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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세상, 어른의 마음


어린이 세상


                             열세 살 나무



어른들은 파랑새를 보면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지만


어린이는 파랑새를 보면

함께 꿈을 키워 갈 동반자가 생각하며


어른들은 일곱 무늬 무지개를 보면

멋있다고만 생각하지만


어린이는 일곱 무늬 무지개를 보면

꿈의 나라로 갈 포근한 다리라 생각하지




 

 시를 좋아했어요. 두꺼운 국어사전을 다 보지도 않으면서 늘 책꽂이에 맨 앞에 꼽아 놓곤 했지요.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어요. 지금도 메인 책장은 아니지만 두꺼운 국어사전에게 책장을 내어주고 있어요. 어릴 적엔 시인도 되고 싶었고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게는 오래된 스프링 노트가 있어요. 어릴 적 썼던 시를 모아 놓은 노트랍니다.

오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시 한 편 가지고 왔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시 중에 가장 어릴 때 쓴 시네요.

물론 글씨는 6학년의 글씨는 아니에요. 스무 살이 넘어 노트를 다시 정리했지요.





 초등학생 때는 '난 크고 싶지 않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이는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은 딱딱하고 무덤덤한 세상이라고요. 거기다 상막하기도 하고 점점 이기적이 되고 순수함을 잃어 가는 세상이라고 생각했지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뜻 안에는 아이들 세상의 해맑고 순수한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이 얼마나 고단하고 치열한지 모르는 아이는 어른들은 덜 기뻐하고 무뚝뚝한 사람들처럼 여겨졌던 것 같아요. 아이의 마음으로만 살기에는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감정 그대로 충실할 수 없음을 아이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조금이나마 알기 때문에 아이는 이런 시를 썼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을 불태우던 열열한 연애 시절의 두근거림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면 다 심장병으로 죽고 말 거라는 우스개 말처럼 아이들의 마음으로만 세상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겠지요.


 아이는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른들의 세상이 마냥 감정에 충실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지만 어른들의 세상이야 말로 깊은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담아가는 세상임을 알아가며 살아가고 있지요. 어쩌면 추운 겨울이 있어 봄이 반갑고 소중하듯 인생의 사계절의 섭리를 점점 더 온몸으로 안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엔 비 오는 날이 질척 질척 습하고 찝찝해서 싫었고 아가씨 때만 해도 눈 오는 날 빼곤 추운 겨울도 너무 싫었는데 이제 추적추적 비 오는 날은 운치가 있어 좋고 억수같이 비가 내릴 때는 시원하고 마음도 개운하니 좋습니다. 겨울의 추위도 겨울다워 좋고요.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였어요. 아직 비록 반백 살도 살지 않았지만요.


어른의 세상은 아이들처럼 즉각적이고 순수한 반응들이 있는 세상은 아닐지 몰라요. 좋으면 좋은 대로 격하게 기뻐하고 슬프면 슬픈 대로 마냥 울 수 있는 세상은 아닐지 몰라도 어른의 세상이야 말로 감정의 파노라마를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정이 너무 깊어 심연을 길어 올릴 수 없어 때론 가슴속에 많은 것을 묻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 그리는 막내가 여섯 살 때 그림을 그려 놓았어요.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의 치마가 겹겹이 겹겹이 어찌나 겹겹이 층을 이룬 치마던지 현실세계에서는 만나 볼 수 없는 치마였지요. 거기다 공주의 액세서리의 화려함은 또 얼마나 넘치던지 보는 순간 눈이 커지고 웃음이 나왔어요. 그런데 그 그림을 보는데 청량감이 느껴졌어요. 그 누가 뭐라던지 상관없이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운 아이의 그림에서 묘한 희열이 느껴졌지요.


 '어른이었으면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미소 지어졌어요. 이렇게 한껏 사치와 허영이 담긴 아이의 그림, 자신의 느낌과 마음을 가득 담아 놓은 아이의 그림에 머물러 잠시 생각에 잠겼지요. 자신의 욕구도, 감정도 여러 가지를 살피느라 묻어두어야 하는 어른이 된 엄마에겐 그 그림은 어느 화가의 그림 못지않은 영감을 주었어요. 아이의 자기일 수 있는 건강함과 투명함이 참 좋았습니다.


 어릴 적 동시를 꺼내보며 다시 한번 함께 꿈을 키워 갈 파랑새를 안고 꿈의 나라로 가는 포근한 무지개다리를 한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맑고 순수한 마음과 어른의 숙련되고 깊이 있는 마음을 양쪽 주머니 안에 가득 담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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