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동안 시골살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 참 많은 사람들이 시골 생활을 꿈꾸곤 한다.
'시골'하면 불편하고 구질구질하다는 편견보다는 목가적이고 평화롭다는 인식이 많아진 덕분이다.
이렇게 시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 것은 아마도 TV 예능 프로그램이 큰 몫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시골 생활을 콘셉트로 하는 다양한 예능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와! 저런 곳에서 살면 좋겠다.'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오니 말이다.
시골집을 편리하고 예쁘게 개조하고 주변에서 나는 갖가지 식재료들로 맛깔스러운 음식들이 차려지는 모습은 지친 도시인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힐링 포인트다.
하지만 어쩌랴. 도시 생활을 쉽게 접을 수도 없으니 꿩 대신 닭이 되어 줄 캠핑을 떠나는 수밖에.
시골집과 비슷한 텐트를 들고나가 시골살이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던 캠핑장이 있다.
지난봄에 다녀온 홍천 개암벌 용소 관광농원 캠핑장.
이 캠핑장의 가장 큰 매력은 국립공원급 드넓은 계곡이다.
계단식으로 흐르는 드넓은 계곡이 주는 시원함이 정말 끝내주는 캠핑장이었다.
첨단 편의시설에 일정한 구획을 나눠 조성된 캠핑장이 신도시풍이라면
개암벌 용소는 크고 작은 사이트들이 불규칙적으로 조성된 작은 시골마을풍이다.
꾸안꾸 자연스러운 게 가장 큰 매력인 캠핑장!
여름에 왔을 땐 A사이트였고, 봄에 왔을 땐 B사이트였다.
둘 다 계곡을 바라보는 사이트지만 주변 분위기는 살짝 다르다.
B사이트는 메인 계곡을 직관할 수 있는 정말 뷰 좋은 로열층 아파트 분위기라면
A사이트는 메인 계곡과는 거리가 있지만 소박한 계곡물이 졸졸졸 흐르고 낮은 앞산이 정답게 마주 보이는 시골마을 느낌을 주는 사이트다. 두 사이트 다 너무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준 행복한 사이트들이다.
패션, 음식,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나 멋 부림은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어 만족감과 행복을 선사한다. 개암벌 용소 캠핑장은 자연으로 멋 부리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캠핑장이었다.
자연으로 멋 부린다는 게 무엇인지 나만의 기준으로 하나하나 소개해 보겠다.
자연으로 멋 부린다는 건 자연물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거다.
우선 평상으로 쓰면 제격일 듯한 너럭바위가 있어서 얼마나 반갑던지... 그 위에 돗자리 하나 깔고 시골 느낌을 내보았다. TV에서 보면 시골에서는 평상에 앉아 간식도 먹고 밥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평상 감성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거기에 앉아 수박도 잘라 퍼먹고,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해 지는 시골 저녁을 마음껏 느껴 보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의 그 선선한 평화로움이란...
밥 한 숟갈에 자연 한 젓가락. 그 짧은 저녁 시간이 보물처럼 느껴졌다.
이 캠핑장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텃밭 이용이다.
계절에 따라 갖가지 야채들을 재배하시는 캠장님 부부 덕분에 캠퍼들은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텃밭에 가면 부추, 고추, 곰취, 오이, 오갈피, 돌나물 등 갖가지 야채들이 캠퍼들을 맞이한다. 도시 촌놈이라 수확의 기쁨은 TV를 통해서나 느껴봤지 실제로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욕심부리지 말고 우리가 먹을 만큼만 적당히 따 담았다. 고기와 함께 먹기에도 아주 그만이고, 부침가루가 있었다면 이것들을 넣고 부침개를 해 먹어도 좋았을 것 같다. 미리 준비해 온 상추가 있었지만 마트에서 사 온 야채와는 비교 불가한 텃밭 야채들. 마트 야채들은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정형화되어 상품성으로 인정받은 모범생 느낌이다. 하지만 텃밭 야채들은 들쭉날쭉 모양도 제각각이어서 개성이 강하고 생명력이 흘러넘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빨리 익는 항정살부터 구워 텃밭에서 뜯어온 곰취랑 돌나물, 오갈피를 쌈으로 삼아 싸 먹었다.
음~~~ 아주 행복한 맛이다.
자연을 싸서 먹는 맛이랄까? 개암벌의 자연이 내 안에 들어온 듯한 싱그러운 맛이었다.
게다가 시골 인심까지 느끼게 해 주신 캠장님!
재배한 명이나물로 만든 장아찌를 먹어보라고 가져다주셨다.
이런 감동이 다 있나.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는 그런 정겨움을 캠핑장에서 느껴보다니!
마트에서 사 먹는 명이나물은 명함도 못 내밀 때깔부터 기가 막힌 그런 깊은 맛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양 미간이 찌그러지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항정살이, 돈마호크가, 텃밭 야채들과 명이나물이 그날의 행복을 알차게 마무리해 주었다.
서울의 한강변 아파트들은 거실 통창으로 수십억을 내고 한강 뷰를 즐긴다. 하지만 이곳에선 텐트 통창으로 계곡 뷰를 즐길 수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오두막 모양의 텐트는 시골 분위기에 아주 적합한 텐트가 아닌가 싶다. 좌우로 격자무늬 창이 감성적이고 앞뒤로 난 커다란 출입구는 시원함을 더한다. 게다가 앞쪽 출입구는 넓은 차양까지 설치할 수 있고 우레탄 창을 달면 계곡뷰 거실 통창이 완성된다. 앉아서 봐도, 서서 봐도, 어느 각도에서건 멋진 뷰가 눈 안에 들어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눈 뜨면 바로 보이는 계곡뷰는 정말 싸가지고 가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너럭바위를 테이블 삼아 커피 타임을 즐긴 후, 계곡멍을 하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쌀쌀하던 아침 기온도 슬금슬금 오르며 따스함이 느껴지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면 복잡했던 머리가 싹 리셋되는 느낌. 이런 게 힐링이지 싶다. 오전 나절의 이 시간은 항상 아쉬운 시간이지만 다음 주엔 또 다른 캠핑장에서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지운다.
하루 내 집 옆마당엔 이런저런 들꽃들이 소품처럼 피어 있다.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연보랏빛 금낭화들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채 줄지어 피었다. 또 익숙하지만 정확한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며 자연의 멋을 더해준다. 우리 텐트를 배경 삼아 예쁘게 한 컷 찍어주면, 하루 내 집의 예쁜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 기억 속에 저장된다.
캠핑에서 멋을 부린다는 건 자연을 흠뻑 이용한다는 거다.
값비싼 귀금속이 맥을 못 추는 곳.
자연의 멋스러움을 가능한 한 많이 누려보는 즐거움을 느끼러 캠핑을 간다.
시냇물이 흐르고 야트막한 앞산의 풍경 뒤로는 붉은 저녁노을이 흘러가는 곳.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르며 은은한 밥 냄새, 고기 냄새가 사람 사는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곳.
1박이라도 이런 아름다운 자연으로 잔뜩 멋을 부려본다면 마음의 풍요과 평화로 자신감이 차오른다.
그게 캠핑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