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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14. 2020

모임 내 갈등 예방법

좋자고 모여 죽자고 싸우지 말자


 사관학교 졸업 후 전국 각지에 있는 임지로 흩어지기 전, L동기가 제안했다. ‘친하게 지냈던 우리 6명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다시 보기도 힘들 텐데, 계를 하자. 돈으로 묶여야 구심점이 생긴다.’ 그의 설득력 있는 제안에 6명은 문 닫은 은행 뒷문으로 들어가 통장을 개설하고 자동이체를 걸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6명은 L동기의 선견지명에 감탄하게 된다. 구심점이 생기니 친했던 동기들이 더 친해졌다. 모인 돈을 사용하기 위해 1~2년에 한 번은 모임을 갖는다. 사람이 돈을 모으려 했는데 돈이 사람을 모으고 있다. 매번 모일 때마다 그 시절 혜안을 발휘한 L동기를 칭찬한다.


 돈을 모은다는 것은 관심을 모으는 것이기도 하지만 문제의 소지를 모으는 것이기도 하다. 돈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얼떨결에 총무를 맡게 된 나는 돈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여러 방편을 마련했다.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자가 수정을 통해 발전시킨 모임 내 갈등 예방법이다.


첫째, 회비를 투명하게 쓰고 투명하게 관리한다. 두말할 필요가 없으니 넘어가자.


둘째, 회비 쓰는 기준을 정한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날을 아무리 잘 잡아도 모두 모이기는 힘들다. ‘여섯 명 모두 모이면 쓴다’는 기준은 전역할 때까지 돈만 모을 수도 있기에, ‘네 명 이상 모이면 쓴다’로 정했다.


셋째, 멀리서 오는 사람을 지원한다. 각자의 상황을 고려해 최적의 모임 지역을 선정하지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사람은 생긴다. 멀리서 오는 사람은 교통비뿐만 아니라 이동에 귀중한 시간까지 소요된다. 따라서 교통비와 수고비를 두둑이 챙겨준다. 모임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넷째, 못 오는 사람을 배려한다. 공식적 업무로 못 오는 사람에게 일정 금액을 챙겨준다.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모임 총비용을 참석인원으로 나눠 참석자 1인의 비용을 계산한 뒤, 그 절반을 미참자에게 보내준다.


다섯째, 계획할 때 이전 모임의 미참자를 우선 고려한다. 내가 못 올 때에만 날을 정한다는 오해를 방지하고, 뜨문뜨문이라도 만남을 이어갈 수 있다.


여섯째, 계획을 돌아가며 세운다. 처음 다섯 번 정도 나 혼자 연락하고, 예약하고, 장도 봤다. 총각 때라 밤늦게 찾아보고 알아보는 것도 가능했지만 이제 점점 버거워지고, 다른 친구들도 고충을 알았으면 했다. 한번 해보고 나면 다음 모임의 결정사항에 대부분 긍정 신호를 보내게 된다. 한두 명의 반대 의견이 계획을 확정하는데 얼마나 큰 어려움을 주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주운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회비를 사용하면 남의 돈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빼먹는 재미가 있고 씀씀이가 커진다. 결국 다 우리 돈이기에, 낭비하지 않도록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목욕탕에 갔다. 목욕비를 회비로 했는데 때밀이까지 회비로 하자는 친구가 있었다. 웃고 넘겼다. 낭비하지 않도록 적정선을 지켜야 한다.


여덟째, 가족과 함께 한다. 매번은 어렵더라도, 두세 번에 한 번은 가족 동반으로 모임을 갖는다. 자녀들이 커가는 걸 서로 지켜보는 재미도 있고, 아이들끼리도 친분을 유지할 수 있다. 아내들에게 봉사하는 기회로 활용한다. 고기 굽고, 과일 깎고, 라면 끓이고, 될 수 있으면 설거지까지 다한다. 모임을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뒷심이 된다.


 모임의 총무를 한번 하다 보니, 그 이후 생긴 2개의 모임에도 총무를 맡아 모임 통장만 3개를 관리한다. 익숙해지니 회비를 관리하는 어려움은 없지만, 누군가가 서운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항상 신경 쓰인다. 다행히도 아직 큰 사고나 불만은 없었다.


관리의 방법은 다양할 것이고,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결국은 상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필요한 사안은 사전에 공지해 오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좋다.

 

모임, 좋자고 모여서 죽자고 싸우는 일 없도록 잘 관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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