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코치 Nov 19. 2020

다들 나만 미워한다고?

군대 간 아들이 힘들어할 때

  어느 토요일 오전, 몇 달 만에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러 갈 생각에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했다. 비워낸 반찬통도 챙기고,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아 효용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물건들을 찾아내 담았다. 며칠 비울 집의 콘센트도 뽑고, 가스를 잠그고, 창문을 닫고 채비를 갖춰 집을 나섰다.


  지난번에 아내와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갔던 빵집에 들렀다. 다들 맛있게 먹었던 빵을 사서 올라갈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빵집은 08:30분에 문을 열고 메인 빵 서너 개를 자랑스레 꺼내놓았고, 사람들은 하나둘 몰려와 저마다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즐거운 표정으로 빵을 담아 가고 있었다. 나도 서너 개 담아 들고 문을 나섰다.


  차에 오르려 운전석 문을 열었는데 선글라스를 낀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저기요"


  [도를 아십니까] 이후에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이 있었던가? 내가 뭘 잘못했나? 순간 당황하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이어지는 말.


 “군인이시죠?”


  헛. 숨기고 있던 패를 들킨 기분이다. 감추고 있던 재산이 드러난 기분이랄까. 그렇다고 드러날 재산이 있다는 건 아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네, 왜 그러시죠?”


  나를 아는 사람인가? 나와 같이 근무했었던 병사의 어머님이신가? 내가 뭘 잘못했나? 군인이면 시비 걸려고 그러나? 군인은 빵 사면 안 되나?

 생각이 이어질 때 아주머니에게서 들려오는 말.


“우리 아이가 군 생활을 너무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요"

  마음이 진정된다. 내가 상상했던 수많은 경우에 비하면 가장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역시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둬야 한다. 별것 아닌 일에도 감사하게 된다.

  아니 그래도 아주머니 아들이 힘들다고 하는데 감사만 하고 있을 일은 아니잖는가. 그리고 얼마나 간절하셨으면 빵집을 나서는 군인일 것 같은 아저씨를 보고 말을 걸 생각을 다 하셨을까(머리가 그렇게 짧지도 않은데 말이다)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를 군인인 것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향해 갈 길이 멀지만, 그냥 알아서 하시라 할 순 없었다.  

‘어떤 점이 힘든가요?’

“아들이 부대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서 너무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뒤에서 욕하고 때릴 듯이 위협하고, 물건을 헤집어 놓고 그래서 아들이 너무 힘들어해요”

  아.. 이건 전형적인 답이 없는 케이스인 것 같은데, 명확하게 폭행을 한 것도 아니고, 은근슬쩍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대응방법이 나올 수 있는데 어떡하지?


  어물쩍 넘어가기엔 왠지모를 책임감이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이미 내가 군인인 걸 관심법(?)을 통해 알고 있다. 오죽 다급하면 길 가던(빵 사던) 나에게 말을 걸었을까.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아니라 잘 아는 분야라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단 생각이 갈 길 먼 다리를 붙잡았다. 어머니의 간절함이 내 마음에 와 닿았고, 용기가 나를 돌려세웠다.


‘아들이 지금 같이 있나요?’

“네”

‘그럼 들어가서 잠깐 얘기하시죠,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주시겠어요? 바쁜 시간 뺏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도 돕는 데, 도움을 청하는 분께 도움을 드려야죠’


  그렇게 토요일 아침 빵집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고 엄마, 아들과 마주 앉았다. 도움을 주려면 정확한 내용을 확인해야 하니 구체적인 상황 설명을 구했다. 아들의 이야기는 큰 틀에서는 어머님의 말씀과 같았고, 세부적으로는 조금 더 중(重) 한 피해사실이 있었다.

  가해자들은 동기들이었으며, 임무숙달이 더딘 아들에게 모욕적 언사와 위협을 가했고, 아들로 인해 훈련시간이 길어짐을 탓하며 비난했다. 이성문제로 고민하는 아들을 보며 여자 친구에 대한 성적 비하 발언을 하였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때릴 듯이 위협하기도 했다. 주동자는 다른 동기들에게 아들과 어울리지 말 것을 주문했고, 따돌림과 괴롭힘은 집단적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


  2014년 무렵부터 병영생활부조리, 악습 척결을 위해 병장에서 이병까지 다양한 계층이 한 생활관에서 생활하던 방식에서, 동기끼리 같은 생활반을 사용하는 동기생활반 형태로 생활관 구성 방식이 변경되었다. 부대 규모상 동기들만으로 생활관 구성이 제한될 때에는 가까운 기수들을 묶는 근접기수 생활반으로 편성하고 있다. 이후 병영부조리와 괴롭힘의 형태는 선임-동기 관계에서 동기-동기의 관계로 변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아들도 그런 상황이다. 그리고 괴롭힘과 별개로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있기도 했다.

 

  엄마는 아들이 새로운 환경과 단체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하는 배경을 설명하며 ‘아빠의 사업실패 이야기, 아들의 외국 학교생활 이야기, 대학생활 이야기’ 등 내밀한 가족사까지 알려주셨다. 내가 누군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여시는 거지? 그냥 빵 사던 사람한테 말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그 정도로 절박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아들은 손과 다리를 덜덜 떨며, 가만두지 못했다. 자 이제 다 들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 어떻게 조언해 줄 것인가?


  나는 아들의 의도를 먼저 물었다. 용서하고 기회를 줄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그들이 잘못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기를 원하는지. 아들의 결정에 따라 대응의 방향과 방법이 180도 다르다. 아들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전자를 선택했을 때 예상되는 이점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설명해 줬다. 지금까지 유사한 사례들에서 지켜봐 온 상황의 흐름과 유의점도 알려줬다. 후자를 선택했을 경우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각각의 선택을 한다면 어떻게 접근하고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일러주었다.  


  가해자들은 꽤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다음과 같은 조언도 덧붙였다.

'단죄하려면 단칼에 하라.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잘못을 확실히 물어라.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반성하도록 하라. 처벌을 받고도 반성하지 않을 수도 있다. 법과 규정이 약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아닌 것은 아니다. 전과가 생길 수도 있고 행정적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경각심을 고취하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객관적이고 공식적으로 일깨울 수 있다. 그들이 다시 잘못을 저지른다면 가중처벌받을 것이다. 법은 비교적 정의의 편이다. 두려워 말아라.'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다. 왜 발생하는가? 가해자만이 문제인가? 고민해볼 일이다.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도 이었다.

'배움이 느리고 적응을 잘 못하면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닐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왔다면 매사에 위축되고 소극적일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봤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왜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지 원망만 하고 있으면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


 이기적 행동을 하거나 조직 화합을 저해하는 사람은 호감을 얻기 어렵다. 주변에 도움을 주려는 친구, 동기들이 있는가? 주변에 모두 나만 싫어한다면 자신을 성찰해봐야 한다.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보통의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 많다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선한 사람들이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에게 더 큰 고통을 주려는 사람보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런데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를 싫어하고 괴롭힌다? 내 주변에만 악한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은 아닐 테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바뀌지 않으면서 남 탓만 한다면 발전은 없다.(다행히 아들은 주변에 자신을 도와주려는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인기 영합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보인다면 상황은 반드시 좋아질 것이다.'

 

  21살인 아들은 본인을 다 큰 성인이라 생각하고, 발전하거나 더 배울 것이 많지 않다고 여길 수 있다. 군에서 20대 초반 병사들을 꾸준히 지켜봐 온 경험을 토대로 생각건대, 20살 이후에도 발전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하다. 아니, 학창 시절보다 발전 가능한 폭이 오히려 더 크다.


 내가 그랬다. 지켜봐 온 많은 20대 청춘들이 그랬다. 너도 그럴 수 있다. 보통 학창 시절이 지나면 공부를 놓기 마련이다. 인생은 공부의 연속이다. 지금부터 시작해도 발전할 수 있는 폭이 무한하다. 열린 미래다. 안주하거나 침전하지 말고 발전시키고 개선해라. 너는 너의 의지로 미래를 가꾸어 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가진 싱그러운 청춘이다.


  문을 나서고 가족들을 향해 차를 몰았다. 충분한 조언을 해주었나?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 그 어머님은 어떻게 나한테 말을 걸 생각을 하셨을까? 전문성이 없거나 잘못된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군인이면 다 군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나 보다. 하긴 나도 어떤 전문직을 보면 모두 정통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리라 기대하니까. 그 안에서는 인간이라는 특성에 기인해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군이라는 비교적 폐쇄적인 집단에 접근하지 못하고 해결책을 알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체득한 군 생활의 경험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8화 돈도 지키고, 친구도 지키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