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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15. 2024

자연에 익숙해진다는 건

캠핑 에세이 - 불편해야 캠핑이지

자연에 익숙해진다는 건 감수할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듯 캠핑도 그렇다. 아름다운 자연에 감동하고 힐링하지만 그 아름다운 자연 안에는 주먹만 한 나방도 있고 내 몸 여기저기에 빨대를 꽂고 피를 뽑아가는 모기들도 많다. 게다가 아무리 쫓아도 줄기차게 날아드는 파리들과 눈 주변에서 아른아른 알짱거리며 잘도 피해 다니는 얄미운 날파리들, 개미들 등 벌레 천지다. 그뿐인가! 등골 오싹하게 만드는 뱀의 출현과 불쑥불쑥 튀어올라와 인사하는 개구리, 두꺼비까지 이렇게 깜짝깜짝 놀랄 만한 동물들까지가 자연이다. 



캠핑 첫 해에는 빨간 눈 달린 거대 나방의 방문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자연도감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듯 생김새가 뚜렷하게 관찰되는 대왕 사마귀에 놀랐으며 야침까지 기어올라오는 개미들 때문에 소름 끼쳐했다.  그러다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벌레들의 침입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에 알맞은 장비로 바꿔가며 벌레들과의 공생을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적응이 안 되는 동물은 고양이다. 어느 캠핑장이나 터줏대감처럼 상주하며 어슬렁거리면서 캠퍼들을 살피는 고양이에게는 마음을 나누기가 어렵다. 6년을 넘게 매주 캠핑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 사건은 얼마 전 여름 계곡 캠핑장에서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바돔에 야침(야전침대)을 피칭하고 평화로운 잠을 자고 있었다. 근데 뭔가 다리 쪽 이불 위로 지나다니는 발걸음이 느껴졌다. 평소에 우리 집 강아지가 내 침대 위에 올라와 서성거리는 편이라 '응~ 몽실이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아! 여기는 집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쫙! 고양이라는 걸 감지하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남편을 깨웠다. 

그때 위기를 감지한 고양이가 내 몸 여기저기를 후다닥 밟고 뛰었는데 나도 모르게 "아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 비명 소리에 더 다급해진 고양이가 남편 야침으로 뛰었고 남편도 놀라 허둥대다가 텐트 출입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튀어나가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도대체 뭔 일인지 벌렁대는 가슴이 진정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인스타 피드에서 추운 겨울에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와 쿨쿨 늘어지게 자고 있는 고양이들을 자주 본다. 흔히 간택당했다고 하나? 근데 그 캠퍼들은 나처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듯 기꺼운 마음으로 자리 한 켠을 내준다. 그러면 한 마리가 두 마리 되고, 두 마리가 세 마리 될 정도로 소문 듣고 찾아온 고양이들이 장박 텐트에서 더부살이를 한다. 


이런 분들이 내 얘기를 들으면 '고양이? 그게 왜?' 하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다 똑같지 않으니 어쩌랴. 나는 고양이가 무서운데...


또 한 번은 몇 년 전 겨울이었다. 텐트 안에 화목 난로를 피우고 잠깐 밖에 나갔다 오니 정말 고양이라 부르기가 어색할 정도로 투실투실 살찐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들어왔는데도 도통 나갈 생각을 않고 돌부처처럼 앉아 텐트 안의 따스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 서 있고 남편과 캠장님이 고양이를 쫓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날 잡아 잡수.' 하는 느낌. 결국 남편은 고양이를 들어 내보내겠다 했는데 고놈 무게가 상당하다고 했다. 결국 온 힘을 쏟아 쌀포대를 들 듯 고양이를 들어 밖으로 내놓았는데, 요 녀석이 또 다른 텐트를 기웃거리며 초원의 배부른 사자 포스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간다. 아마도 많은 캠퍼들이 텐트 안에서 재워준 모양이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한 캠퍼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녀석들이 그렇게 뻔뻔 당당한 태도를 취했을까? 눈치 보는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당당하게 먹고 잘 곳을 고르는 갑의 위치에 있는 고양이들이다.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섬에 사는 고양이들은 좀 더 대담하고 야생적인 면이 강해서 텐트를 찢고 들어오기도 하며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라 공격 태세를 취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랴. 캠핑에서 빠질 수 없는 고양이들이니 합방은 힘들어도 잘 지내보기 위해 간식 정도는 챙겨 다니고 있다. 


두 차례의 고양이 사건 이후로 우리는 스커트가 없는 텐트나 이너 텐트를 선호하게 되었다. 스커트가 있는 텐트를 사용할 경우 온갖 물건들로 스커트가 뜨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그라운드시트를 깔아 스커트의 들뜸을 막기도 한다. 고양이들과 잘 지내보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며...


캠핑은 자연과 친구가 되기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다. 내가 노력하면 자연은 더 많고 좋은 것을 내어준다. 그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 우리는 캠핑을 하는 것이므로 위험 요소는 대비하며 감수할 것은 감수하는 것. 그것이 캠핑을 하며 자연과 친해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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