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고도 고맙다는 인사 듣는 방법

서운하지 않게 거절하기

by 밀코치

I 거절에도 품격이 있다.


거절도 기술이다. 기분 나쁘지 않게 잘 거절해야 앙금이 남지 않는다. 부탁하는 입장이 돼보면 부탁하는 사람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엔 영원한 갑도 을도 없다. 부탁할 때 가졌던 불안감과 긴장감을 잘 기억해 둬, 부탁을 받고 거절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서운하지 않게 잘 거절해야 한다.


먼저 부탁하는 사람의 상황을 살펴보자. 부탁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이미 심리적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무리한 부탁은 아닌가, 괜히 부탁했나, 거절당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부탁하는 사람의 곤란함과 간절함이 부탁받는 사람의 귀찮음이나 피로도 보다 현저히 크다. 그래서 부탁은 되도록 들어주는 것이 좋다.


I 웬만하면 들어주자.


내 기준으로 웬만하며 들어주는 부탁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부탁이다.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면 부탁하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 중요도를 고려하지 않고 들어준다. 특정 사안에 대한 간단한 의견이나 10문항 이내의 설문조사 같은 것들이다. 들어줘도 나에게 큰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둘째, 남들보다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부탁이다.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남들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준다. 다른 사람이 하면 1시간 걸릴 일인데 내가 5분 만에 할 수 있다면 전체적인 효용 면에서 이익이다. 부탁하는 사람이 매우 만족하는 경우다. 내가 맡고 있는 업무와 관련된 문서를 요청받거나, 내가 잘 알고 있는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중요한 부탁이다.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지만 중요도가 높을 때, 사정이 허락하는 한 들어주려 한다. 얼굴 모르는 불우이웃도 돕는데, 나와 관계된 사람이 중요한 일을 부탁하면 큰 무리 없는 선에서 들어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에게 요구되는 시간과 노력의 크기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워크숍에서 발표를 하거나,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안을 만들어야 하는 교육 또는 강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I 거절해야만 하는 경우


웬만하면 들어주려 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먼저, 부정한 부탁이다. 청탁이나 비위에 해당한다면 두 말할 것 없이 거절해야 한다.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못하도록 일언지하에 거절해야 하지만, 어디 사람 관계가 그렇게 되겠는가. ‘지금 말씀하신 건 부정청탁금지법을 위반하는 내용입니다. 이만 끊겠습니다.’라고 하기는 어렵다.


아직도 군대 보낸 자녀 또는 조카의 부대 배치와 병종 분류에 관해 힘써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로 시작하고 싶지만 돌려서 말한다. ‘요즘 인사는 모두 전산 배치로 결정합니다. 만약 우리 부대나 우리 부대 근처로 배치받는다면 제가 치킨 한 마리 사서 찾아가 격려해 주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을 때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다음은 시간과 여력이 허용되지 않아 거절해야만 하는 경우다. 이땐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일단 들어줄 수 없는 사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냥 ‘바빠서, 시간 없어서, 여력이 안돼서’가 아니라 ‘어딜 가야 해서, 무슨 일이 겹쳐서, 어떤 문제가 있어서’ 안 되는지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면 부탁하는 사람도 납득할 수 있고, 오해가 쌓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설명이 곤란하면 구체적 설명이 어려운 이유라도 알려준다. 빈약한 이유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


그리고 다음이 더 중요하다.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고, 잘 아는 내용일 경우 ‘나라면 이렇게 할 것 같다’는 방안 제시도 좋으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조직이나 사람을 소개해 주는 것도 괜찮다. 이 정도만 해도 상대가 서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I 한번 더 배려해준다면


부탁하는 사람과 관계가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배려하고 싶다면, 여지를 남겨라.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여기랑 저기도 연락해봤는데 정 해결이 안 된다면 다시 연락을 달라. 내가 스케줄을 조정하거나 따로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다시 찾아보겠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서 다시 연락 온 경우는 없었다.


정말 중요한 부탁은 이미 들어줬을 테고, 아니면 부탁한 사람이 내 사정과 설명을 듣고 대안을 찾아 문제를 해결했기에 그럴 것이다.




거절을 잘하는 것도 갈등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술이다. 나 또한 부탁하고 거절을 당해보며,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거절당하고도 기분이 좋은지 알 수 있었다. 거절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고품격 엑기스 거절법’을 손에 쥔 것이다. 잘 소화해 적재적소에 활용한다면, 거절하고도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 신박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10화넘겨짚지 마라. 아줌마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