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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 Sep 27. 2020

너와 바다 산책

언젠가 만날 너를 기억하며

 어느 날, 낯선 갈색 솜뭉치가 집에 들어왔다. 늦은 잠에서 깨 현관을 나선 나는 옆에 놓인 처음 보는 물체와 마주쳤다. 냉랭한 바람에 정신이 들었고 다시 구석을 보았다. 개였다. 어깨높이는 30cm 정도였고 꼬질꼬질하게 기른 갈색 털은 구불구불 회오리쳤다. 나를 보는 눈동자는 기다란 눈썹 사이로 까맣게 반짝였다. 푸들인가. 행색을 보니 길거리를 오래 떠돌았나 보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몸을 숙여 손을 뻗었다. 개는 코를 내밀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배고픈 거 같은데. 집으로 들어가 보온 버튼이 눌리지 않은 밥통에서 밥을 펐다. 이거라도 먹으렴. 차가워 목으로 넘기기 힘들었을 텐데 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먹어댔다.               


 “엄마, 현관 앞에 얘는 뭐야? 엄마가 데려왔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몰라. 아침에 있더라.” 버려진 거구나. 버려져서 떠돌다 우리 집에 온 거구나. 밥을 다 먹은 푸들은 아까처럼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더 가까이 가보았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검지와 가운뎃손가락으로 코에 갖다 대고 조금씩 콧날을 따라 정수리로 올라갔다. 푸들은 경계하지도 놀라지도 않고 눈만 깜빡였다. 반응을 확인하고 손바닥으로 정수리에서 목덜미까지 쓸어주었다. 뭉쳐있는 털이 끈적하게 손에 달라붙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서로서로 받아들였다는 상징적인 행위. 아니, 불쌍했다. 삶에 내몰려 낯선 존재를 경계하는 힘조차 사라진 존재. 나는 푸들의 옆구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 나를 놔두라고 몸부림이라도 치길 바랐다. 하지만 푸들은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축 처진 어깨와 알아서 하라는 눈빛. 그 눈빛을 보고 어디론가 흘러 들어가 조용히 눈감았을 옛날 우리 집 강아지 복실이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납작한 키와 땅에 닿을 듯 긴 털에 가려진 반짝이는 두 눈. TV에서 본 삽살개가 떠올랐다. 화면 속 삽살개는 긴 털을 휘날리며 마당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턱이 푸근한 주인은 자기 개가 귀신을 쫓을 정도로 용맹하다며 리포터에게 자랑했다. 귀신을 쫓는다니. 순간 으스스했지만, 주변을 주시하는 개의 눈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지금 우리 집 마당에 삽살개와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있다. 흩날리는 털, 힘 있는 눈. 나는 삽살개일 거라 확신했다. “얘는 삽살개야?” 확답을 받아내려 엄마에게 물었다. “그럼, 얘는 삽살개야.” 정말, 이 강아지가 삽살개라니. 그동안 우리 집에는 똥개만 들어왔다. 꼬순내 나는 똥개 새끼들을 보듬어 잘 살폈지만 언젠가 품종 있는 개가 들어오기를 바랐다. 드디어 들어왔다. TV에 나오는 그 늠름한 개가. 나는 신나 하며 누나, 동생과 함께 이름을 지어줬다. “털이 복슬복슬하니까 복실이로 하자!” 누나의 말에 우리는 동의했고 강아지는 복실이가 되었다.               


 내가 살던 봉정마을은 100가구가 안 되는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부는 버스가 지나지 않는 작은 길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야 나타났다. 우리 집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 큰길 쪽에 자리했다. 학교가 끝나고 나는 한 시간마다 오는 버스를 탔다. 매캐한 냄새를 뿜는 아크릴 공장 앞에 내리면 복실이는 저 멀리서부터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사이가 좁혀질수록 복실이는 기뻐하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 했다. 밭 끝에 다다라서는 주위를 뱅글뱅글 돌면서 내게 뛰어올랐다. 나를 기다리고 반갑게 맞이할 존재가 있다는 뜬뜬함. 그 존재가 되어주는 복실이가 너무나 예쁘고 고마웠다. 어느 날, TV에서 개와 함께 해변을 걷는 사람을 보았다. 개는 스르르 밀려오는 파도와 닿을 듯 말 듯 장난치고 주인은 열 발쯤 떨어져 우두커니 미소 지었다. 복실이도 바다를 보면 좋아하겠지? 큰 바다와 마주하여 맡아본 적 없는 냄새로 코가 가득 차면 어지러우면서도 설레겠지? 언젠가 나에게도 차가 생기면 같이 가야겠다. 나도 복실이에게 기쁨을 줘야겠다.               


 시간이 지나고 복실이는 나를 반기는 일에 지쳤다. 가볍게 뛰어와서 내 주위를 두세 바퀴 돌뿐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작아진 건 아니었다. 늙어간 것이다. 그동안 복실이의 숨소리는 얕고 거칠어졌고 군데군데 하얀 털이 나왔다. 마당을 돌아다니기보다 앉아 있었고 밥 먹는 양도 줄었다. 눈은 조금씩 탁해졌다. 아빠는 복실이 이후로도 강아지를 더 데려왔다. 다 큰 강아지들은 복실이보다 작기도 했고 크기도 했다. 내가 오면 큰 개는 복실이를 옆으로 밀어내고 반갑다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네 발로 뛰는 큰 개가 기특해 머리를 쓰다듬었고 주변을 서성이는 복실이와는 눈만 마주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복실이가 보이지 않았다. “복실이 어디 갔어?” 엄마는 큰 개가 복실이 밥을 다 뺏어 먹고 괴롭혀 수박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에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복실이는 종종 일하러 간 엄마를 따라 비닐하우스에서 놀곤 했었다. 엄마 곁에 있어 주던 그곳이 이제는 복실이의 유배지가 된 거다. 복실이를 왜 지켜주지 않았냐 따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도 복실이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엄마를 따라 복실이를 찾아간 날, 복실이는 차 소리를 듣고 농수로 옆길을 따라 달려왔다. 바람이 불었고 복실이의 거친 털은 훌훌 날아가려 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맑은 눈. 나는 쪼그려 앉고 두 팔을 벌렸다. 그리고 복실이를 안아줬다. 어디 갔었어. 그동안 보고 싶었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복실이는 비닐하우스에 적응한 듯 보였다. 어디선가 엄마가 데려온 두 마리의 개가 복실이와 같이 있었다. 엄마는 복실이가 비닐하우스에서 잘살고 있다며 집에 데려가려면 큰 개를 쫓아내야 하니까 그냥 여기서 살게 해주자 말했다. 나는 해맑게 웃는 복실이와 복실이를 안아주는 엄마를 보며 그러자 했다. 내가 아껴주지 않아도 잘 살았구나. 미안하고 대견했다.               


 운전에 익숙해진 나는 차를 몰고 비닐하우스로 심부름하러 가게 되었다. 언덕을 넘고 시멘트가 겨우 깔린 구불구불한 논길을 따라가면 멀리 하얗게 반짝이는 비닐하우스가 보였다. 그리고 비닐하우스에서 출발한 작은 점은 나에게 뛰어오면서 복실이가 되었다. 사이가 조금씩 좁혀질수록 속도를 점점 줄였다. 복실이는 나와 마주치면 방향을 바꿔 비닐하우스 쪽으로 속도를 맞추어 달렸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복실이는 자신이 만든 경계선까지 쫓아오다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복실이가 작은 점이 될 때까지 룸미러를 힐끗 보았다.          

 

 우리 집은 왕복 4차선 도로와 가까운 마을로 이사했다. 내가 살던 집에는 계획도시가 들어오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흩어졌고 내가 태어났던 할아버지 집은 허물어져 땅속에 묻혔다. 기분 나쁜 냄새가 나던 아크릴 공장도 사라졌다. 우리 비닐하우스는 아슬아슬하게 경계 밖에 머물러있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복실이도 그곳에 머무를 수 있었다. 새로운 집과 비닐하우스의 거리는 멀었고 나는 입영을 앞두고 있어 복실이를 보는 일은 뜸해졌다.            


 1월 15일,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의정부행 차에 오르며 끝났고 한숨이 나왔다. 창문 밖 나무들은 왜소하고 거칠었다. 창백한 풍경에 곧 잘릴 머리카락을 손으로 다시 쓸어본다. 머리카락이 커트보 위로 떨어지며 한숨은 깊어졌고 연병장 입구에 서자 가슴이 조여왔다. 구령대로 모이라는 방송. 쿵쿵 울려대는 소리에 나는 잘 있으라고 100일 후에 나오겠다며 씩씩하게 대답했고 고개를 다 돌리기 전에 눈물은 뺨으로 흘렀다. 짧은 머리 남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은 볼록하고 오목했다. 그동안 잘 못 살아온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고 복실이 얼굴도 두어 번 떠올랐다. 복실이는 잘 있을까. 내가 안 보여서 궁금하겠지? 가기 전에 한번 보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잘 지내겠지? 남자들 무리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고 나는 몸과 마음이 굳어졌다.                


 얼었던 땅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나는 빳빳한 주름이 진 군복을 입고 민통선을 벗어나싿. 휴가자들을 태운 차량은 문산역에서 멈췄고 차를 몬 선임은 부대 꼭 복귀하라 일러두고 떠났다. 한 시간에 한 대 떠나는 열차에 앉자 긴장이 풀렸고 그제야 설레기 시작했다. 6시간이 지나고 점심이 막 지날 무렵 나는 집에 도착했다. 무거웠던 모자와 옷을 벗어버리고 거실에 크게 누웠다. 서늘한 기운이 들으로 스며들었고 마음은 스르르 녹아들었다. 


 짧은 휴가지만 엄마를 따라 비닐하우스로 왔다. 그동안 엄마 일을 도와주지 못했고 복실이 본 지도 오래되었으니까. 논과 밭에는 작은 잡초들이 일어나고 있었고 거름 냄새는 바람을 타고 흘렀다. 우리가 탄 차 뒤로 흙먼지가 날렸고 나는 비닐하우스를 바라보았다. 작은 점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도. 폭신한 흙을 밟다 개 발자국을 보았다. 복실이는 놀러 갔나? 복실이와 같이 있었던 개들만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엄마에게 복실이는 어디 갔는지 물었다. 복실이는 쫓겨났다고 한다. 집에서 쫓겨난 것처럼 똑같이. 늙어서 약해진 몸으로 크고 젊은 개들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론가 갔다고. 복실이는 어디로 갔을까. 잠깐 멍해진 나는 돌을 들어 개들을 향해 던졌다. 꺼지라고. 여기서 보이지 말라고. 복실이를 데려오라고.


 “도착하면 전화할게.” 집을 나오고 용산행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단단한 두 개의 쇠줄을 타고 흘렀고 창밖은 반대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멀리 한적한 농가에서 개들이 뛰놀고 있었다. 복실이가 떠올라 가슴에 헛헛함이 퍼져갔다. 갈수록 지쳐가는 복실이를 보고 난 이별이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순간이 온다면 복실이가 볼 마지막 세상이 나이길 바랐다. 나를 보다 숨이 멈추면 곱슬곱슬한 털에 가려진 눈을 감기고 곱게 묻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복실이는 내 품에 없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복실이를 떠올리는 일뿐이었다. 차라리 죽어있는 모습으로 만났더라면.                


 집에 새로 들어온 푸들에게는 희망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밤색 털을 가지고 자세가 꼿꼿한 희망이는 잘 으르렁거렸다. 떠돌아다닐 때 험한 일을 많이 겪었겠지. 그래서 이빨을 자주 보여주는 거겠지. 희망이가 떠돌던 시절을 상상하다 복실이가 떠올랐다. 어쩌면 희망이는 복실이가 지났던 곳을 지나고 지낸 곳에서 지내지 않았을까. 희망이는 밖을 나가면 온 세상이 궁금한 듯 눈을 땡글, 귀를 쫑긋하고 코를 킁킁댄다. 그러다 차에 타면 곧바로 멀미한다. 문을 열어주면 신이 나서 좌석 앞뒤를 번갈아 돌아다니는 희망이. 시동을 켜고 출발하면 희망이는 얌전히 내 무릎에 엎드리고 고개를 아래로 축 늘어뜨린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정수리부터 꼬리까지 천천히 쓸어준다. 희망이는 적당히 따뜻했고 엉켰던 털이 조금씩 풀리자 덜 고불거렸다.               


 1시간 30분을 차로 달려 도착한 바닷가. 평야처럼 펼쳐진 갯벌에서 오래 쌓인 짠 내가 난다. 희망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기를 찾았고 코를 최대한 벌려 생전 처음 맡는 냄새를 받아들였다. 갯벌에는 작은 구멍들이 수없이 뚫려있었고 수없는 짱뚱어들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볼록한 볼을 쉴 새 없이 부풀리면서 지느러미로 기어 다니는 작은 생명체들. 희망이는 무엇인지 확인하러 갯벌로 달려 나갔지만 나는 목줄을 놓아주지 않았다. 진흙에 덤벼들 테니까. 아쉬운 대로 갯벌에 인접한 산책로를 따라 같이 걸었다. 산책로에 쌓인 모래알 한 톨도 희망이에게는 새로운 세상인가 보다. 여기저기 코를 박고 들이미느라 앞은 거의 보지도 않았다. 즐겁니, 희망아. 복실이도 바다에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 끝이 아쉽다. 복실이는 내 곁에 있다 떠돌았고 희망이는 떠돌았지만 이제 내 곁에 있다. 바다의 짠 내와 아쉬운 마음을 같이 고이 접어 어느 날 다시 복실이를 만났을 때 널 위해 준비했노라고 펼쳐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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