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와 죄의식, 실존적 불안의 탄생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막연한 두려움. 원인을 알 수 없고, 방향도 없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불가해한 감정,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불안(Angest)*이라 불렀다.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실존이 스스로를 마주하는 가장 깊은 고통이다. 인간이 자유롭기 때문에 느끼는 무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맞닥뜨리는 공포.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불안은 죄의 가능성에 대한 선행 감정이다."
19세기 유럽, 신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과학, 역사, 도덕이 신을 대신하며,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방향 상실의 전율을 동반했다. 가능성은 무한하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 죄를 짓기 전에 먼저 느끼는 감정이 '불안'이라고 보았다. 그는 『불안의 개념』에서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을 해석하며 말한다.
"아담은 죄를 짓기 전에 불안을 느꼈다.
그것은 죄의 가능성 앞에서 떨리는 자유의 감각이다."
불안은 공포와 다르다. 공포는 대상이 있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다. 그것은 존재의 깊은 심연에서 피어오른다. 키에르케고르는 불안을 인간의 두 가지 차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유한성과 무한성, 가능성과 현실, 시간성과 영원성.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그 가능성 앞에서, 인간은 자유를 느끼지만 동시에 공허를 경험한다. 그 공허가 바로 불안이다. 그것은 죄를 짓기 전의 자유이며, 타락 이전의 떨림이다. 불안은 단순히 피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실존적 결단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턱이다.
소크라테스: "두려움이란 보통 무언가를 잃을까 염려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 하네. 그런데 그대는 왜 아무것도 잃지 않았는데도 떨린다 하는가?"
키에르케고르: "그것은 바로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불안은 이미 발생한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자유 앞에서의 전율입니다."
소크라테스: "허면 그대의 말은, 자유가 고귀한 동시에 위험하다는 뜻인가?"
키에르케고르: "예, 자유는 인간에게 가장 숭고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무거운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을 느낍니다."
소크라테스: "나는 무지를 자각한 자가 철학의 출발선에 선다 보았네. 그대는 불안을 자각한 자가 실존의 출발선에 선다 보는가?"
키에르케고르: "그렇습니다. 불안은 무지보다 더 깊은 자기 인식입니다. 그것은 존재가 스스로를 감지하는 최초의 떨림입니다."
오늘의 우리는 불안이라는 이름 대신 다양한 말로 그것을 포장한다. 우울, 불면, 번아웃, 강박… 그러나 그 근원에는 언제나 자유의 그림자가 있다.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 잘못 선택할 수 있다는 두려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무력감.
키르케고르는 말한다. 불안을 피하지 말고, 통과하라. 그것은 병이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호다. 불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존재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떨림을 견디며, 우리는 비로소 자기 존재를 선택할 수 있다.
1) 불안은 단순한 병리적 감정이 아니라, 실존적 각성의 문턱입니다.
우리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은 존재의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일례로, 진로를 선택하거나 인간관계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옵니다. 이때 불안을 억누르기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무게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실존적 성숙으로 이어집니다.
2)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책임이며, 그 책임을 감지할 때 인간은 불안을 느낍니다.
무한한 가능성 속에 살아간다는 것은 모든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할 때 느끼는 불안은, 단순한 불확실성의 공포가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떠안는 책임의 전조입니다.
3)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라고 말하며, 이를 실존의 진입로로 제시합니다.
불안은 도망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문입니다. 일상에서의 명상, 글쓰기, 조용한 성찰을 통해 우리는 그 불안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한 자아와 더욱 명확한 실존의 방향을 세울 수 있게 됩니다.
다음 편에서는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부르는가?”라는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순간과 영원 사이,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실존의 시간성과 ‘순간’의 철학을 탐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