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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Oct 25. 2020

할아버지 아팠겠지?

 저무는 볕이 부드러운 날, 광교의 호수를 걷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윙윙하며 진동하는 휴대전화의 화면에 찍힌 발신자는 할아버지였다. 이번 통화도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겠지. 피로가 몰려온다. 조금 더 벨 소리가 나오게 한 후 머리를 털고 전화를 받았다.     


 “니 삐는 형가가 아니라 김가여. 니가 엄마헌티 가봤자 니 삐가 형가가 되는 게 아니여.”     

엄마가 이혼 소송을 시작하면서 할아버지는 매주 내게 전화를 걸어 당장이라도 소송을 그만두게 하라고 훈계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의 성은 엄마의 성씨인 형씨가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끝까지 갔을 때 남는 건 살이 아니라 뼈라고.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김씨 가문의 흐름을 거역해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뜻이겠지. 흐름을 무시하고 따로 가면 안 되는 걸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이미 뼈가 풍화되어 내게 이어질 조각도 없을 텐데. 아빠가 집에서 나간 후 덩그러니 남은 내가 다시 아빠와 이어져야만 하는 건가?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면 꼭 내 머리 위로 가문의 흐름이 의미 없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가난한 외가에서 자란 엄마는 시집올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한 만큼 미움받으며 살았다. 밭에 나가 일을 아무리 해도 할아버지의 눈에는 부족하고 못나 보였다. 뱃속에서 아이가 크며 몸이 무거워지자 잠시 잦아들었지만, 딸아이가 세상에 나오고 할아버지는 더 싸늘해졌다. 다음 해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작은 누나가 품 안에서 죽자 엄마도 작은누나를 따라가려는 듯 죽은 듯 지냈다. 내가 태어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은 엄마는 할아버지에 꿋꿋하게 버티다 남동생이 학교에 들어갈 때쯤 분가했다.     


 이후 우리는 커갔고 할머니가 쓰러졌고 혁신도시가 들어오면서 고향이 사라졌다. 할아버지는 읍내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게 되었고 여전히 엄마를 미워했다. 할아버지의 미움을 받으며 다시 누군가를 미워하는 굴레에 빠진 엄마는 아빠와 자주 싸웠고 결국 아빠는 외도하고 집을 나갔다. 아빠가 나에게 했던 “너에게 줄 돈은 아무것도 없으니 알아서 살아라.” “내가 지은 죄는 너희를 낳은 것이다.”라는 말들. 나는 아빠가 미워 친가 모두와 인연을 끊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인연이 닿기를 바랐지만 나는 응답하지 않았다.   

   

 사랑처럼 미움도 멀리 떨어져 있으면 무뎌진다. 수년이 지나고 홀로 있는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크게 말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던 할아버지. 등에 업혀 있던 동생이 부러워 할아버지 다리를 부여잡던 나의 모습.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데 명절에도 찾아가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허락을 받고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찾아가겠다고.     


 오랜만에 본 할아버지는 쇠약해져 있었다. 귀가 더 먹어 본인 말만 계속 반복했지만 중간중간 나를 생각해주며 챙겨주었다. 요새는 잘 지내니, 힘들지는 않니, 밥은 먹었니. 배가 고프다 하자 할아버지는 자신이 자주 가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1층 정육점에서 소고기를 골라 2층에서 구워 먹는 비싼 식당.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삼겹살과 목살을 시켰다. 잘 못 시킨 줄 알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 고치려 했지만, 사장님은 알겠다는 듯 환히 웃었다. 자주 오는 식당이랬지. 고기가 입에 들어가고 맥주로 목을 축였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깊은 곳에서 올라온 말들을 했다. 혼자 수년간 살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모르겠다, 손자들이 찾지 않은 인생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아직도 새까만 할아버지의 눈썹 아래에서 빛이 번쩍였다. 할아버지는 잠깐 고개를 들어 창밖을 응시했다.      


 명절이 오면 나는 할아버지에게 전화했고 명절이 시작하기 전이나 끝나고 나서 찾아갔다. 아직 아빠와 친척들을 마주칠 용기가 없었다. 만나서 얼굴을 보았을 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첫 말을 꺼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뒤이어 올 혼란을 바로잡을 능력도 없었다. 지금은 할아버지와 만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엄마는 아직 아빠를 잊지 못했다. 나에게는 아빠를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자, 이제는 잊어버리라 했지만, 그 말을 할수록 엄마는 아빠를 잊지 못했다. 평생 미워했고 미워할 사람이 사라지면 자신의 일부가 사라질 것처럼 아빠를 꼭 보듬고 있었다. 보듬을수록 엄마는 작아졌다. 미움은 엄마의 살을 파먹었다.    

  

"이제 아빠랑 이혼하자 엄마. 너무 늦었어."      

 나의 말이 엄마에게 울리며 다가간 걸까. 그동안 이혼은 절대 안 된다며 내가 결혼할 때까지 책잡힐 일 없게 하겠다며 거절했던 엄마가 승낙했다. 변호사를 선임할 비용을 따로 모아왔다며 같이 준비하자는 엄마의 말에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아빠와 이혼 소송이 진행되자 할아버지는 내게 급히 전화했다. 엄마가 아빠 재산을 가져가면 우리 주지 않고 다 엄마가 가져갈 거고 너는 김가 사람이니까 아빠 편을 들어야 한다며 이혼은 안된다고 크게 말했다. 전화기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빠 편이라. 아빠는 내 편이었나. 엄마가 아빠를 놓게 하려고 시작한 소송인데 내 속에서 아빠가 또렷해졌다. 알아서 살라 하며 돌아서던 그 뒷모습. 언제나 의지하고 싶었지만 나를 배신했던 아빠의 뒷모습. 할아버지의 말에 건조하게 대답하고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뒷모습은 끝나지 않고 지속했다.      


 바람이 불어왔다. 호수를 스치고 억새를 어루만진 바람은 내 얼굴로 몰아쳤다. 아빠의 뒷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재산 그런 거 상관없다. 내 뼈가 어떤 가문의 뼈인지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나랑 같이 사는 건 엄마니 나는 엄마에게 있겠다. 아빠는 나 없이도 살지만, 엄마는 나 없이는 못 산다. 아빠는 날 버렸다. 나도 아빠를 버렸다. 이런 이야기를 할아버지에게 쏟아냈다. 잘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덤덤하고 큰 목소리로 천천히.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할아버지는 알겠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때 할아버지 많이 아팠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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