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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Nov 03. 2020

엉켰고 엉키지 않았다

 막 피어나는 환한 봄에 우리는 같이 걸었다. “어제는 겨울이더니 오늘은 봄이네” 나의 말에 너는 싱겁게 웃었다. 열병처럼 무성한 여름을 지나며 마음은 높고 넓게 번졌다. 때로는 무거운 장마에 고개를 숙이기도 하면서. 새벽 공기로 소식을 알려온 가을에는 길섶에 풀벌레 소리 하나 너의 머리에 올려두기도 했다.


 진종일 안개가 모로 누웠던 겨울, 나란히 걷는 너의 발과 나의 발이 엉켰다. 잠시 멈춰선 곳에 서 있던 앙상한 나무. 우리는 나무처럼 메말라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각자 걸었고 발이 엉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후 짧은 글로 너를 다시 만났다. 그 옛날 글쓰고 싶다 말하며 붉어졌던 네 얼굴. 짧은 인사가 오갔고 너는 싱겁게 웃었다. 미소가 잦아들고 너는 다시 하얗게 말랐다. 그리고 각자 걸었다. 나는 너에게 겨울로 남아있는 걸까. 밤을 보내며 나는 미안함을 오래 앓았다.


 너의 새로운 첫발이 어설프고 예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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