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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코치 Nov 18. 2020

돈도 지키고, 친구도 지키자.

돈 빌려 달라는 부탁을 들었을 때


 지갑도 없어, 주머니에 백 원짜리 몇 개 짤랑거리고 다니던 코흘리개 시절부터 ‘빚보증은 절대 서는 것이 아니’라는 엄마의 말을 들어왔다. 전 재산이 만 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보증’은 호환마마 보다 더 나쁘다는 인식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머리가 굵어지고 ‘보증’ 자체가 나쁜 단어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빚보증’은 여전히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 수 있는 위력을 내재한 단어였다. 사회 초년생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2000년대 들어서는 빚보증으로 가세가 기울었다거나, 거리에 나앉았다는 주변인의 비보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던 것으로 미뤄, 보증으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 보증 서 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은 이제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는 문제로 여겨진다. 당연히 수용 불가한 것이고, 가족이라고 해도 부탁해서도 그리고 들어줘서도 안 된다는 인식의 공유가 있다.


 그런데 ‘돈 빌려달라는 부탁’은 조금 다르다. 일단 금액이 보증과는 차이가 있고, 부탁을 들어준다고 파산에 이를 문제는 아니기에 ‘불가하다’는 인식의 공유가 보증보단 옅은 편이다. 그렇기에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고 들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큰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들어본 경험이 없다. 돈이 없어 보여서 그랬나? 싶지만, 군 내에서 금전 차용은 금기시되는 문화 탓이라 편히 생각하려 한다. 사회 초년생 때에는 돈 빌려달라는 부탁을 들어도 큰 걱정이 없을 때다. 실제로 빌려줄 여윳돈이 적을 테고,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옛 어른들의 고상한 말씀으로 곤궁함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이 어느 정도 무르익고, 거주할 집 매수를 고려하는 나이가 되면 ‘그냥 없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언젠가는 돈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리 생각해봤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단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다. 충분히 들어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했다. 친구의 말이 끝나고 얘기했다.


 ‘어려운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경제권을 아내가 쥐고 있기에 돈을 내 마음대로 융통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내 모르게 가정의 자금을 사용하는 것은 부부간의 신뢰를 깨트릴 수 있기에 조심스럽다. 내가 부자라 도움을 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


 친분이 두텁지 않다면 다시 연락하지 않을 텐데, 아끼는 친구라 이틀 후에 연락했다. 전화를 다시 주는 것만으로도 친구는 고마워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면서.


 ‘고민하고 아내와 상의도 해봤는데 이야기한 금액을 빌려주긴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신경 써줄 수 있는 여력은 이만큼이다. 조금씩 모아 왔던 비자금이다. 고기 먹을 거 짜장면 먹고, 커피 안사고 사무실에서 타 먹고, 맥주 두 잔 먹을 거 한잔 먹으면서 짬짬이 모은 돈이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비자금을 건네주고,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친구를 잃지 않고, 돈도 잃지 않는 내가 찾은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 친구는 지금쯤 고마워하고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왜냐면 위의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내 상상 속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이다.


 임관하기 전 친한 동기들과 ‘우리들 사이에서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어떡하지?’ 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여건이 허락하는 금액을, 받을 생각하지 않고 건네는 것이 좋겠다’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 한 번도 실전에 사용해보진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고 현재 버전으로 최신화시켜 본다.


 관계의 많은 문제는 돈에서 비롯된다. 돈 문제는 둘도 없던 사이를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사이로 만들기도 한다. 돈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기도 하고, 사람 같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예민하고 껄끄러운 부분이며, 주의 깊게 관리해야 관계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돈 빌려달라는 부탁, 언젠가 맞닥뜨릴 장애물로 생각하고 미리준비해 슬기롭게 대처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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