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과로써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 잠자기 내일 일어날 시간을 결정하고,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고 '조금 더 잘 것인가 바로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시작으로 수십, 수백 가지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다시 잠자리에 이를 수 있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객관적 정보를 확인하고 주관적 상황을 대입한 후 기회비용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거라면 오래 고민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차이가 없다면 선택으로 인한 결과의 차이보다 고민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의 기회비용이 더 크기에,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중국집에 간다면 짜장과 짬뽕으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3초 안에 결정한다. 외출 전 무슨 옷을 입을지는 행거를 쓱 둘러본 후 빠르게 결정한다. 내가 그런 것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하거나 파급효과가 큰 결정을 하는 데는 여전히 매우 신중하게 고민한다. 객관적 정보와 주관적 상황, 기회비용을 여러모로 고려해 결정하지만, 이때에도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결정하고 난 뒤부터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는 경우가 아니라면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은 그대로 둔다. ‘저렇게 하면 어떨까’, ‘이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순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경우 결과가 나왔을 때 뒤끝이 개운치 않는 경험이 많았기에 결정 이후 다시 고민하는 것은 여러모로 소모적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기로 결정한 후 더 이상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맞을 거라면 오히려 빨리 맞는 게 낫다 생각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접종 전날에서야 무엇을 준비하는 것이 좋을지 찾아봤다. 여러 후기들을 살펴본 결과, 타이레놀을 한 통 사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하루, 길면 이틀 정도 몸살, 오한, 발열 등 증상이 이어진다 하니, 접종 후에 받는 두 알의 타이레놀로는 불안했다. 백신을 접종하고 혼자 머무는 숙소에서 버텨내야 하기에, 최소한 몸이 안 좋을 때 타이레놀을 사러 밖에 나가는 불상사는 없어야 했다.
접종 당일, 체육관에 도착해 명부 확인과 문진을 마친 후 접종 부스로 들어섰다. 자리에 앉아 팔을 걷는데 언뜻 보이는 주사기가 경험적으로 인지된 ‘일반적인’ 주사기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라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반대편 천장을 바라보는데 간호사가 집게손가락으로 팔뚝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한다. 주사 맞을 부위를 풀어주는 건가 싶었는데, 알코올 솜을 건네며 5분간 꼭 눌러주라고 한다. 어라? 느낌이 없었는데?
바늘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게 접종을 하는 기술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입을 반쯤 벌리고 강당에 놓인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 15분이 지나면 순서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나오는 길에 타이레놀 두 알과 비상시 연락처가 적힌 안내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몸의 변화에 촉각이 곤두섰다. 방에 혼자 있기에, 혹시나 연락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좀 있으니 왼쪽 팔이 약간 저린 듯하다. 저린 게 맞나? 신경을 집중하니, 왼쪽 다리가 찌릿하다. 어라? 뭔가 이상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원래 조금씩 찌릿한 느낌이 있는데 신경을 집중하니 크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간질간질해 잔기침을 두 번 하고, 혼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가 ‘에이’ 민망한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소수에게 나타난다는 접종 직후 이상 증상은 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제 8시간 정도 지나야 증상이 나타난다고 하니, 8시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8시간 이후 24시간 정도는 앓아누울 수도 있다. 부대에서 접종 다음날은 휴무를 부여해주기에, 일단 마음은 편안했다. 그간 미뤄뒀던 일을 여유롭게 처리하고, 8시간이 가까워 오자 다시 슬슬 긴장되기 시작한다.
일단 푹 쉬고, 내일 상태를 체크해보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아픈 시간은 자면서 흘려보내는 게 가장 좋다. 예방적 타이레놀을 두 알 복용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 동안 누적된 피로가 있어 침대에 눕자마자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몸 상태를 체크했다. 일단 열은 없다. 다행이다. 그렇다고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었다. 약간의 몸살 기운과 나른하면서 컨디션이 떨어진 느낌, 한마디로 유쾌하지 않은 상태였다. 계속 누워있는 것보단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씻고 아침을 먹었다.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어제 먹은 타이레놀의 효과로 그나마 이정도라 생각되어, 타이레놀을 추가로 복용했다. 접종 다음날은 골골대며 누워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컨디션에 기분이 좋아 밀린 브런치 피드 글도 읽고, 반년 간 미뤄왔던 컴퓨터 파일 정리도 했다. 점심이 지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컨디션으로 돌아왔다. 하루를 번 기분이다.
동료들 카톡방에서 컨디션 체크 설문조사가 이어졌다. 목적은 증상이 심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지만, 실상은 누가 증상이 나타났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설문이 되었다. 40~50명 중 38도 이상 열이 오르거나 몸살 기운이 있는 사람은 서너 명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나와 같이 컨디션이 떨어진다는 정도의 느낌을 받고 있었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모든 사람들이 제 컨디션을 찾아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접종 2일 후까지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정도의 큰 불편을 느끼는 부대원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차분히 흘러 이제 2차 접종을 기다리고 있다. 2차 접종은 1차 보다 증상이 덜하다고 하니, 마음이 편하다. 부대원 중에서 백신 부작용을 우려해 접종하지 않은 서너 명이 있다. 이들은 지금쯤 접종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단체 접종 기회를 놓쳤기에, 개인적인 접종을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최근 백신에 대한 인식과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 같다. 잔여 백신 문의는 많고 남는 백신은 없다고 하니, 짧은 시간 안에 바뀐 분위기가 놀랍다.
이 글이 부작용으로 백신 접종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