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사람들은 부모를 요양원에 모신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부모를 버렸다고,
현대판 고려장이라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요양원에 부모를 모시는 건 불효인 걸까?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내가 느낀 건 현대판 고려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고려장이란 우리나라의 풍습도
아닌 데다, 그 옛날 부모를 산속에 버린다는 것은 산짐승에게
해를 당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 고려장과 요양원을 같다고 하는 건 잘못된 일일 것이다.
요양원에 부모를 모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인 건
분명하다.
사람들은 부모를 자녀가 끝까지 돌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할까?
시설 요양원에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내가 느낀 건
‘절대 그럴 수 없다’이다. 어르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이곳에는 자녀가 케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경우의
어르신이 훨씬 많다.
교대 근무를 하는 우리들도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어르신의 상태가 급변할 때에는 더욱더 그렇다.
어느 어르신은 우리가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몸부림이
심해 제대로 케어를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설명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목욕이나 기저귀 케어를 할 때는 더욱 힘들었다.
보호자는 어르신 귀에 대고 “어르신, 기저귀 할게요”,
“목욕할게요”라고 말씀드리면 된다고 하셨지만,
어르신께 우리의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 어르신 목욕 날 보호자가 함께 하게 되었다.
어르신 목욕이 힘들다는 말을 듣고 목욕 때마다 오시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보호자가 있으면 나을까 싶었지만 결국
다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 두 명이 하던
목욕이 세 명으로 늘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목욕이 보호자가 참석한 첫 목욕이자 마지막
목욕이었다. 아마 보호자도 지켜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어르신을 케어하는 우리들도 힘든데
보호자들이 할 수 있을까?
오롯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일하며 여러 가족을 만났지만, 부모를 쉽게
요양원에 모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버티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와서야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죄책감 또한 느꼈을 것이다.
부모를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효를 하는 것
같아서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나는 느낀다.
요양원에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부모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을 함께 나누는 선택에
더 가깝다는 것을.
누군가는 집에서 돌보고 싶었을 것이다. 끝까지 곁에서
모시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요양원은 나쁜 곳이 아니라, 필요한 곳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마지막 시간을 맡기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함께 버티는 공간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