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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11. 2020

작게 잃고 크게 얻는 방법

소실대탐하자.

 초등학생 때 동네 친구에게 고스톱을 배웠다. 부모님의 부재 시간이 긴 친구집을 아지트로 삼아, 얇은 이불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 10원짜리 고스톱을 쳤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다는 걸 늦게(?) 안게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몇 시간이 지나는지, 배가 고픈지, 다리가 저린지 느낄 새도 없이 현란한 꽃과 나무, 동물에 빠져들었다가, 친구 부모님의 귀가시간이 임박하면 자리를 접어야 했다.


 십원짜리 동전들을 주섬주섬 챙겨 셈을 해본다. 친구 1이 말한다. ‘나 200원 꼴았다’, 친구 2가 말한다. ‘난 970원 꼴았네’, 친구 3은 ‘난 본전인데’, 나는 ‘나도 310원 꼴았는데?’ 뭐야. 우린 넷인데? 그때 깨달았다. 밀실에서 고스톱을 쳐도 돈이 맞지 않는구나. 커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발가벗고 맞고를 쳐도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속담(?)을 듣고 그 시절 일이 이해가 됐다.


 한 날은 친구 1의 패가 좋았다. 넷이 치는데 승률이 80% 이상이다. 하나 둘 자산을 탕진해 나가떨어지고, 나만 남게 되어 그와 마주 앉았다. 분투를 했으나 끝내 마지막 남은 다보탑을 내어 주곤 울분을 삼키며 애꿎은 화투장만 손가락으로 튕겨댔다. 자, 이제 계산이 쉬워졌다. 가져온 돈이 모두 친구 1에게 몰렸으니. 친구 2의 천원, 친구 3의 천칠백원, 나의 천삼백원, 도합 거금 4천원을 취득했을 친구 1은 돈을 세어보더니 ‘2천구백원 들어왔네’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왜? 라는 물음에, ‘집에 가는 버스비랑 아까 사 먹은 아이스크림 값 빼고’라는 망언을 뱉는다. 잡았다 요놈. 범인은 너였구나.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 1의 심리를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본다. 자신의 계산은 쌀 한 톨도 빠지지 않게 심지어 어제 먹은 쌀까지 슬쩍 밀어 넣고, 남의 계산은 쌀 한 바가지나 두 바가지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심보다. 모를 것 같지만 다 안다. 언젠가 탄로나게 된다.

 나 또한 하나도 잃지 않으려 했었다. 조금도 손해 보기 싫었다. 내가 손해보지 않도록 상황을 조성하려고도 했다. 지금도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손해 보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작은 것을 양보하려고 한다. 작게 베풀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된다. 작은 것은 용인 가능하다. 큰 타격이 없다.

 

 1/n 계산할 때 뒷자리가 애매한 경우, 끝자리는 떨어낸다. 27,875원씩 내야 하면 27,800원으로 공지하는 식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천원을 더 보내준다. 별것 아니지만 알아줘서 고맙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이후로 다른이가 끝자리를 떨어내고 공지하면 나도 천 원씩 더 보내준다. 작은 즐거움이다. 암호를 교환하는 것 같다. 진정한 천 원의 행복 아니겠는가.

 

 주인 없는 애매한 업무도 그렇다.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누가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을 때, 해결을 시도한다. 그렇다고 내가 다 하면 내 일을 못하기에, 동료들과 적정하게 분배한다. 그러다 보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생기는 법이다. 많이 주도하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길이 보인다. 뺄 건 빼고 중요한 것만 취해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또한 경험적으로 주도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기에, 다른이가 어렵고 귀찮은 애매한 일을 이끌면 앞장서서 도와주게 된다. 나는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을 더 오래, 좋은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다.

 

 작은 용기를 낼 때도 있다. 교육이나 강의, 회의에서 발표와 질문이 없으면 구색이 갖춰지지 않는 상황에서다. 주관하는 입장에서 누군가가 입을 떼주길 바라는데, 다들 눈치만 보고 머뭇거릴 때에는 내가 용기를 낸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생각에 굳이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주관해보고 나서야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줘야 할 상황이 있고, 그럴 때 용기 내주는 이가 고맙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그런 상황을 감지하면 도움을 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팁을 하나 전하자면, 주관하는 이(강사, 사회자, 토론자 등)에게 사전에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질문이나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지를 먼저 물어보고, 원하는 방향으로 화두를 던지는 것이다. 주관하는 이와 친분이 있다면 시도해보시라. 매우 기뻐하는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몇백원의 손실, 애매한 일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 주관자를 생각해 입을 떼는 작은 용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작게 잃고 크게 얻는 방법이다. 남는 장사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하다. 소탐대실이 아니라 소실대탐이다.


 작은 것은 손해 본다는 생각, 나를 편하게 하고 다른이를 더 편하게 하는 삶의 지혜다.

 


 

 * 본전에 버스비까지 넣던 그 친구는 잘 살고 있으려나.. 만약 큰 부자가 되어 나타난다면 ‘성공을 위한 본전 계산법’을 한번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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