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다니던 MBC 라디오 PD 생활을 접고, 제주도에 혼자 내려와서 살다 보니, 생계가 막막하다. 예전처럼 회사에서 월급이 따박따박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재산분할을 했는데, 아이들이 엄마와 같이 살겠다고 해서, 서울 집을 판 대금을 아내에게 다 넘겨줬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피터팬 PD에게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요즘은 빚도 자산이라고 하니까, 자산(=빚) 3억이 있기는 하다.
1969년도 9월에 세상에 태어나서, 이제 만 51살이 된 피터팬 PD에게는, 아마도 20년 정도(운이 좋아서 건강하다면 30년?)의 남은 인생이 있을 텐데, 뭘 해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길이 안 보인다. 물론 65세부터는 국민연금이 나올 테니, 어찌어찌 살아보겠지만, 65세까지는 뭐든 해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명퇴금을 받으면, 3억 빚이야 갚을 수는 있겠지만, 적더라도 정기적인 소득이 있어야 할 텐데, 뭘 하면 좋을까? 아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제주도에 내려와서 지난 6개월 동안 하루하루를 살면서, 피터팬 PD가 가장 공을 들인 일은, 매일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거였다. 좋은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내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문화 콘텐츠 플랫폼이 있을 테고, 그런 플랫폼을 통해서, '월 200만 원~300만 원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가 있었다.
<필명 피터팬 PD가 이안 작가로 활동할 때, 10편의 브런치 북과 160편의 글을 작성했는데, 지금은 다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노트북에 초안이 있으니, 일부를 다시 복원 중이다. 에구 힘들어ㅠㅠㅠ>
하지만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고, 구독자가 10명에서 100명, 200명... 800명까지 늘었고, 내 글의 조회수가 매일 10,000회 가까이 되었지만, 브런치를 통해서 발생하는 수익은 1원도 없었다. 물론 블로그처럼 브런치도, 작가가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공간일 뿐, 유튜브처럼 수익을 안겨주는 광고 알고리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필명이 피터팬 PD가 아니고, '이안 작가'로 활동할 때,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했었다. 6개월 만에 구독자 800명이 됐으니까, 1년이면 1,600, 3년이면 약 5천 명, 그리고 구독자수는 많을수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체증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5년이면 만 명~만 오천명의 구독자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구독자가 15,000명 정도 되면, 일 조회수가 10만 정도 될까? 아닐까?
구독자가 늘더라도 조회수는 2만~3만 정도에서 정체되는 걸까? 여러 가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저 꾸준히 글을 쓰는 게 좋았고, 또 제주에서 피터팬 PD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란 게, 글쓰기밖에 없기도 했다.
하지만, 약 한 달 전쯤에 회사로부터, 내가 부적절한 카톡을 보냈다는 이유로 조사를 하겠다는 메일을 받았고, 나는 회사의 조치와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상세한 글을 올렸는데, 나를 비난하는 구독자 분도 한 두 명 있었다. 이에 피터팬 PD는 브런치를 탈퇴하고 어두운 동굴로 숨어버렸다. (브런치를 탈퇴하자 그간 써온 160여 편의 글도 사라지고, 구독자도 0명으로 다시 리셋되었다.)
1주일 정도 동굴에서 생활을 하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여전히 아침 해는 뜨고, 저녁 해는 졌으며, 밤이 되면 달과 별이 뜨는 제주도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노을이 질 무렵이면 바람이 불었고, 표선면의 바다는 내가 동굴 속으로 들어가지 전과 같이, 여전히 푸르렀다.
이렇게 매일 공전과 자전을 무한 반복하는 드넓은 우주 속 지구별의 질서처럼, 나도 인간의 질서를 지키며 살기 위해서는, 회사의 징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묵묵히 내 생활로 돌아가서, 글을 쓰며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50년 평생 피터팬 PD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글쓰기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런 글쓰기의 행위가, 과연 피터팬 PD에게 밥벌이가 될 수 있을까?
지금 <한국 뉴스>라는 인터넷 신문사에, <스타가 사랑한 최고의 가사 한 줄>이라는 칼럼을 쓰고 있지만, 이건 객원 칼럼니스트로서 고료를 받지 않고 쓰는 거라서, 아직은 소득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내년쯤이면 고료가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주일에 2편, 한 편당 10만 원의 고료만으로, 내 생활비와 문화비, 그리고 냥이 키키의 이런저런 생계비가 다 충당되지는 않을 것이다.
<피터팬 PD는 제주도에서 브런치에 글을 쓰고, 러시안 블루 고양이 팅커벨(키키)을 키우면서 살고 있다>
처음에 제주도에 내려와서 살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었다.
그 결심은 점점 더 확고해지고 있는데, 내가 글쓰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겠다는 다짐이다.
내 안에서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을 때는, 이 세상에 더 이상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최근 미국의 HBO 채널에서 방영하는, 리들리 스콧의 작품, 'Raised by Wolves'를 보면, 지구가 멸망한 뒤에, 신과 안드로이드, 인간이 함께 여행을 떠난 새로운 행성이 나온다. 피터팬 PD도, 지구별에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영원히 글을 쓸 수 있는 은하계 어딘가의 다른 행성으로 떠날 채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꾸준히 더 글을 쓰는 수밖에. 살기 위해서, 지구별에 남기 위해서.
PS. 후회가 되기도 한다. 브런치 구독자 800명일 때, 탈퇴하지 말걸 그랬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1명부터 시작하자니, 힘이 빠진다. 나도 늙었나 보다. 젊었다면, 미지의 구독자와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는 설렘이 더 컸을 텐데...
<HBO에서만 독점 상영되는 리들리 스콧의 [Raised by Woolves] / 미래사회에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신과 인간, 그리고 AI의 문제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