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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Nov 01. 2020

설이의 마지막

 설이는 현관 앞에 고요하게 누워있었다. 깨지 못하는 잠을 자듯. 다가가 하얀 털을 어루만져도 설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까만 단추 같은 눈은 끔뻑이지도 않고 빈 곳을 향하고 있었다. 설이를 안자 고개가 그대로 뒤로 젖혀졌다. 작게 내뱉는 숨소리와 신나게 흔들던 꼬리처럼 빨리 뛰던 심장 박동. 그 어떤 생의 감각도 설이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죽은 거구나. 내가 설이를 죽게 한 거구나. 나는 온 힘을 다해 울기 시작했다.      


 진돗개 크기에 털이 길고 하얗고 늘 웃는 듯한 입, 눈과 코가 새까맣게 도드라지는 개. 설이는 시베리아 사모예드 부족의 사역견 사모예드였다. 나는 인터넷 영상에서 백곰 같은 사모예드를 처음 보았다. 영상 속에서 사모예드는 주인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가 애교를 부리며 편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이 쓰다듬을 때마다 푹 꺼졌다 다시 튀어 오르는 하얀 털들. 나는 마음이 어두워질 때면 사모예드 사진을 찾아보면서 밝음을 되찾았다. 그럴수록 나는 사모예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갔다.      


 사모예드 카페에서 각종 정보를 알아두었다. 머리도 똑똑하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애교쟁이에다 호기심이 많아 말썽을 잘 부린다, 털이 삼중모라서 1년 내내 빠지고 우리나라 더위에 매우 약하다. 사모예드의 미소에 빠져서 입양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지는 털 때문에 파양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내가 온 집에 날리는 하얀 털을 처리할 수 있을 건가. 몇 개월간 고민하고 또 고민해본 후 입양하기로 했다.     


 입양은 신중했다. 사모예드를 키우는 켄넬에서 강아지의 부모, 조부모까지 확인하고 어미에게서 떨어져 살 정도로 크기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왔고 켄넬이 있는 경북 청도로 차를 몰고 갔다. 강아지의 부모들의 건강한 모습을 본 후 강아지와 대면했다. 귀가 접힌 채로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3마리의 강아지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생명이 있을 수 있지. 나는 싱긋 웃은 채 강아지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며 내게 다가오던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나와 같이 가자.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려고 꼬물거리는 강아지에게 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촌스러운 이름을 붙여줘야 오래 산다고 했지만, 누나는 내 의견을 무시했다. 이렇게 예쁜 강아지에게 촌스러운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털이 하얗게 빛나니 눈 같다고 해서 설이라고 지었다. 설이. 정말로 눈처럼 하얗고 밝았던 아이.      


 어느새 집에 적응한 설이는 무럭무럭 컸다. 접혔던 귀가 펴졌고 털이 더 자라 체구가 빵빵해졌다. 움직이거나 소리 나는 모든 것에 입을 들이대서 집 여기저기 설이의 이빨 자국이 남았다. 배변훈련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아 골치도 아팠다. 분명 똑똑하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새끼답지 않게 힘도 장사여서 설이를 가둔 케이지는 유명무실했다. 말썽을 부려 힘들었지만 설이야라고 부르면 고개를 홱 돌려 나를 보는 표정에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더운 여름에 축 늘어져 있어 냉동실에 얼려 둔 1.5리터 페트병을 주면 다리 사이에 꼭 안고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감동이 일었다.      

 1개월이 지나 덩치가 커지면서 가끔 집 밖에도 두기로 하였다. 밖에서 설이는 현관 앞에 자리를 잡았다. 내 방 창문은 현관 바로 옆에 있었기에 언제든 고개를 내밀면 설이가 보였다. 잠을 자기 전, 나는 항상 창문을 열고 작은 목소리로 설이를 불렀다. 엎드려서 앞을 바라보던 설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젖혀 나를 바라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사랑스러웠던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편히 잘 수 있었다.      


 추석 전날, 나만 빼고 모든 가족이 나가 있었다. 누나와 동생은 친구를 만나러 갔고, 아빠와 엄마는 할아버지 댁에 갔다. 나는 아무 약속이 없었기에 집에 설이와 같이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굴이나 보게 시내로 나와라. 졸업하고 나서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터라 나는 바로 승낙했다.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데 설이가 묶여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나가면 혼자 있을 설이. 나는 너도 추석 전날인데 동네 돌아다니며 재밌고 놀라고 목줄을 풀어주고 시내로 나갔다.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어깨가 시리며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전화 받자마자 엄마는 네가 설이 풀어줬어? 나는 응. 엄마는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다음에 분명히 할 말이 있었지만, 엄마는 하지 않았다. 내가 들으면 안 될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이야기해줘. 엄마는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집에 오니 설이가 죽어있더라. 멍했다. 슬프지도 않았다. 아무런 표정도 지어지지 않았고 집으로 가야겠단 생각만 들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가겠다 사과하고 서둘러 밖을 나왔다. 설이가 죽었다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머리 쓰다듬어줬는데? 내가 풀어줘서 죽었다고? 집으로 오며 나는 혼자 되묻고 부정하고 받아들이고 되물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내 눈물은 비에 섞여 들어가 설이에게로 떨어졌다. 식어가고 있는 설이의 몸. 더 춥게 하고 싶지 않아 설이를 들고 비가 들지 않는 곳으로 들어갔다. 눈에 흙이 들어가 있었다. 그 빛나는 까만 눈에 얄밉게 조그만 흙덩이가 올라가 있었다. 혹시라도 아플까 봐 흙을 입으로 불고 설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꼭 안아줬다.      


 1시간 정도 지나고 아빠가 왔다. 아무 말 없이 잠깐 나를 보고 서 있다 말했다. 이제 가자. 묻어줘야지. 안고 있던 설이의 몸이 차갑다. 설이는 죽었다. 돌아올 수 없다. 그래 이제 흙으로 보내줘야지. 나는 삽을 챙기고 아빠 차에 올라탔다. 설이를 꼭 안은 채로.     


 아빠는 우리 소유의 잔디밭 근처 작은 언덕으로 갔다.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가장 예쁜 공간을 찾았다. 예쁜 설이가 들어갈 공간. 아빠와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땅을 팠다. 눈물은 아직도 흘렀고 삽을 땅에 박는 순간 뺨에서 떨어졌다. 적당한 깊이의 구덩이가 파였다. 나는 설이를 하얀 수건으로 감싸주고 천천히 눕혔다. 흙을 덮어주면서도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설이 모습을 정말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때 내가 설이 목줄을 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가끔 이 생각이 툭 튀어나온다. 내가 꼭 설이를 죽인 것만 같아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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