상과 실체를 분간할 줄 알게 하여 억측의 실현성 여부를 검증해 준다.
놀라운 발견의 배후에는 항시 첨단 기술이 뒷짐을 진 채 우리에게 미소 짓고 있지만 발견된 사실의 분석은 결국 인간 두뇌의 몫이다.
독창적 사고와 비판적 분석이야말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이다.
글쓰기야 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글쓰기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고, 먼 과거에 살던 사람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가 되게 했다. 책은 인간 스스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해서 우리 모두는 마법사가 된 것이다.
이 세상이 신의 창조물이라면 세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상의 모든 피조물은 신의 마음속에 있는 조화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 칼 세이건, 코스모스/ 홍승수 옮김 -
"신의 마음속에 있는 조화!"
'나'의 탄생과 소멸은 이 '조화'를 드러내는 것에 의미가 있나 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우주의 신비가 가득하고,아득하다.
태양과 달,셀 수 없는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그 별 중의 하나인 푸른색 지구.
광대하고 오묘한 우주의신비와조우하니 자신을 인식하는 '나'는 사소한 것에서 멀어지는 관대함과겸허함 그리고 조화를 이루는 평안의 세계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