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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Oct 04. 2020

속상하지 않았어?

"엄마, 내가 가장 미웠던 게 언제야?"

추석을 지내고 나주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어렵게 말을 뗐다. 추석에 뜬 보름달은 기울 거고 나는 서울로 떠날 것이다. 다시 만나려면 내년 설이 되어야겠지. 그동안 하지 못한 질문을 엄마와 둘만 있는 공간에서 하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엄마를 보거나 떠올리면 내가 긁어놓은 상처들이 눈에 밟혔다. 작고 큰 것이 있었고 아찔할 정도로 너무 깊은 것도 있었다. 엄마는 무얼 가장 아프게 느끼고 있을까.      


"그런 거 없어."

이런 대답을 나올 거라 어느 정도 예상했다. 엄마는 수십 년간 미움받고 미워하는 굴레 속에서 살아왔다. 짙은 한숨과 한탄, 후회가 연속되는 삶을 버티게 하는 건 나의 존재였다. 모든 것들이 자신을 짓밟아도 나 하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항상 착하고 장한 아들이었다. 아니, 나는 그런 아들이어야만 했다. 엄마의 무의식은 나의 나쁜 면을 조용히 세탁해야만 했다. 내가 나쁜 아들이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엄마의 인생은 깨지기 시작할 것이다. 질문을 바꿔 부드럽게 해 보았다.     


"정말? 그러면 나 때문에 속상했던 적은?"

"그것도 없어. 미웠던 적도 속상했던 적도 없어. 근데 그건 왜 물어봐?"

엄마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런 건 전혀 없다는 표정. 더는 물어보지 못했다. 사소한 거라도 하나 나올 줄 알았다. 선명하지 않더라도 희미한 것이라도 있을 텐데. 엄마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작은 상처 하나가 내가 가장 크게 할퀸 흔적일 텐데. 상처 줬던 걸 사과해야 하는데.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자 내 안에서 엄마가 예전에 지었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입대하기 전 수능을 4번 치렀다. 집, 학원, 누나 자취방과 독서실에서 공부한다고 엄마에게 말했지만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한다는 장소만 달랐지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쳐다볼 수 없는 성적표를 받고는 엄마에게 내년에도 공부할 거라 말하기.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열심히 살아서 사회로 뛰어든다는 행위가 멋없게 보였다. 무언가 되기를 원치 않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흘러만 가고 싶었다. 의미 없는 무언갈 하기 위해 나는 엄마에게 의미 있는 뭐라도 하고 있다 변명하려 공부한다고 한 것이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이해가 되지 않던 나의 행동들.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직선 사이에는 무한히 많은 점이 있는데 어떻게 끝에서 끝으로 갈 수 있어요? 점을 지나려면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걸리잖아요. 무한한 점을 지나려면 무한한 시간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어요?"

수련회 날, 담배 피우러 나온 수학 선생님에게 평소 궁금해하던 질문을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듯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였다.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한 나는 직선 위에서 이동할 수 있는 건지 물음에 답도 없는 세상이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거기에서 시작되어 세상에는 답할 수 없는 물음이 아주 많다는 걸 알았고 압도되었다. 세상은 절대로 알 수 없구나. 나는 중요한 것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게 의미가 있는지 회의했다.     


곧잘 하던 공부도 이후 그만두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첫 번째 수능을 봤을 때도. 성적표가 발표되고 배치표가 나왔지만 나는 무관심했다. 어차피 진학해서 열심히 하지 않을 텐데 원서접수를 꼭 해야 하나. 담임선생님은 점수에 맞는 대학교를 추천해주었고 나는 접수하겠다는 말만 했지 접수하지 않았다. 원서 접수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선생님은 화를 내려다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었고 알아서 잘해보라는 말만 남겼다.      


선생님은 넘겼지만, 집에는 무어라 말하지. 나는 목표도 없으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엄마가 길길이 화를 내 나를 쫓아낼 수도 있었고 상처를 받고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팰 수도 있었다. 나는 둘 다 원치 않았기에 수능을 다시 봐서 원하는 대학을 가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표정이 잠깐 굳어진 엄마는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야 한다고, 목표가 있으면 이뤄야 한다고 재수를 허락했다. 나는 엄마가 준 돈으로 책도 사고 과외도 받았다. 공부는 하지 않았다. 수능 점수는 처참했고 엄마에게 내년에도 공부하겠다 말했다. 우편으로 날아온 입영 통지서는 수능을 본다는 핑계로 연기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능을 다시 치렀다. 다음 해에도.     


내가 다시 공부하겠다고 말하면 엄마는 태연한 얼굴로 허락했다. 친구들보다 늦어도 네가 원하는 곳 들어가면 결국 네가 이기는 거라고 말하면서. 나는 바보같이 엄마의 얼굴을 그대로 믿었다. 정말 엄마는 괜찮다고. 수능을 두 달 앞둔 어느 날, 엄마가 내게 입영 통지서를 주었다. 나는 통지서를 보고 어떻게 연기할지 난감해하다 엄마를 보았다. 다른 표정이었다.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엄마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동안 태연한 척했던 얼굴 밑에서 찌들었던 것들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명진아, 이번에는 군대 가면 안 되니? 갔다 오고 나서 공부는 다시 생각하자."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더 못 참아서 미안하다는 마음도 드러났다. 나는 멍청했구나. 내가 열심히 사는 삶을 비웃는 동안 엄마의 삶을 조롱했구나. 엄마를 힘들게 했구나. 가슴이 납처럼 무거워졌다. 나는 엄마 말에 따라 2008년 1월 15일, 군에 입대했다.     


"엄마, 나 이제 갈게."

"이제 설에 내려오는 거야? 서울 잘 올라가고 잘 지내."

엄마와 작별하고 KTX 좌석에 앉았다. 기차는 단단한 두 개의 쇠줄을 따라 미끄러져 갔다. 엄마의 그 표정. 엄마는 잊어버린 건가. 나에게만 남아있는 표정인 건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군대를 또다시 미루고 하지도 않을 공부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표정은 나를 군대에 들어가게 했고 전역 후 내 목표를 찾게 했다. 정말로 공부하게 해 나는 원하는 대학교에 갔고 지금은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었다. 가끔 엄마가 나를 좋은 아들로만 생각하고 기대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무겁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표정을 떠올린다. 그런 표정을 해줘서 고마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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