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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ㅇㅇ (장메모 씀)

연년즈 무기력 탈출 대작전

by 장모메 Mar 07. 2025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참 쉽다. 장모메라는 필명은, ‘메모장’을 거꾸로 적어 마치 사람 이름처럼 보이게 만든 것인데, 글을 쓰기 앞서, 나의 사랑 메모장에 사랑을 검색해 보았더니, 191개의 메모가 뜬다. 대상들은 주로 남자 친구, 일, 가족, 친구 그리고 때론 나 자신으로 추려진다. 이 단어들로 사랑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을까? 사랑을 계속 언급하니 어딘가 유치하고 애송이 같다는 생각도 든다. 로맨스 영화가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외국에선 ’아이 러브 유‘라는 말을 굉장히 신중하게 한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사귀고 나서도 확신이 생겼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눈물을 글썽거리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있어서는 좀처럼 중도의 마음이 지켜지지 않는다. 덜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도 모른다. 그저 마음속에 계속해서 차오르면 뱉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때론 모든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왜 못 배기는 걸까.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원이 생각난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가까이 있는 두 개의 원. 적당하고 안전한 거리가 있는 건강한 관계. 그러나 사랑을 하면 교집합의 원처럼 자꾸만 포개지기를 원한다. 때로는 큰 원 안의 작은 원처럼 상대방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다가, 속해지기를 원하기도 한다. 아기를 키울 때 분리 육아를 하듯, 어른도 분리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언젠가 죽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걸 피하는 것처럼, 사랑이 끝난 이후의 삶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의 상황이 와도 잘 살 수 있도록. 그게 힘든 사람이라면 더욱더 루틴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이 모든 생각들은 의존에서 오는 불안함이다. 상대방이 없다는 생각만 하면 살 수가 없다. 그 사람을 미친 듯이 사랑해서일까, 너무 의존하고 있기 때문일까? 의존하는 것과 친밀한 관계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래 사귄 남자 친구와 가끔 결혼 이야기를 하면, 어린 나이에 결혼하신 두 누님을 예시로 들며 사람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설 수 있는 두 인간이 만나서 해야 한다고 늘 말한다. 이 말을 내뱉는 순간마저도 스스로 너무나 잘 존재하는 남자 친구를 보면서, 그 모든 말이 나를 향한 화살로 느껴진다. 지금 결혼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지만, 상대방이 결혼 상대로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처음엔 경제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다. 오랜 시간 연극을 하기도 했고, 최근에 공방을 열었기 때문에 모아놓은 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경제적인 문제보다도 정신적으로 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연애하기 전, 혼자 영화관에도 자주 가고, 고깃집도 가고, 심지어 미지의 사하라사막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렇게 독립적이던 사람이 지금은 남자 친구 없이 집에서 영화 한 편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손발이 묶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사실 더 궁극적인 불안은, 이대로 가다간 영영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봐 그게 두렵다. 주체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일에서도 발전이 있을 테니까. 최근 나름의 독립적인 시도를 하는 중이지만, 혼자 있는 밤이면 어김없이 남겨졌다는 느낌이 든다. 남겨졌다는 말의 주체는 상대방에게 있다. 그때부터 시간은 상대방의 부재를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버린다. 그런 밤이면 맥주를 마시며 취기에 기대거나, 다른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새벽 내내 핸드폰에서 영상을 보다, 몸이 견디지 못할 지경까지 몰아붙인 뒤, 잠이 들곤 한다. 건강하지 않다는 건 잘 안다. 마지막으로 편히 잠든 때를 떠올려 보면, 혼자서 계획했던 일들을 잘 끝내 뿌듯하고 꽉 찬 마음과 몸은 약간 지친 하루였던 것 같다. 하루종일 멍하니 있다 캐롤라인 냅의 책 ‘욕구들’을 읽으며 생각 꾸러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더 많이 읽고 써야 해.


 글을 쓰는 행위는 나라는 사람이 이 땅에 존재하기 위한 독립의 과정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추상적으로 불안했던 것들이 구체화된다. 눈으로 바라보면 불안감도 가라앉는다. 연기를 할 때처럼 있는 그대로 밑바닥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직면하려고 노력한다. 이 시간과 감정들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는 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외면하던 모습과 반대되게 느껴진다.


단전
1.   삼단 전의 하나. 도가(道家)에서 배꼽 아래를 이르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배꼽 아래 한 치 다섯 푼 되는 곳으로 여기에 힘을 주면, 건강과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무대 위에서는 잘 서 있는 게 중요하다. 그에 따라 걷는 방법도 다른데, 발바닥을 움켜쥐듯 힘을 주고 걸어야 다리와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 방법은 무대에서 쓸데없이 흔들리는 몸을 정돈시켜 준다. 삶이 흔들거리고 바로 설 수 없을 때, 때론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 다리와 단전 그리고 발바닥에 힘을 준다. 땅에 뿌리를 내린다고 생각하면,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 하체만큼 용기가 생긴다. 오늘도 다리에 힘을 힘껏 주고, 아이패드라는 무기를 장착해서 세상 밖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본다.




장모메

‘연년즈‘에서 한 살 언니.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현재는 유리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칠칠칠공

안녕하세요, 연년즈에서 막내를 맡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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