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를 아십니까?
사계_가을 유능제강, [밀크티]
좋아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축구와 유도, 유도와 축구? 성격이 워낙 다른 종목이다 보니 이 두 종목의 우열을 가리기는 조금 힘들지만, 특히 유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슬픈 것은 약간 짝사랑 같은 개념이라 정말 좋아하고 열심히 하던 때도 있었으나 몸은 마음대로 잘 따라주지 않았던 일방적인 애정공세 같은 느낌이었어요.
있어 보이는 말로, 구력으로 친다면 축구는 약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턴 시작을 했으니(방년 8세) 어느덧 20년이 넘고요. 축구에 비하면 유도는 성인이 되어 늦게, 군전역을 하고 학교에 복학하여 약 24살부터 시작했습니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뭔가 굉장히 신비한 기운에 이끌려 유도동아리에 가입하게 됐고, 그 매력에 깊이 빠져 결국 동아리 부회장까지 하고 전국대회도 몇 번 나가기도 했어요. 부회장이라는 타이틀과 전국대회 출전 자체(수상도 아닌)가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어떠한 지표와는 사실 거리가 아주 멀지만, 그래도 끄적일만한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써넣어 봅니다.
어리석음을 열정의 지표로 삼을 수 있다면 당시 유도를 향한 제 열정은 최고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토리가 너무나도 길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말씀드리면 다리가 골절된 상태였는데 대회를 준비했었거든요. 물론 골절상태인지는 몰랐었지만요. 어쨌건 간에 결과적으로는 제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도 못하는데 대회를 나간다고 나댔던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죠.
그렇게 의도하진 않았지만, 몸을 무리하게 쓰다 보니 당연한 수순으로 다쳤던 다리도 그렇고 건강까지 잠시 나빠졌던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유도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은 걸 보면 정말 좋아하는 운동이 아닌가싶어요.
선수를 할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좋아서 시키지도 않는 짓을 아픔을 참아가면서까지 했을까요? 제가 유도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은 “유능제강”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柔能制剛
부드러움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긴다
체구가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메다꽂는다는 게 그렇게도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거든요. 그 매력에 푹 빠진 그 당시의 저는 마음만은 이미 태릉선수촌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였어요. 그래서 유도를 시작한 지도 얼마되지 않았지만 기존 회장과 부회장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차기 부회장 자리를 꿰차며, 어느새 저보다 체급이 두세 단계가 높은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도 잡아줄 수 있는 짬이 되기도 했고요.
지금은 유도를 놓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유도관을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배울수록 어렵고 매력 있는 운동이거든요. 조금 과장하자면 유도를 배우며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생각보다 많은 자양분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도와 같이 ‘도’가 들어가는 운동은 ‘운동을 한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수련한다고 표현하나 싶기도 하고요.
유도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낙법인데요. 떨어지는 법,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거예요. 상대로부터 메쳐졌을 때 내 몸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다치지 않기 위함이에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숱한 거절과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을 때가 많아요. 그렇게 너무나 아픈 환경 속에서 제가 해야 했던 것은 저를 보호하고 최대한 아프지 않기 위해 낙법을 치는 것이었거든요.
그와 더불어 대회에서 한 번의 업어치기를 위해 수만 번의 메치기를 연습하고 또 메쳐져요. 그 과정을 겪으며 생각을 해요.
‘이렇게 수만 번의 낙법과 업어치기를 하다 보면 내 인생에도 언젠가는 한 번의 멋진 업어치기 한판승이 나오겠지.’ 하고요.
향과 맛이 강한 홍차에 부드러운 우유를 넣은 밀크티는 마치 강해 보이기만 하지만 정작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유도와 비슷하거든요.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밀크티와 퐁신퐁신한 푸딩뿐입니다.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이 합해지면 어느샌가 함께 녹아져내리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하루도 수없이 여기저기서 메쳐졌을 여러분을 위해 유도처럼 부드러운 밀크티를 선물해보려 합니다.
레시피는 추후에 업데이트하여 공개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