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본 반도체 업계 생태계 전반으로 퍼진 경쟁력 약화
후지쯔 반도체의 쇠망사
일본의 대표적인 IT 기업인 후지쯔는 1923년, 후루카와 전기 (Furukawa Electric)와 독일의 지멘스가 합작으로 설립한 전기통신 전문 회사 후지전기 (Fuji Electric)가 그 전신입니다. 1935년, 후지전기의 통신 부문만 분리하여 '후지 통신기 제조 주식회사 (Fuji Tsushinski Manufacturing Copporation)'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통신 및 전기 제품 제조사로 변신하였죠. 1967년, 사명이 후지쯔로 개명되었고, 1970년대부터 세계 대형 컴퓨터 (메인프레임) 시장의 강자로 자리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PC 사업에 진출하여 일본의 대표적인 PC 업체가 되기도 하였으며, 슈퍼컴퓨터 업계에서도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 들어, 후지쯔는 '후지쯔 세미컨덕터'라는 반도체 자회사를 세우며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도 소용량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 눈을 돌렸습니다. 후지쯔가 DRAM 대신 플래시 메모리에 주목한 것은, DRAM의 급격한 경쟁 구조와 수익 변동성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DRAM에 비해 응용 분야가 더 다양하고 향후 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등의 신 IT기기 용 메모리로의 확장 가능성이 돋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1993년 4월, 후지쯔는 NOR형 플래시 메모리*
*(비트선과 접지선 사이에 셀이 병렬로 배치된 구조. NOR형은 다시 AND형, DNIOR형, VGA (Virtual Ground Array) 형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NOR형 플래시 메모리는 1988년, 미국의 인텔이 발표한 EP롬 셀 구조를 이용한 ETOX (EPROM tunnel oxide)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아키텍처를 채용하고 있다.)
의 시장 장악을 위해, 당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미국의 반도체 회사 AMD와 연합을 이루었고, 두 회사는 50:50의 지분 구조로, 자산 규모 약 30억 달러, 약 7천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FASL (Fujitsu AMD Semiconductor Limited)이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1990년대의 AMD는 현재의 AMD와는 다르게 CPU보다는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하던 반도체 회사로서, 특히 NOR형 플래시 메모리 기술에서 인텔 다음으로의 강점을 가지고 있던 대형 업체이기도 했죠.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에 두었던 합작 회사는 ‘스팬션 (Spansion)’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NOR형 소용량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 집중하였고, 약 40%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후지쯔-AMD 연합은 대용량 플래시 메모리에 대한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NAND형**
**(비트선과 접지선 사이에 셀이 직렬로 배치된 구조. 1987년 일본의 도시바가 제안한 플래시 메모리 아키텍처로서, NOR형 플래시 메모리에 비해, 셀 당 면적이 더 작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64Mb 플래시 메모리로의 업종 전환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플래시 메모리 업황이 NAND형 위주로 재편되자,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FASL의 수익성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2003년 4월, 두 회사는 NOR형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분리시키면서, 각 사의 남은 플래시 메모리 사업을 분리하여 아예 한 회사를 만들기로 합의하였습니다. 2003년 7월에 이 회사의 이름을 옛 사명인 FASL로 임시로 정했다가, 이듬해 2004년 6월, 회사명을 아예 '스팬션'으로 바꾼 후, 2005년 12월, 합작 회사가 미국 NASDAQ에 상장되기도 했습니다.
스팬션은 출범과 동시에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습니다. NAND에 비해 저장 용량 면에서 단점을 보이던 NOR형 플래시 메모리의 대용량화 기술을 개발함과 동시에, 양산 규모도 확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죠. NOR형 플래시 메모리의 대용량화 기술은 실제로 이스라엘 플래시 메모리 기술 업체인 Saifun semiconductor의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고, 마침내 2005년 10월부터, 1 Gbit 용량의 NOR 플래시 메모리 양산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 10월, 스팬션은 아예 Saifun semiconductor를 인수하였고, 당시 기준 최첨단 기술인 미러비트 (MirrorBit) 기술을 적용하여, 더욱 NOR형 플래시 메모리의 대용량화, 고속화를 추구하였습니다.
스팬션은 양산에도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양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전의 200 mm 웨이퍼 생산 라인을 후지쯔에 매각하고, 그 대금으로 300 mm 웨이퍼 라인을 건설, 2007년 9월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차세대 기술 개발에도 힘을 써, 향후 서버 용 DRAM을 대체할 수 있는 플래시 메모리인 EcoRAM과 저항변화 메모리 기술 등에 대한 선행 기술 개발에도 막대한 투자를 하였습니다. 2005년 기준으로, 스팬션의 매출액은 약 20억 달러였는데, 연구개발비는 그 15%인 3억 달러나 되었을 정도로 스팬션의 기술 개발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이 비율은 2007년에 이르러서는 17.4%까지 확대되기도 하였죠.
그러나 스마트폰의 보급이 시작되고, 디지털 가메라 시장이 축소되는 등, 대용량 플래시 메모리 업계의 수익성은 해가 거듭될수록 악화되었고, 스팬션의 과도한 연구개발 투자비용이 장기간 회수되지 않으면서, 스팬션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연속으로 막대한 적자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2005년 2억 8,500만 달러, 2006년 9,100만 달러, 2007년 2억 4천만 달러, 그리고 2008년에는 22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규모의 연속 적자는 결국 회사의 재무 건전성을 망가뜨려, 2009년 2월, 스팬션은 파산했습니다. 이러한 스팬션의 과도한 적자의 원인은 1차적으로는 시대의 대세가 된 NAND에 대항하기 위한 NOR 중심의 기술에 대한 과도한 연구개발 비용의 회수 효율 저하였지만, 두 번째 문제는 야심 차게 준비한 300 mm 웨이퍼 라인 건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에도 있었다. 수율 향상과 원가 절감을 위해 야심 차게 투자한 300 mm 웨이퍼 라인은 수율의 감소와 추가 장비 비용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라는 악재를 가져왔고, 이는 스팬션의 양산 가격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었습니다.
스팬션이라는 한 회사였지만, 그 회사 아래, 사실 일본의 후지쯔와 미국의 AMD는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던 것도 문제였습니다. 스팬션의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데일에 있지만, 그 파트너인 후지쯔의 생산 공장은 일본 후쿠시마에 있었고, 미국 본사와 일본 현지 스팬션 재팬 사이의 의사소통은 오래전부터 잘 되지 않고 있는 징표가 뚜렷했으니까요. 사실 야심 차게 준비한 300 mm 웨이퍼 라인의 실패도 이러한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300 mm 라인의 건설 자금이 제때 미국의 본사로부터 송금되지 않았다는 것이 후일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스팬션 본사는 2009년 3월, 미국 연방파산법 11장에 의거 파산을 신청한 후, 회사를 바로 청산하기보다, 그 기회를 이용, 플래시 메모리 주종을 그때까지 투자를 집중하던 NOR 대신 NAND로 전환하였습니다. NOR가 타깃으로 삼던 핸드폰 용 플래시 메모리 시장을 포기하고, 대신 대용량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한 것이죠. 이를 위해 스팬션은 연구개발비를 대폭 삭감하였고, 일부 공장을 매각하였으며, NAND 플래시 메모리 생산을 위해 위탁 업체와 계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오히려 2010년이 되자, 스팬션의 영업 이익은 적자 기조에서 흑자로 돌아섰으며, 이를 계기로, 스팬션은 다시 새로운 자회사인 '재팬 스팬션'을 2010년 1월에 설립하였다. 이로 인해 법정관리 신세였던 '스팬션 재팬'은 자력 생존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회사는 제조 부문을 매각하여 부채를 갚고, 회사를 청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2010년 7월,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TI)는 스팬션 재팬의 일부 공장을 인수했고, 8월에는 두 회사 사이에서 NOR형 플래시 메모리 위탁 제조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즉, TI가 인수한 스팬션 재팬의 공장이 TI가 인수한 NOR형 플래시 메모리의 파운드리가 된 셈이었죠. 이로써 스팬션 재팬은 완전히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다시 새롭게 출발한 재팬 스팬션은 2012년 2월 마침내 NAND형 플래시 메모리를 상용화하였고, 한국의 SK하이닉스에 생산을 위탁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동시에 NOR형 플래시 메모리 역시 대용량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여, 중국의 파운드리 업체인 XMC와 위탁 계약을 체결한 후, 2010년 11월 2 Gbit 제품을, 2011년 8월에는 4 Gbit 제품을, 2012년 11월에는 8 Gbit 제품을 차례로 상용화하는 등, 무서운 속도로 시장에 다시 복귀하였습니다. 마침내 적자 구조도 개선되어 2012년, 재팬 스팬션은 영업 이익이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후지쯔는 길고 긴 AMD와의 파트너십 청산 과정에서 이미 너무 많은 손해를 플래시 메모리 사업에서 감수해야 했고, 이는 후지쯔 그룹의 반도체 사업 정리를 결심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습니다. 2013년 4월, 재팬 스팬션은 플래시 메모리 일변도의 사업 구조에서 탈피하여, 후지쯔의 마이컴 아날로그 반도체 사업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마이컴 아날로그 반도체 사업은 재팬 스팬션 입장에서는 사업 분야가 완전히 바뀔 수도 있는 결정이었죠. 후지쯔 그룹 입장에서는 연 매출액에서 1.3% 정도 차지하던 마이너 사업 부문으로서, 후지쯔로는 전반적인 사업 구조에 큰 영향이 없었던 인수였지만, 후지쯔로서는 플래시 메모리는 물론 반도체 관련 사업 전반을 정리하려는 신호탄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플래시 메모리를 비롯하여 각종 반도체 사업에서의 수익성 악화로 인해 10년 이상 구조조정에 시달리던 후지쯔는 마침내 2014년 7월,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주력 반도체 공장 2곳을 미국의 온세미컨덕터와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UMC에 각각 단계적으로 매각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반도체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이미지 처리용 시스템 LSI 반도체를 생산하던 공장은 대만의 UMC에, 차량용 마이크로컴퓨터 (ECU)를 생산하던 공장은 미국의 온세미컨덕터에 매각하기로 하면서, 후지쯔의 반도체 사업도 막을 내리게 된 것이죠. 2013년 기준, 후지쯔의 반도체 사업 전체 매출액은 3,216억 엔이었는데, 후지쯔는 반도체 사업을 정리하면서 실적과 투자 부담이 큰 사업의 변동성과 분리를 추구하였고, 절감한 비용은 다시 클라우드 사업 등에 집중하려는 경영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르네사스의 쇠망사
DRAM 반도체 부분에서 엘피다 메모리의 패착이 두드러졌다면, SoC (system on chip)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부분에서는 르네사스 (Renesas Electronics, ルネサス エレクトロニクス株式会社)라는 반도체 기업의 쇠망사가 눈에 띕니다. 2003년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 전기의 시스템 반도체 부문이 합쳐져 SoC 합작사로 출발한 이 회사는, 2010년에는 NEC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까지 가세되어 더 덩치가 커졌습니다. 일본의 반도체 5인방 중 세 회사였던 NEC, 히타치, 그리고 미쓰비시가 합쳐져서 출범한 메모리 반도체 공룡이었던 엘피다 메모리가 재차 오버랩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르네사스 전자는 겉으로는 사기업이었지만, 일본 정부와 민간이 연합하여 일종의 공기업으로 만들어 버린 회사이기도 했습니다. SoC나 시스템 LSI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는 DRAM 같은 메모리 반도체와는 달리, 업황의 변동에 대해 수익률 기복이 심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수익률을 극대화시키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러나 백색가전부터 엘리베이터 같은 산업용 전기제품, 전력 반도체부터 IoT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르는 기술의 특성상, 모든 분야에서의 공통적인 요소 기술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로 인해 시장 점유율이 높더라도, 알맹이, 즉, 수익률은 낮은 딜레마에 자주 빠지게 되는 것이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업계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기술력을 믿고 고용 보존과 업계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 일본 정부와 회사들은 무리한 합병을 추진했고, 그로 인해 탄생한 공룡은 겉으로는 거대한 몸집으로 시장을 모두 장악할 것으로 보였지만, 오히려 그 거대한 몸집으로 인해 빠른 경영 효율은 저하되고, 복잡한 내부 정치만 공고해져, 타이밍을 맞춰야 하는 의사결정은 날로 더 어려워져 갔고, 각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는커녕, 이미 잘하고 있던 분야에서의 경쟁력마저 다른 분야에 맞춰 하향 평준화되는 역효과를 불러왔습니다. 이는 당연히 르네사스의 수익률 악화로 이어졌고, 억지로 유지하던 시장점유율은 이 수익률을 더욱 네거티브로 만드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실제로 2010년 기준, 차량용 마이크로컴퓨터 (ECU)에 대해서 전 세계 42%의 점유율, 산업용 마이크로컴퓨터로 확장해도 시장점유율 30%를 자랑하는 르네사스였지만, 이는 겉보기 수치일 뿐, 실제 영업이익률은 0.61%에 불과한 속 빈 강정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아예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가 되었고, 그 규모는 1,150억 엔에 달하게 되었죠. 동 시기, 마이크로컴퓨터의 경쟁 업체인 인텔의 영업이익률이 36.5%에 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충격적인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익률 악화에 시달리던 르네사스는 세계 최대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마이콘 (MCU, Micro Controller Unit) 사업 부문을 대만의 업체에 매각하고, 종업원의 30%를 해고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르네사스가 이러한 고비용 저효율 사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은 엘피다 메모리가 그랬던 원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영 구조의 복잡도로 인해 의사 결정이 빠르지 않고, 기술에 대한 맹신이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함정을 피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파나소닉 반도체 쇠망사
전통의 일본의 반도체 5인방이 1990년대 이후 겨우 20년 만에 차례로 쓰러지는 와중에, 충격적인 소식은 또 들려왔습니다. 일본 반도체 회사 중에서 가장 먼저 (1952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했고, 비록 5인방은 아니었지만, 1990년대 전후, 세계 상위 10위권 이내의 자리를 굳게 지키던 업계의 선구자이자 전통적인 강자인 파나소닉마저도 연이은 거대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마침내 사업을 접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거대했던 공룡이자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선구자 파나소닉의 몰락 역시 사실은 일찍부터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파나소닉은 기술의 혁신에 적응하기는커녕, 자사의 가전제품에 탑재할 목적에 국한된 반도체 제조에만 만족함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가전제품의 경쟁력은 반도체 산업보다 훨씬 앞서 이미 중국산, 한국산 제품에 대한 경쟁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 2014년 도야마현 등에 있는 공장 3곳을 타워재즈와 공동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데 이어, 오카야마현에 있는 2곳의 공장은 폐쇄, 2019년 4월에는 가전용 다이오드 같은 중저가 반도체 사업마저 일본 반도체 기업 롬에 매각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대한 공룡 파나소닉의 이러한 자구책 역시 글로벌 반도체 경기의 둔화와 기술 경쟁에서 밀린 회사의 현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2008년에 설립되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지금은 사물인터넷 등에 널리 이용되는 마이크로 제어장치 (MCU) 등의 산업용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고 있는 회사에 인수된 파나소닉의 현실은 반 세기의 역사 차이가 무색하게, 중생대의 공룡이 신생대의 작은 포유류에게 잡혀 먹히는 상황을 연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