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파란불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멈춰 선 차 사이로 비집고 건너가는 기이한 풍경이
다섯 시간도 채 못 잔 몽롱한 아침이라
꿈결에 비치는 환상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그 공간에서 오직 나 빼고
모두가 태연하게 빨간 전조등 사이로 유영했다
이따금 태연함이 잔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셔터 스피드를 1/30에 맞춘 듯 긴 곡선을 그리며 뒤섞인 마찰음은
아무런 감흥 없는 악상이었고
가만하기를 의욕하는 나는
꽤 오래 지낸 이 도시의 초대받지 못한 방랑자가 되어 부유했다
휠체어 시위로 정체된 지하철과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도리어 편안함을 느끼며
우리가 잠시 멈춰서야 할 곳은
이곳 사당역 3번 출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