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행복을 없애드립니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길에 놓인 컨테이너에 수상한 간판이 걸렸다. 어느 정신 오락가락한 노파가 노망이 나서 차렸다는 소문도 있고, 간판을 연막으로 안에서 도박판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누구나 그 간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지만, 선뜻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들어가보려는 사람은 없었다.
“어디 가냐?”
“나 총 맞았다.”
“어디 가는데?”
“그 마포 쪽에 이상한 가게가 생겼는데 그게 SNS에서 화제라네.”
어느덧 입사 2년차, 종혁은 아직 신입 기자이지만 마음은 늘 붕 떠있다.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그 당찬 패기는 수습 때 사라진 지 오래, 어느덧 타성에 젖어 우라까이로 하루하루를 넘기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경찰서 뺑뺑이를 돌면서 잠도 못 자고, 인터뷰는 늘 까이고. 저번에는 지나가는 20대 직장인을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저 남자친구 있어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번 아이템도 말만 들어도 파리만 날릴 것 같은 이상한 가게에서 대충 미다시 몇 개만 뽑아오면 될 터였다. 행복을 찾아준다는 것도 아니고 행복을 없애준다니. 대체 어떤 손님이 가겠는가.
딸랑-
황량한 컨테이너 외관과 달리 내부는 꽤나 따뜻하고 아늑했다. 쪽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큼큼-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왔다. 종혁은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취재 요청을 드렸고, 할아버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알아서 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할아버지는 손님을 맞이하는 탁상에 앉았다. 종혁은 할아버지가 TV를 보던 쪽방에 앉아 할아버지의 모습을 관찰하기로 했다.
딸랑-
뜻밖으로 종혁이 가게를 방문한 지 10분도 채 안 돼 손님이 찾아왔다. 연녹색의 프릴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이었다.
“저는 행복하면 늘 반대급부로 불행이 찾아와요. 전 이 불행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요. 행복하면 저는 곧 불행해져요. 곧 불행할 일이 닥칠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최근에는 취업을 했어요. 누구보다 이 기쁨을 애인과 함께 나누고 싶었고, 다음주 졸업식이 끝나면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어요. 예약도 다 해놓았고요. 그런데 어제 갑자기 이별 통보를 받았어요. 저랑 함께할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다고요. 제가 취업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아니, 제가 대기업에 취직했다면 미래를 기대했을까요? 그러면 애인도 떠나가지 않았을 거예요.”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던 여성은 끝내 흐느끼며 목놓아 울었다. 할아버지는 여성이 울음을 멈추고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차분하고 고요한 자세를 유지했다.
첫 번째 여성이 가고 30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50대 중년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빨리 제 행복을 없애주세요. 저는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한 달 전 딸래미와 함께 주말 나들이를 가기로 했어요. 그 날은 유달리 그 곳에 사람이 많았어요. 아니 정말 많았어요. 사람이 많은데 거기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끼이고. 저는 결국 딸의 손을 놓치고 말았어요. 처음 보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납작히 눌려 서서히 창백해지는 모습을 봤어요. 제가 그 날 그곳에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요. 제가 이혼을 하지 않아서 딸이 그 날 와이프와 다른 곳에 나들이를 갔으면 어땠을까요. 며칠 식음을 전폐하다 열흘쯤 지나서 겨우 한 숟갈을 떴어요. 간사하게도 행복하더라고요. 허겁지겁 한 그릇을 비웠어요. 그 후로는 포근한 이불에 누웠을 때 행복하기도 하고,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순간 행복을 느끼기도 했어요. 애비가 되어서 이렇게나 간사하네요.”
그렇게 50대 남성은 한창 울다가 가게를 나섰다.
종혁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계속 듣고만 있으시네요. 할아버지는 어쩌다 가게를 열게 되신 거예요?”
할아버지는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한 거야. 그게 인간의 본능이거든. 살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인간은 행복을 느껴. 그런 행복을 없애 달라는 건, 정말 절박한 사람들이야. 삶의 끝까지 간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은 행복하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아. 정작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배부른 사람들이야.”
“그럼 할아버지가 행복을 진짜 없애주시지는 않는 거네요.”
“행복을 없애길 원하는 사람들을 찾는 거지. 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들어주는 거. 그거면 돼. 생각해 봐. 인간은 살기 위해 치열하게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 않게 해 달래. 방금도 봐 봐. 행복을 행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만큼 구슬픈 게 있을까?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애처로운 게 있겠냐고.”
“그럼 할아버지는 왜 이런 일을…”
“내가 기자였을 때 아쉬운 게 있어. 진정 들어주는 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 방법을 잘 몰랐다는 거. 행복을 갈구하는 사람들만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다는 거. 빨리 다음 취재를 하러 가야하니까. 그 날 밤 9시에 내보내야 할 리포트를 써야 하니까. 내가 했던 건 경청과 공감보다는 취조와 업무에 가깝더라고.”
“…..”
“사원증 보니까 경화일보인 거 같던데.”
“……”
“난 10기다. 빨리 가서 잘 써 봐.”
몇 달 뒤, 종혁의 경화일보 홈페이지 프로필이 리뉴얼 되었다.
한 줄 문구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행복을 피해야만 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