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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Oct 18. 2020

하지 못 한 사과

 작은 무리에 일어난 작은 변화는 작지 않다. 내가 다녔던 산포남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겨우 분교를 피하고 초등학교라는 이름으로 위태하게 서 있던 학교였기에 전학생 한 명의 무게감은 그만큼 엄청났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아름이는 우리 학교로 왔다.      


 전학 온 첫날, 선생님 옆에 선 아름이는 키가 컸다. 눈꼬리가 내려간 눈에 동그란 안경은 신체 기관인 듯 자연스레 붙어 있었고 5대 5로 가르마를 탄 머리카락은 통통한 볼살을 살짝 가려주었다. 자신은 한아름이고 반갑다며 인사하는 아름이의 목소리는 낮았다.      


 내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면 주눅 들어서 친구가 다가와 주기만을 바랐을 텐데 아름이는 그러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그러나 부담스럽지 않게 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여자애들이 모여 말하는 곳으로 자연스레 들어가 이야기를 이어받았고 남자애들에게는 가볍게 인사하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까지 차례가 돌아왔다. 아름이는 내 앞에 우뚝 서서 밝게 인사했다.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키가 작아 항상 키 큰 사람에게 주눅이 들어 피해 다녔는데 오히려 나에게 먼저 다가온 상황에 어찌할 바 몰랐다. 나는 먼저 다가와 준 아름이의 인사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분주히 돌아다닌 덕에 아름이는 빠르게 녹아들었고 반은 활력이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아름이에 대한 나쁜 소문. 잘 씻지 않는다, 옷에서 냄새가 난다, 머리를 감지 않아 머리가 반짝거린다, 중학교 다니는 오빠가 왕따라더라. 내가 겪은 아름이는 그러지 않았다. 아이들이 소문을 이야기할 때 나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소문은 죽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들로 몸집을 불려 나갔다. 아이들은 아름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름이는 다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다가간 만큼 아이들은 물러났다. 거의 모든 아이가 아름이에게서 등을 돌릴 때쯤 나도 아름이에게서 물러났다. 이질감을 버리지 못한 채로. 아름이는 혼자가 되었다.     


 쉬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저마다 모여 이야기하거나 장난을 쳤다. 아름이만 빼놓고. 선생님에게 눈을 둘 수 있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아름이는 달리 눈을 둘 데가 없어 고개를 숙이거나 책상에 엎드렸다. 대담해진 우리는 피하는 것도 모자라 아름이 주위에서 소문을 떠들기 시작했다. 재잘재잘. 재잘재잘. 말하는 사람에게는 작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큰 그 소리. 엎드려 자는 척했던 아름이의 어깨가 들썩였고 흐느낌이 들려왔다. 흐느낌은 점점 더 커져 통곡이 되었고 우리는 당황해서 물러났다.     


 우리는 침묵했다. 무언가 크게 잘못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름이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작은 학교에 전학을 와 친하게 지내려 한 것뿐이었다. 얼마 있지도 않은 친구끼리 이렇게 잔인하게 상처를 주어도 되나. 아름이와 친했던 여자애들이 먼저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우리가 잘못했다고. 울음을 멈춘 아름이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손을 잡고 말했다.     


 그때 내가 아름이에게 사과했던가? 흐릿한 걸 보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안하고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이질적이어서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후로 아름이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준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아름이는 나를 용서했던 것 같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아름이에게 미안하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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