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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22. 2020

넘겨짚지 마라. 아줌마 아니다.

임신한 것도 아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여성 직원이 차를 몰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불법 유턴하던 상대차가 정상 주행 중이던 여성 직원 차의 뒷바퀴 부분을 살짝 부딪힌 것이다. 차에서 내려 충격 부위를 살펴보니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정도였다.


 60대로 보이는 상대 운전자는 차 상태를 살펴보더니 ‘괜찮은 것 같은데?’라는 현명하지 못한 발언을 한다. 여성 직원은 상대가 ‘보상하겠다’고 하면 ‘괜찮다’고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고를 낸 사람이 먼저 별거 아니라는 식의 말을 하니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그런 낌새를 눈치챘는지 상대 운전자의 부인이 남편의 등짝을 스매싱하며 나선다.

‘아유 당신이 괜찮다고 하면 어떡해요. 아줌마가 괜찮아야지’


여성 직원은 낯빛이 변했다. ‘아.. 아줌마?’


그래서 더 열 받았다는 여성 직원의 말을 듣던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춰야 했다.


 왜 그랬을까?


 ‘아줌마라는 말에 열 받았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에서 ‘왜 열 받았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 직원은 40대 초반의 미혼으로 자신을 아줌마라 칭한 것에 화가 난 것인데, 내가 보기엔 상대 운전자 측에서 아주 큰 실수를 범한 것 같지는 않았다.(아가씨라는 말이 나오긴 좀 어렵지 않았나 싶다)


 내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티 나지 않았을까 적잖이 당황해 표정을 관리했던 기억이 있다.

식은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자신의 기준이 크게 차이 날 수 있구나, 섣불리 말하지 않아야겠다. 배울 것은 끝이 없구나.


 이런 일도 있었다. 동기네 가족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우리 첫째와 동기네 아들의 나이가 같아 몇 번 어울려 놀기도 해서 가족 간 친분이 있었는데,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다 몇 년 만에 만난 날이었다. 아내가 동기 아내를 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머, 언니 혹시 둘째..?’


 그녀의 내공은 깊었다. 잠깐의 빈틈도 없이 반응이 왔다. ‘와하하하 내가 좀 많이 쪘지? 아니야~’

 ‘푸하하하’ 동기가 웃고 나도 새어 나오는 웃음을 들킬까 입술에 힘을 주고 급히 다른 곳을 쳐다봤다. 아내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급히 이런저런 수습에 나섰다. 동기네 가족이 돌아가고 나서 아내와 얘기했다.

 ‘00씨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절교할 뻔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다. 나이 지긋하신 분께 ‘자녀들이 다 컸겠네요’라고 했는데 ‘아직 혼자예요’라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고, 친구에게 ‘와이프는 잘 있지?’ 물었다가 ‘이혼했어’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친하다는 생각에, 내 관심사와 유사한 점을 찾으려, 또는 어색한 분위기를 넘겨보려다가 의도치 않게 잘못 넘겨짚는 경우가 있다. 생각지 못한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는 최선은, 잘 모르는 부분 또는 개인적 상황은 되도록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실수를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가 넘겨짚어 내가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게 그런 일들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여러 번 반복된다. 나의 상황이 '일반적이거나 평범하다는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에, '상대가 넘겨짚은 추정'과 간극이 발생하는 것일 테다.


 그럴 때마다 화내고 신경이 곤두서면 피곤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의도를 갖고 불편함을 주는 것이라면 멋지게 한방 먹이고,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웃어넘길 수 있는 대답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도 좋다. 굳이 모든 상황을 다 알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저냥 넘어가면 그런가 보다 하고 신경 쓰지 않을 일들이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 아이가 큰 수술을 했다. 아이의 수술 사실을 아는 지인들은 만나거나 연락할 일이 있으면 으레 묻는다. 애기는 괜찮지? 지금은 수술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지낼 정도로 잘 지내고 있는데,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다시 소환되는 기억이 썩 유쾌하진 않다. 처음엔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러이러하고 이렇게 진행되고, 앞으로는 어떻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큰 관심이 있어 하는 얘기가 아니라 안부 인사로 여겨졌다. 잘 지낸다, 병원 꾸준히 잘 다니고 있다 정도로 넘긴다.

 



 여성 직원은 착했다. 사고를 낸 아저씨의 ‘현명하지 못한 발언’과 부인의 ‘배려 깊지 않은 단어 선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고이 보내드렸다. 그들은 여성 직원의 마음속에 일었던 풍랑을 감지하지 못했지만, ‘정식 사고접수’ 될 뻔한 위기를 자초했음은 분명하다.


 평온한 일상에 굳이 위기를 자초하지 않도록, 섣불리 넘겨짚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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