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코치 Nov 16. 2020

그녀의 일자리가 줄어든 이유

그때 그 말을 안 했더라면

 성폭력 예방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국가교육기관의 강의실, 남군 20여명과 여군 10여명이 앉아 있다. 강사는 대학교수이자 관련 분야를 수십 년간 연구한 베테랑으로 양성평등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강사가 말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상승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는 여성 상위 시대라고도 하는데, 제 생각에 여성 상위는 체위밖에 없어요’


 순간 강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분위기를 눈치챈 강사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교육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교육생 중 한 명이 물었다. ‘아까 농담하신 것 같은데, 아무도 안 웃었죠. 왜 그런 줄 아세요?’ 강사는 쭈뼛거리며 별 대답을 못한다. ‘군에서는 그런 말 하면 큰일 나니까 아무도 웃지 않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사는 경솔한 발언이었다며 사과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교육기관의 운영진이 강의실로 찾아와 사과하며 앞으로 그 강사를 섭외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그들은 명색이 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기관인데, 강사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대외적 망신을 당할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 강사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농담으로, 강의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강의했던 많은 곳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말일 것이다. 안일한 생각이 문제를 만든다. 몇십 년간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도 이런 실수를 한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수많은 격언이 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밤 말은 새가 듣고 낮 말은 쥐가 듣는다’, ‘말이 씨가 된다’. 말에 관한 격언이 이렇게 많은 것은, 인간이 언어로 소통을 시작한 이래 말로 인한 다툼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를 배려하며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좌우 둘러보지 않고 내뱉듯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상대를 배려하며 친절하게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어디 생각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번번이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고 아쉬운 상황이 남는다.


 그 선배는 여러 사람들과 트러블을 일으켰다. 나도 관계가 순탄치 않았다. 전화통화하는 것도 불편할 정도였다. 그날도 유쾌하지 않은 통화였다. 선배는 같이 의논할 일이 있으니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했고, 나는 멀리 떨어진 건물에 있는 선배 사무실에 갈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굳이 만나서 의논해야 할 주제도 아니었기에 전화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만나자’와 ‘전화로 하자’는 별일 아닌 문제로 시간이 지체되었고, 굳이 갈등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내가 가겠다고 했다. 선배 사무실로 가면서, 분위기를 유하게 하고자 아이스크림을 사 갔다.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면서 얘기하시죠’ 선배는 별말 없이 아이스크림 포장을 뜯어 입에 문다. 참 정 안 가는 사람이다. 만나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전화로 2분이면 될 일이었다.


 의논이 끝나고 선배가 내게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묻는다.

 내가 생각하기엔 더 할 것이 보이지 않았기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내 마음대로 한다?’ 선배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진다.

 ‘지금 얘기 다 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더 할거 없다며, 이거 빼곤 내 마음대로 할게’, 참지 못했다.

 ‘더 얘기할 게 있으면 뭔지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말도 안 하고 마음대로 한다는 게 뭡니까. 시비 걸려고 부른 거예요?’


 결국 불필요한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감정을 조금 누그러뜨려 대화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돌아오며 후회했다. 아직도 내공이 많이 부족하구나.

 

 항상 하는 말이라고, 늘 그래 왔다고 쉽게 생각해선 안된다. 말의 무게를 수시로 생각해야 한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의 한계다.


 특히, 농담 할 때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더 유의해야 한다. 눈길을 운전하듯 조심조심 가야 한다. 실수하면 빙판길 위를 몇 바퀴 돌아 차가 뒤집어질 수도 있다. 위험을 감지하고 먼저 조심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선배님 뭐가 더 있어요? 역시 시야가 넓으시네요. 좋은 거 있으면 저희도 좀 끼워주세요.’


 이렇게 대처할 수 있는 내공을 가져보자. 새로운 자리에 갔을 때, 유쾌하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주의를 더 기울인다면, 말 한마디로 후회하는 일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6화 모임 내 갈등 예방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