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본 반도체 산업이 쇠망하게 된 원인
일본 반도체 왕국의 실패 요소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일본의 굵직한 반도체 업체들의 쇠망사에는 공통적인 패착이 보입니다. 일본 반도체 왕국의 패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일단 가장 큰 패착은 기술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 그로 인한 세계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 저하입니다. 두 번째 패착은 혁신의 딜레마입니다. 시장을 압도하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한 혁신 기술이 오히려 수익률의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세 번째 패착은 정부, 즉, 국가의 과도한 간섭입니다. 이는 본래 일본의 반도체 업계 초창기에는 든든한 보호막이자, 비용을 절감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해 줬던 훌륭한 플랫폼으로 작용하였으나,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꼴이 된 셈이죠. 이러한 요인들이 어떻게 일본 반도체 왕국의 쇠망으로 연결되었는지 이제부터 하나씩 살펴봅시다.
기술력이라는 함정
일본이 이토록 기술력에 대한 고집으로 다른 요소를 놓친 연유는 무엇일까요? 경영자들의 근시안,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경영자의 부재, 무리한 흡수 합병 및 기업 문화 융합 실패로 인한 효율 저하, 정부가 주도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업체 생태계 혼란, 연구개발진의 지나친 '장인정신'도 있겠지만, 그전에 자국의 기술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심어 준 사회 분위기도 들 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일본의 서점가에는 지나칠 정도로 자국을 찬양하는 (예를 들어, '왜 일본 민족은 우수한가?', '왜 일본의 기술력은 세계 제일인가?', '왜 일본은 한국과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나라인가?', '왜 선진 각국은 일본을 배우려고 하는가?' 같은 류의 제목을 갖는 책들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 책들이 넘실댑니다. 일본인들이 겉으로는 겸손한 자세를 취할지 몰라도, 속으로는 이른바 국뽕, 즉,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반도체, 전자 산업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차세대 반도체 기술, 제품이 시장에 발표되면 일본의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며 일본의 앞선 기술력을 앞다퉈 찬양하기에 바빴습니다. 영어에서 유래된 외래어를 유난히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특히 ‘혁신 (革新, Kakushin)’이라는 일본어 대신, 굳이 ‘이노베이션 (innovation, イノベーション)’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했으며, 초고성능, 오버 스펙 (over spec),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술 수준을 갖는 것이 지상 최고의 미덕인양 찬양하기에 바빴습니다. 이노베이션에는 협의로서 '기술 혁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는 기술 혁신을 포함한 기술의 폭발적인 시장 장악 (보급)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협의로서의 기술 혁신에만 주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기술력에 대한 과신과 과도한 포지셔닝이 산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기업들로 하여금 자사의 기술에 대해 스스로 취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기술에 목을 매고 회사의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무언의 압박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더 진보된 기술을 만들 여력이 있는데, 굳이 경영 전략 상, 세계 시장을 고려하여 스펙을 낮추거나 수율을 희생하거나 다른 나라의 장비를 더 비싸게 사 와야 할 이유를 못 찾았으며, ‘해냈다 일본!’이라는 지상명령은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로 하여금 무한한 기술 경쟁의 무대에만 시선을 돌리게끔 하는 최면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제조업의 발전에 있어 꾸준한 기술 개발 투자는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기술에 대한 회사 차원의 과감한 투자가 없으면 회사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시간이 지나면 존폐 위기의 기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한 방향으로의 기술 투자는 언제든 다른 '파괴적 기술 (disruptive technology)'에 의해 갑자기 판도가 뒤집힘으로써 사장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2020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팩스를 기업 비즈니스에 활발히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인데,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한 의사소통보다 팩스를 통한 의사소통이 훨씬 비효율적이고 느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 특유의 고집과 전통에 대한 존중 의식 때문에 팩스는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효율성을 중시한다면 팩스 대신 이메일이 주된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아야 하지만, 오히려 팩스를 디지털화시킨답시고, 팩스 메시지를 이메일로 전달해 주는 시스템마저 생기고 있을 정도입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팩스를 디지털 이미지로 바꿔 이메일로 전송할 정도의 기술이라면, 그냥 이메일 통신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팩스라는 오래된 통신 기술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 한 나머지, 팩스를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기술과 병존시키려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촌극 아닌 촌극이 21세기가 20년이나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문제는 팩스를 파괴적으로 대체한 이메일이나 메신저가 대부분의 기업 비즈니스에서는 아주 상식적인 통신 수단이 된 것처럼, 반도체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입니다.
시장을 뒤집기 위한 '파괴적 혁신 기술'은 굳이 특정 회사가 사운을 걸고 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벤처 기업이나 심지어 대학 휴학생이 자신의 집 차고에서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 파괴적 기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파괴적 기술이 될 조짐이 보이면, 그것을 최대한 이른 시점에 파악해야 하는 민감성과 의무를 가진 쪽은 결국 그 기술이 퍼져 나가게 될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들입니다. 만약 어떤 회사에 이 파괴적 기술의 혁신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알아봤더라도 애써 무시하는 사람이 주로 의사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쪽이라면, 그 회사는 어쩔 수 없이 파괴적 기술에 대한 도입이 늦을 수밖에 없고, 결국 회사가 가지고 있던 구식 기술은 파괴적 기술로 순식간에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사의 시장 장악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반도체 회사들의 경우, 공통적인 실착 중 하나가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 권한이 마케팅 인력보다 기술개발 인력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엘피다의 경우,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우대는 매우 유명했고, 특히 개발부서와 양산 부서 중에서도, 개발부서가 훨씬 우대받는 환경에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경쟁 업체였던 미국 인텔의 경우, 개발부서와 양산 부서를 동등하게 대했던 점과도 차이가 나는 부분이고, 삼성의 경우, 개발과 양산을 아예 구분조차 하지 않고, 부서 간 이동을 자유롭게 만들어 기술개발 인력이 마케팅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큰 차이점이기도 했습니다. 설사 입사 직군이 개발 혹은 양산 부서였다고 하더라도, 삼성은 우수한 인재로 판단될 경우, 지체 없이 동의를 받아 그 인재를 마케팅으로 전환 배치하는 등, 자사의 우수 자원을 공정과 양산 개발에 앞서 마케팅에 배치하는 공격적인 인재 경영 전략을 펼쳤습니다. 엘피다 메모리의 경우, 기술개발 인력들이야 본인들이 개발해 오던 이전 세대 기술의 로드맵이 확실하고, 그 로드맵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니, 파괴적 기술에 대한 데이터를 보고 받은 상태라고 해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과감한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통했던 기술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유능한 엔지니어나 과학자는 계속 그 기술이 통할 것으로 믿고, 더 열심히 기술 개발에 매진하여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밖에 없으니, 새로운 기술에 대한 모험을 걸어 보기란 연구개발진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케팅의 본질은 시시각각 생물체처럼 변하는 시장의 변화를 최대한 이른 시각에 감지하는 것이고, 벌어 놓은 시간만큼 판매 전략을 재빨리 변경하여, 시장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조변석개하는 고객의 마음을 감지해야 하고, 그를 분석하여 고객의 니즈를 맞출뿐더러, 고객이 ‘원할’ 니즈도 미리 예측하여 그에 대응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술에만 이노베이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에도 이노베이션이 있는 것이며, 마케팅의 이노베이션을 게을리하면 기술의 이노베이션은 그 효과가 반감되고, 심지어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의 마케팅 인력들은 회사 내에서의 포지션 상, 충분한 반대 의견을 내지 못 한 채 파괴적 혁신 기술이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것을 눈뜨고 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파괴적 혁신과 혁신의 딜레마
이는 과거, 세계적인 기업경영 전략가인 하버드 경영대학원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Clayton M. Christensen) 교수가 제안한 ‘혁신 기업의 딜레마 (Innovator`s Dilemma)’의 전형적인 사례로도 볼 수 있습니다. 1995년 최초로 ‘파괴적 혁신’의 개념을 창안하기도 한 장본인이자 기업혁신이론 전문가였던 크리스텐슨 교수가 말하는 ‘혁신의 딜레마’는, 결국 거시적으로 봤을 때 ‘파괴적 혁신’과도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그가 말한 원래의 의미는 어떤 기업이 놀랄만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에서 성공을 경험했을 경우, 그것이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에 장애물이 되는 커다란 관성 질량 같은 효과를 가져오고, 관성에 젖은 기업은 기존의 비즈니스 방식에만 고집하게 되며, 이미 확보한 고객의 충성도만 고집하는 우를 범하여, 결국 갑자기 시장에서 도태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폰 같이, 아예 시장을 새로 만들어 버리는 파괴적 혁신 기술이 등장하면, 그간 단순한 피처폰 같은 휴대폰 제조의 스펙 강화에만 골몰하던 기존의 휴대폰 제조 업체는 날벼락을 맞습니다. 왜냐하면 새로 생기는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하기는 이미 늦어 버린 데다가, 기존의 고객들마저 점점 아이폰이 창출하는 스마트폰 시장으로 이동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즉, 시장 자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죠. 한 때 유명했던 블랙베리나 노키아가 어떻게 시장에서 퇴출되었는지가 바로 이러한 과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제품뿐만 아니라 기술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간 확보하고 있던 제조업의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려 하는 어떤 기업이, 지금까지 기업을 버티게 해 준 방식의 기술 개발에 투자를 너무 과도하게 집행하면, 오히려 그것이 기업에게는 짐이 되고, 나아가 기업 본래의 목적, 즉, 기술을 이용하여 만든 재화를 시장에 팔아야 한다는 기업 기반마저 잠식할 수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기술 개발에 지나친 자원을 투입하여, 가격 경쟁력이 상실될 경우, 소비자는 고가의 오버 스펙 제품보다 중저가의 평범한 스펙 제품을 고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반도체 산업의 경우, 오버 스펙 제품과 평범한 스펙 제품 사이의 원가가 너무 벌어져, 오버 스펙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지나치게 감소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1970년대, 처음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진입할 때 후발 주자로서 선택한 전략은 그들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진입할 때 취했던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값이라면 더 오래 잘 고장 없이 작동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전략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980년대 점점 커지는 전 세계 통신 시장에서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통신 업계 입장에서는 대형 컴퓨터 (메인프레임) 대한 수요가 매년 증가하였고, 당연히 그에 소요되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 역시 폭증했습니다. 일본 반도체 회사들은 이 수요에 대응하는 한편, 자국의 거대 통신 기업 NTT의 가혹할 정도의 요구 조건, 즉, 무려 25년 간이나 고장 없이 작동할 수 있는 통신용 칩셋의 공급을 위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렸고, 이는 칩의 신뢰도 향상을 위한 공정 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과연 일본 기업들은 특유의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이 가혹한 조건을 맞출 수 있었고, NTT가 요구한 성능의 DRAM 반도체를 어쨌든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하였고,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은 일본 기업이 차지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단기적으로는 일본 기업들에게 호재였으되, 장기적으로는 독으로 다가왔습니다. 일단 무려 25년이나 버틸 정도의 고-내구성, 고-신뢰도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추가 기술 개발 비용과 공정 비용이 지나치게 오른 것이 문제였습니다. 일례로, 일본 반도체 회사가 이 정도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다른 나라의 반도체 회사보다 훨씬 더 많은 공정 비용을 지불해야 했는데, 64Mb 용량의 DRAM의 경우, NEC는 보통 소요되는 마스크 개수보다 적게는 1.5배, 많게는 2배 이상 많은 마스크를 사용했습니다. 굳이 장기간 작동해야 하는 통신용 칩셋에 들어가는 DRAM일 필요가 없는데도 일본 업체들은 예전에 재미를 본 고가의 공정을 바꾸려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는 공정 시간과 비용도 그만큼 증가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NEC는 고-신뢰도의 대형 컴퓨터 용 DRAM을 만들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원가가 너무 상승하여 PC가 시장의 대세가 된 상황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받아들여만 했습니다.
또 한 가지 독은, 너무 빠른 반도체 업계의 기술 사이클이었습니다. 자동차 모델도 4-5년이면 바뀌는 요즘이지만, 반도체 사업, 특히 1990년대의 메모리 반도체의 기술 발전은 이른바 '무어의 법칙 (Moore's Law)'으로 대변되는 것처럼, 불과 1-2년 사이에 성능이 2배씩 증가하는 속도로 무서운 멱함수 (power law) 변혁 속도를 자랑하는 사업이었습니다. 2년 정도면 DRAM의 세대교체가 되고, 이전 세대의 칩은 반값 이하가 되는데, 25년이나 버틸 수 있는 DRAM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부품이 되었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이 고장 나지 않더라도 3년 정도 사용하면 신형 모델로 바꾸는 것처럼, IT 부품이나 기기에 있어 10년이 넘어가는 장기적인 신뢰도 확보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이는 비단 소비자 용 제품뿐만 아니라, 빠른 기술 사이클에 적응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3년 정도 사용한 후, 새롭게 출시되는 거의 동일한 가격의 제품을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너무 고-신뢰도에 치중했던 일본 DRAM 반도체의 원가가 계속 상승함과 동시에, 세대교체를 위한 기술 개발 비용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매년 약화되는 악순환이 생겨났고, '기술 혁신의 딜레마'에 빠진 일본의 반도체 업계는 매년 다른 나라의 업체, 특히, 1980년대 중반 혜성처럼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등장한 삼성전자에게 그 점유율을 점점 잠식당하게 되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1989년 기준, 일본 도시바, NEC, 미국 Texas Instruments에 이어 삼성전자는 4위까지 올라온 상황이었는데, 1990년에는 매출이 급성장하여 도시바 (14.7%)를 바짝 뒤쫓는 (12.9%) 2위 자리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DRAM 용량이 1 Mb를 넘어 본격적으로 4Mb, 16Mb 시대에 접어들면서, 당시 DRAM 공정 기술 개발을 이끌던 진대제, 권오현 박사가 적극 도입을 제안한 스택 공정 (stacking) 기반의 DRAM 구조 혁신을 택하여, 이에 올인하다시피 한 삼성전자 (91년에 4,500억 원, 92년 8,000억 원 투자)는 마침내 반도체 시장 진출 10년 만인 1992년, DRAM 점유율 세계 1위에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기업 혁신에 대한 실례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례로서, 크리스텐센 교수가 주창한 파괴적 혁신에 대한 교과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후 미국 윈도우-인텔 연합 중심의 PC 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발맞추어, DRAM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삼성전자의 투자는 적기를 맞아 확대되는 시장의 점유율을 효과적으로 늘려 나갈 수 있었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후발 주자와의 기술 격차 유지 전략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DRAM 이후 지금까지 줄곧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표준을 이끌고 있습니다. 2002년 들어, 삼성전자는 NAND 플래시 메모리 공정을 완성하고, 그 이후 지금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DRAM과 NAND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거의 50%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NAND 플래시 메모리 기술의 성숙 덕분에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뿐만 아니라 SSD (solid state device) 같은 파생 분야에서도 업계 1위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한 때 왕국을 이루고 있던 일본 반도체 업계의 시장 지배력은 90년대 중반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97년 아시아 발 IMF 경제 위기와 실리콘 사이클 (Silicon cycle)의 하강 국면이 도래하면서, 여러 회사가 난립하던 반도체 업계, 특히 일본의 반도체 업계는 실적 악화에 못 이겨, 대기업 위주로 구조조정의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위에서 살펴본 업계의 급격한 개편, 그리고 무리한 정부의 개입과 회계부정, 경영진의 판단 미스가 겹쳐 일본 반도체 왕국의 쇠망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보호인가, 국가의 간섭인가?
일본 반도체 왕국의 쇠망을 재촉한 세 번째 요인은 다른 아닌 일본 정부의 과도한 개입 혹은 보호주의였습니다. 애초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후발 주자의 신세를 생각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 즉, 구 경산성이 주도한 '초LSI기술협의회'라는 관민단체의 조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조직을 통해, 일본의 업체들은 노하우를 공유하고, 중복 기술 투자를 줄이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 업계 생태계가 자국 안에서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장인정신을 독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생각보다 빨리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일본 정부의 관여가 지속되면서 안정적으로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 장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를 알아 채린 미국 정부가 1985년부터 일본 정부의 관여를 반덤핑 제소 등의 방법으로 견제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미-일 반도체 협정'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여는 지속되었고, 90년대 들어 한국의 삼성전자 같은 후발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일본의 업체들과 경쟁을 시작하면서부터 일본 정부의 국가주의는 일본의 업체들에게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1997년 동아시아 발 금융 위기를 거쳐 2000년대 들어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반도체 업계에 닥친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일본 정부는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산업의 중흥을 이끌고 밀어주는 프로젝트를 난립시킨 것이죠. 200억 엔 규모의 아스카 프로젝트, 80억 엔 규모의 HALCA 프로젝트, 315억 엔 규모의 첨단 SoC 기반기술개발 (ASPLA) 같은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프로젝트의 규모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굉장히 애매한 규모의 프로젝트입니다. 아예 대형 프로젝트였다면 기업들에게 조금이나마, 특히 선행 원천 기술 개발에 있어서 다소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웬만한 대기업 1분기 매출액도 안 되는 규모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번거롭기만 한 프로젝트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는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 열망이 너무 심했던 나머지, 경영 전략으로서 행해졌던 사업 분리나 정리를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엘피다 등의 업체가 공정 채산성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며, 결국 칩의 생산 자체를 대만의 파운드리 업체인 SPC나 TSMC에 위탁하려 하자, 일본 경산성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그리고 자국 반도체 산업의 위축을 걱정한 나머지, 국가가 주도하여 이를 대신할 사업을 추진하려고도 하였습니다. 일본 경산성이 계획했던 것은 국가 주도의 파운드리 업체를 하나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갑자기 없던 파운드리 업체를 만들 수는 없으므로, 업계의 강자였던 히타치제작소, NEC, 후지쯔, 마쓰시타 전기, 미쯔비시 전기, 도시바 등이 같이 참여하여 공동으로 이 신규 파운드리 업체를 출범시키는 것을 골자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각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과 주력 품목이 다양해진 상황에서, 파운드리 업체의 출범은 모든 기업에게 만족할만한 성과를 주는 아이템은 아니었습니다. 엘피다에게는 좋은 옵션이었을지 모르지만, 이후 출범한 르네사스 같은 시스템 반도체,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에게는 별로 좋은 옵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들 예상 참여 기업의 관계자들은 파운드리 공정에 누가 더 많이 참여할 것인가, 누가 더 책임질 것인가, 비용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경산성이 주도한 파운드리 신설 프로젝트는 행정적인 비용과 각 회사의 불신만 남긴 채 흐지부지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2005년 후지쯔는 국가 파운드리 구상이 무색하게, 독자적으로 첨단 공정이 적용된 공장을 건설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입김이 점점 자국의 반도체 업계에게 먹히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일본 정부의 엘리트 관료들이 회사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다이와’를 외치며 국가의 자존심을 외치는 시대가 지나버린 지 한참인데, 일본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시도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시바의 쇠망사에서도 살펴보았지만, 플래시 메모리 세계 시장을 놓칠 수 없었던 일본 정부는 악화되는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도시바의 지분을 정부 주도로 인수하여 정부의 재무 건전성을 약화시켰고, 르네사스가 출범하던 2010년대 초반에도 정부 주도의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를 앞세워 출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2012년 말 파산 위기를 맞았던 르네사스의 최후의 버팀목이 된 것은 이러한 일본 정부의 펀드이기도 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는 차라리 일찍 청산되어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었던 회사에 대해, 정부가 억지로 산소 호흡기를 씌워 강제로 연명 치료를 하는 격이 되어 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20년 하반기가 된 시점에서도,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부활에 대한 희망의 끈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는 모양새로 보입니다. 2020년 7월,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을 대폭 수정할 방침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기존에 메모리 반도체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정부 주도로 3개 이상의 일본 기업들이 합병하는 등의 연대 방식을 탈피하고, 대신 반도체 생산 경쟁력이 뛰어난 외국 업체와 일본이 강점을 가진 소재/부품/장치 업체 간 선택과 집중을 통해 국제 연대 조직을 만들어 이에 대한 지원을 집중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죠. 일본은 그 첫 대상으로서 전 세계 파운드리 수위 업체 TSMC (2019년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1.2%)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미 TSMC는 도쿄대와 수년 전부터 공동으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고, 미-중 간 반도체 전쟁과 무역 갈등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은 TSMC의 생산 거점 확대를 중국이 아닌 미국과 일본으로 유치하는 전략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TSMC가 일본에 공장을 지을 경우 정부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며, TSMC가 일본의 반도체 기업과 합작을 할 경우, 수년 간 1,000억 엔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TSMC 뿐만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삼성전자나 미국, 유럽의 반도체 회사와도 국제 연대를 할 수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2019년 8월 이후, 일본 정부가 규제를 풀지 않고 있는 대 한국 반도체 주요 소재 수출 규제가 지속되는 국면에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한국의 반도체 상위 업체들의 일본 시장 진출이나 일본과의 합작 회사 설립은 당분간은 현실성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 시장의 수익 변동성에 대처하기 위해, 그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일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품목 공급망을 다양화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간 한국의 반도체 대기업과 공급망을 형성하던 일본의 관련 업체들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즉, 일본으로 한국의 반도체 업체가 진출하기는커녕, 대 한국 수출 시장이 막힌 일본의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장비 회사의 한국 진출이 더 가속화되는 현실인 것입니다.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이미 2019년에는 칸토덴카 (関東電化) 공업이 한국 공장에서 생산을 개시했으며, 타이요(太陽) 홀딩스 같은 회사는 2020년 5월, 한국에 신규로 400만㎡ 규모의 프린트 배선판(PWB)과 반도체 패키지 기판 용 드라이 필름형 솔더 레지스트 공장 건설을 위해, 자회사 '타이요 어드밴스드 머티리얼' 설립을 할 것임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타이요는 솔더 레지스트 분야에서는 전 세계 80-90%의 점유율을 보이는 세계적인 업체인데, 이러한 소재는 반도체 초미세 패터닝 공정의 핵심 소재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소재와 부품은 비단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업체는 물론, 향후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의 차세대 자율주행 자동차 용 컴퓨터나 IoT 등의 업종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타이요 입장에서는 종합적인 포석을 고려하여 한국에 생산 기지를 두는 것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일본산 소재/부품/장비의 수출 제약이 걸려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일본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한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전망입니다. 일본 업체들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업체들도 반도체 소재/부품 관련 공장을 한국에 신설하는 중입니다. 엠이엠씨 (MEMC) 코리아 (모회사 글로벌웨이퍼스)는 2019년 11월, 5,400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의 천안시에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신규 2 공장을 준공했다. 이로써 이전까지 일본에서 절반 이상 수입해 오던 실리콘 웨이퍼에 대해, 9%의 대체 효과가 발생하였습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애써 키워 온 자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가 차례대로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겠지만,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산업의 생태계는 왜곡을 겪게 되고, 특히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반도체 업체들은 국가의 도움이 어느 순간 관여와 간섭으로 변질되어 신속한 경영 판단과 사업 철수를 결정짓지 못하는 폐단을 겪게 됩니다.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사회기반시설은 정부가 직접 챙기거나, 적어도 정부가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한 공기업이 사업에 진출하여, 적자를 감수해서라도 국민 생활 안정을 꾀하는 것에 대해 정당성이 부여되지만, 반도체 산업은 국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수적인 산업으로 와 닿지 않는 데다가, 자국 내에서만 경쟁을 하는 산업이 아닌 특징이 있기 때문에, 정부의 보호주의, 정부의 무리한 리더십 발휘는 정상적인 기업 생리를 방해한 격이 된 셈입니다.
이는 마치 과도한 보호로 인해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나지 못 한 어른을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어린아이가 자랄 때 부모는 당연히 의무적으로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수적인 생활 방식과 지혜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과도하면 아이는 자립할 기반을 잃어버리고, 의존과 더불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추지 못하게 됩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생각을 부모에게 맡기고, 생활을 부모의 지도에만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로만 머물러 있게 됩니다. 이는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죠.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어린아이에 비유하기는 무리이지만,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벌여 온 각종 사업과 보호주의, 펀드 조성, 강제적인 구조조정, 정부 주도의 사업 제안 같은 조치는 원리적으로는 아이를 계속 성인이 될 때까지 품에 안고 놓아주지 못하는 부모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