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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Oct 04. 2020

할머니의 호박죽

“맹진아, 죽 묵으라!” 

 호박죽을 먹고 싶어질 때면 할머니는 호박을 광에서 꺼내오셨다. 호박은 어린 내가 팔을 힘껏 펼쳐도 안을 수 없이 컸다. 너무 짙은 검정으로 염색해 어색한 뽀글뽀글한 머리, 거뭇하게 달아오른 빨간 피부, 턱이 억센 할머니는 힘든 기색도 없이 부엌 한쪽에 늙은 호박을 내려놓았다. 작은 창으로 들어온 가을빛이 할머니의 오른쪽 얼굴을 지나 호박 위에 내려앉았다. 먼지로 덮여 희끄무레한 표면을 닦으니 매끈한 빛깔이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윤기 나는 호박죽이 곧 나타나리라는 전조현상 같았다.


 할머니는 큰 칼로 꼭지를 따고 호박을 반으로 잘랐다. 속살은 겉보다 누렜고 생긋한 비린내가 올라왔다. 씨를 긁어낸 속살을 싹둑 썰어 냄비에 넣은 후 끓기를 기다린다. 냄비 뚜껑이 들썩이기 시작하면 불을 줄이고 찹쌀가루를 넣는다. 곧 끈적이는 호박죽이 완성될 것이다. 신이 난 나는 호박을 마저 으깨는 할머니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정한 주기로 손목, 팔꿈치, 어깨를 작은 타원으로 돌리는 동작. 나의 눈에는 가장 맛있는 호박죽을 만들기 위한 의식처럼 보였다.


 잘 풀어진 노란 죽에 하얀 설탕이 듬뿍 올라가 있다. 단맛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는 설탕을 아끼지 않았다. 부엌과 이어진 서늘한 작은 방에서 받는 할머니의 따뜻한 상. 숟가락을 들기 전에 나는 휘 올라오는 멀건 김을 코로 들이마셨다. 처음에는 따끈하고 촉촉하기만 하다. 중간쯤 으깨진 호박 냄새가 휘감겼고 마지막엔 달짝지근한 설탕 향이 코에 달라붙는다. 코로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숟가락을 든다. 첫술은 무조건 가득 채운다. 천장으로 풀어지는 김과 배가 부푼 듯 숟가락 경계를 넘어 도톰하게 올라온 호박죽의 곡선을 잠시 응시한다. 할머니는 뜨거울까 봐 옆에서 후후 입김을 불어준다. 나는 할머니를 보고 활짝 웃고 꿀꺽 숟가락을 삼킨다.


 호박죽을 먹는 동안 할머니는 옆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쓱 쓱 쓱 쓱. 할머니 손에서 잘린 호박 껍질 냄새가 났다. 쓱 쓱 쓱 쓱. 이번에는 오전에 김매던 밭 냄새와 어슷하게 썰린 대파 냄새가 났다. 쓱 쓱 쓱 쓱. 마지막으로 삶이 저물어가는 사람의 살 냄새가 엉겼다. 머릿속에서 흐릿한 형상들이 마구 떠오르고 엉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인상이 새겨졌다. 다만 할머니의 냄새가 반질반질한 진갈색 부엌 기둥에 스며있다는 사실만 선명히 떠올랐다. 숨바꼭질하려 기둥에 이마를 대면 나던 그 냄새. 


 부모님은 쫓기듯 분가하였다. 엄마와 할아버지의 갈등이 쌓이고 쌓여 더는 함께할 수 없었다. 나가야만 했다. 우리가 살 집은 옆 마을 끝자락에 있는 작고 낡은 한옥이었다. 사람이 한동안 살지 않아 집을 이루는 모든 게 시린 곳이었다. 살림살이는 궁핍해 작은 집을 채우지도 못했다. 배를 곯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일한 만큼 우리의 배와 살림살이가 채워졌다. 엄마는 음식에 소홀하지 않았지만, 가끔 할머니가 해주던 음식들이 생각이 났다. 특히 달콤했던 할머니의 호박죽. 먹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을 때는 할머니에게 갔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반기며 먹을 걸 챙겨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엄마와 할아버지의 갈등이 잦아들지 않아 왕래는 더 뜸해졌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변했고 할머니의 호박죽을 찾는 일은 자연히 줄어들었다. 


 어느 날, 밭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뇌출혈이라 했고 다시 깨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실감 나지 않았다. 항상 힘찼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머리에 울렸다. “맹진아!”라며 마을 공터에서 놀던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 할머니는 이제 중환자실에 아무런 말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 누워있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내 손에서 무섭도록 흘러내렸다. 뼈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할머니의 형체를 유지하던 모든 힘이 빠져나가 있었다. 고개가 무거워져 할머니의 손에 이마를 갖다 댔다. 호박죽 냄새는 나지 않았다. 밭과 대파 냄새도. 곧 무너질 살의 냄새만 남아 있었다. 할머니에게서 다시는 호박죽 냄새를 맡지 못하리라. 나는 하염없이 할머니를 불렀다.


 장례식날, 염을 마치고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시신을 마주했다. 두꺼운 나무에 둘러싸인 할머니는 평온해 보였다. 화사한 화장 덕에 완전히 죽어있지 않고 곧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울음이 퍼져 나가 흐느낌이 되고 통곡이 되었다. ‘여보’, ‘엄마’, ‘할머니’ 저마다 다르게 부르짖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들도 따라 울었지만 나는 울지 못했으니까. 할머니의 죽음을 거부한 것도 실감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할머니는 똑똑히 내 앞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분명히 인식했다. 억지라도 눈물을 보이려고 해 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울지 않는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불편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묻힌 선산. 할머니 삶의 여정이 끝날 곳이다. 하관은 조심스레 이뤄졌고 남자들은 할머니의 새 이불이 되어줄 흙을 삽으로 덮어주었다. 흙 알갱이가 바람에 날려와 내 얼굴을 간지럽혔고 억새는 우우 흔들렸다. 눈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눈두덩이에서 쌓이고 쌓이다 결국 낙하했다. 굵지도 길지도 않았던 눈물. 내가 할머니에게 흘려준 눈물은 이 정도뿐인 건가. 봉분이 충분히 솟아올랐고 삽질은 멈췄다. 할머니는 더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의 죽음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걸까. 장례식날 마음껏 울지 못한 내 모습이 두고두고 밤에 떠올랐다. 너무나 오래 떨어져 지낸 탓이었나. 할아버지를 미워하다 할머니까지 미워했나. 아니면 상처 받지 않으려 마음을 굳게 닫은 건가.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모든 게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졌을 때 나는 호박죽을 끓였다. 할머니가 끓였던 방식대로. 하얀 그릇에 호박죽을 담고 설탕을 듬뿍 올린다. 냄새를 맡고 한 숟갈 크게 뜬다. 옆에서 바람을 불어줄 할머니는 없지만 생각한다. 할머니, 그동안 고마웠어요. 그리고 죄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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