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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07. 2020

싸우지 않고 결혼 준비하는 방법

무림고수의 비기


 결혼을 해본 사람들은 얘기한다. 준비하는 게 힘들어서 두 번은 못하겠다고. 물론 그렇게 말한 사람 중에 두 번한 사람도 있긴 하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데 대부분이 동감한다는 것이다. 결혼 준비가 왜 힘들까?


I 결혼 준비가 힘든 이유


 먼저, 처음 하니까 힘든 거다. 수능도 처음 치는 게 힘들고, 면접도 첫 면접이 가장 떨린다. 두 번 세 번 한다고 편해지는 건 아니지만, 처음 할 때 부담이 가장 큰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를 위해 연습해보는 게 아니라면 첫 번째가 가장 어렵다. 결혼을 재혼을 위한 리허설로 연습 삼아 해보는 정신 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힘들다. 둘이 마음 맞추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양가 집안 사이에도 협의하고 맞춰야 할 것들이 많다. 상견례 날짜와 장소를 시작으로 결혼식 날짜, 요일, 장소, 음식, 폐물, 예단, 드레스, 반지, 스튜디오, 청첩장, 집, 가구, 가전 등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진이 빠진다. 수많은 목록 중에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다. 마음이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이쯤 되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다.


 아내와 연애하면서 크게 싸워본 적이 별로 없다. 결혼을 준비하려고 하니, 고속도로를 잘 달리던 중 낙석주의 구간을 만난 기분이었다. 주변에 낙석에 맞아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멈춰 선 차들도 종종 보인다.


I 무림 고수의 비기


 어느 날 선배와 출장 가며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다 결혼 준비 얘기가 나왔다. 선배가 "결혼 준비하면서 안 싸우는 법 알려줄까?"라며 나의 구미를 확 당겼다. ‘아니 그런 게 있어요?’, "내가 확실한 방법 알고 있지. 그건 바로.."




무조건 좋다고 하는 거야

 읭?

 선배의 말은, 이것저것 결정할 게 많은데 아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좋다고 말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의중을 여쭙고 먼저 입에 올리는 선택지를 바로 물어버린다.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린 역시 잘 맞아’ 훈훈함이 사방을 감싼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무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비기를 전수받은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지나고 나면 다 별일 아닐 것들이었다. 지금이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굳이 아내와 싸우며 감정과 시간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결혼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오히려 서로가 양보하면서 결정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지, 선택의 문제로 다툼이 생긴 경우는 없었다.


I 전략의 유의점과 본질


 혹시 이 전략을 쓸 사람이 있다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전략이 노출되면 안 된다는 점이다. ‘너는 다 좋다고 하냐’, ‘성의가 없다’, ‘관심이 없는 거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선택권을 넘겨주기 전에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충 정했는데 너는 어떤 게 좋은지' 물어보고, 상대의 입에 먼저 오르는 선택지를 적절하게 낚아챈다.


 그리고 내가 왜 좋다고 생각했는지 부연 설명까지 덧붙여주면 완벽하다. 선택지가 많을 때에는 두세 가지로 압축해 상대가 주관식이 아닌 객관식으로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전략은 무성의한 것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문제 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사소한 부분에 몰입되어 불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현명한 전략이다.


 단,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줏대는 있어야 한다. 선택권을 넘겨줘 놓고 상대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고 마음에 담아둔다면 이것이야말로 최악이다. 싫은 건 배제하고, 좋은 것들 중에서 상대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것과 저것이 다 괜찮다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도 더 좋은 것 아니겠는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I 다양한 활용법


 이 전략은 비단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가족이든 동료든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다양한 선택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

 크게 중요한, 결정적 선택이 아니라면 상대가 적절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갈등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나와 상대에게 모두 좋은 윈윈이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난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거까지 이렇게 세 개가 좋은데,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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