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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그래 May 21. 2022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사계_가을 [해독이 필요해]

네. 안녕하세요.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단 소개를 먼저 하고 시작해야할 것 같아 이렇게 인사를 드리는데요. 마침 다행히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저와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시는 것 같아 한결 위로가 되네요.


술을 마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다짐 해보지 않으셨나요?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마시다보면 다음날 침대 반경 1미터 혹은 심할 경우 변기 반경 1미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스스로를 보며 이런 다짐을 하죠.


“와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사람이기를 쉽게 포기하곤 합니다. 이 정도면 사람인 게 싫은 건가 싶을 정도로요. 아무튼 그 치기어린 다짐의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젊을수록 짧은 경향이 있는데요. 대학생 때의 경우 회복력이 빠르다보니 주변을 보면 그 말을 뱉고 나서 24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사람임을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저도 맨 처음 소개드린 것처럼 결국은 사람이 아니긴합니다. 시간이 중요한가요. 어찌됐건간에 그 다짐을 하고 지키지 않은 건 매한가지니까요. 부끄러우니 저를 조금이나마 변호해보자면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해장술이라는 이름부터 이상한, 술로 술을 해장하는 그런 행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 20대의 간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날 고생할만큼 술을 마시지도 않고, 그렇게 마시는 것이 딱히 좋은지도 잘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 다짐을 30대가 되어 조금이나마 이행하고 있습니다. 위의 다짐은 정확히 말하면 ‘내가 또(이번처럼 = 네 발로 기어다닐만큼)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축약된 것이니까요. 사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미 술맛을 알아버린 사람이라면 어떻게 술을 아예 안 먹나요. 그건 인생의 큰 즐거움 중 하나를 포기하는 부분이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나름 변호랍시고 변명을 열심히 늘어놓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미 사람이 아닌 것에는 변함이 없죠. 그래도 이제는 몸이 힘들정도로 술을 먹는 그러한 습관은 버렸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흔한 반도의 회식문화처럼 단체로 건배를 하고 ‘부어라 마셔라’하며, 심지어 내가 마시고 싶지 않을 때조차 그 아까운 술을 억지로 넘겨야하는 술자리는 질색입니다.


제가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점에서에요. 음식의 맛과 분위기를 더 올려주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주니까요. 앞으로 평생 술은 이렇게만 마시고 싶습니다.


이 얘기를 왜 꺼냈냐면요. 최근에 알자마자 반해버린 술이 있어 소개해드리고 싶어서에요. 라가불린이라는 이름의 싱글 몰트 위스키인데요. 위스키에 입문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태지만 어찌됐건간에 좋아하게 됐습니다. 원래 저는 위스키나 소주와 같은 증류주보다는 와인이나 맥주, 청주 등의 곡주를 더 좋아했어서 위스키에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강한 알콜향이나 찢어질 듯한 목넘김같은 걸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신기한 건 차에서도 강한 스모키 향이 나는 차는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어느 날 스모키한 느낌의 대표격인 차와 위스키가 블렌딩 된 티칵테일을 마시고는 굉장히 큰 매력을 느끼게 됐고요. 그렇게 술을 마시고, 그 맛을 기억하기 위해 밤에 집에 돌아와 또 다른 스모키한 느낌의 차를 몇 잔이고 마셨습니다.


며칠 후에는 직접 ‘피트(스모키) 느낌의 대표 싱글 몰트 위스키 초록창에 검색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고, 그렇게 알게  아드벡과 라가불린을 머릿속에 입력시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로 재즈바에 찾아가 아드벡 10년을 시작으로 라가불린 16년을 마셨죠. 그리고는 내적+외적 환호를 질렀습니다. “ 미쳤다. 이런  바로 술인건가하고요.



왼쪽부터 아드벡 10년산과 라가불린 16년산



이게 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글인데 계속 술을 찬양하고 있네요. 원래 제 글이 딱히 족보가 없습니다. 포장해보자면 차와 술은 족보상으로 머언 친척일 것이니, 더 딥한 정보를 전달하는 거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이 위스키와 잘 어울리는 차인 정산소종과 대홍포를 소개하기 위한 큰 그림이었어요.



정산소종은 위와 같은 수색을 뽐내는 차입니다. 전형적인 홍차의 색이죠? 이 차가 랍상소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최초의 홍차입니다. 위스키와 정말 잘 어울리기 때문에 블렌딩해서 마셔도 좋고, 그냥 마셔도 참 매력있어요. 하지만 스모키한 향이 강한 편이라 피트한 느낌의 위스키를 싫어하시는 분이라면, 그리고 차를 처음 입문하시는 분에게는 불호로 다가올 수 있는 차입니다. 이 부분 감안하시고 도전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다만, 정산소종 이 녀석이 숙취에 좋다고 하니 술과 함께 마신다면 술을 더 많이 마실 수 있겠죠..?

아니,, 술을 마시더라도 조금 더 숙취없이, 그리고 건강하게 마실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한 가지 더 추천드리자면 농향계 청차중 한 가지인 ‘대홍포’라는 차인데요.

이 또한 약간의 스모키한 느낌이 나지만 정산소종보다는 훨씬 스모키한 느낌이 적고 깔끔한 맛이 나는 차입니다. 특히나 이 차의 매력은 냉침을 했을 때 더 빛이 발한답니다. (대홍포 냉침차 안 먹어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그래서 저는 요즘 이 대홍포의 매력에 푹 빠져있어요. 차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랍상소총보다는 대홍포를 먼저 접해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어쩌다 보니 차보다 술을 권장하는 글이 돼 버린 것 같은데요. 우리 모두 어차피 술 안 먹겠단 다짐을 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마시는 건 알고있으니 더 이상 지키지 못 할 약속은 고만하고요. 마시더라도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마시는 음주문화 만들어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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