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주는 교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일본의 쇠망 전철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지난 2012년 ‘일본 전자 반도체 대붕괴의 교훈’이라는 책을 펴낸, 전직 히타치제작소 반도체와 엘피다 메모리에서 20년 넘게 일한 엔지니어이자, 현 일본 반도체 산업 전문 컨설턴트인 유노가미 다카시(湯之上隆) 미세가공연구소 소장은, 지난 2019년 8월, 일본의 대 한국 수출규제, 특히 반도체 산업 관련 소재, 부품, 장비 수출 규제 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그 영향력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아예 빠르면 5년 이내로 소멸할 위기를 자초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일본의 반도체 관련 제품 수출 규제 조치 시행은 결국 제살 깎아 먹기에 불과하며, 오히려 한국의 반도체 회사들로 하여금 대 일본 의존도를 줄이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유노가미 소장은 경고하기도 했죠.
또한,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이어 오던 양국의 반도체 산업 관련 글로벌 가치사슬이 붕괴됨으로 인해, 먼저 조치를 취한 일본의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되었고, 이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로 하여금 일본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대체재 찾기를 가속화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상반기, 일본의 스텔라케미파, JSR, 스미토모화학 같은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수익률은 전년에 비해 급감한 성적표를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용 소재 관련 회사의 영업이익이 급감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전 세계 불화수소 (HF) 시장의 70% 이상, 99.999% 이상의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의 95% 이상을, 일본의 모리타 화학 (森田化学工業株式会社, Morita Chemical Industry Co.)과 양분하고 있는 업계의 최강자이기도 한 스텔라케미파 (ステラケミファ, Stellachemifa Corporation)는 한국에 대한 수출에 규제가 걸리면서, 전년 대비 31.7% 급감한 영업 이익을 보였습니다. 규제된 고순도 불화수소 공급의 안정화를 위해 한국은 솔브레인, 램테크놀러지, 이엔에프테크놀로지 같은 한국 회사들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스텔라케미파의 빈자리를 적극 메꿨으며, 이는 이 업체들의 영업이익이 전년도 대비, 각각 6.15% 111.1% 67.4%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초미세 패터닝 공정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포토레지스트 전문 기업 JSR (ArF 레이저 기반 DUV 용 포토레지스트 전문, 포토레지스트 세계 시장 점유율 24%) 역시 영업 이익이 급감했습니다. 전년도 대비 27.4%의 영업 이익 감소율을 보인 것이죠. 플렉시블 반도체 기판의 핵심 재료이기도 한 고분자 소재 폴리이미드 (polyimide) 전문 기업인 스미토모 화학 (住友化学株式会社, Sumitomo Chemical Company)의 경우, 1,426억 엔에서 1,277억 엔으로 영업이익이 10.5%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포토레지스트와 폴리이미드 소재의 대 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망을 미국의 거대 화학회사 듀폰 (Dupon)과 미국의 화학 스타트업인 인프리아 (Inpria)로, 폴리이미드는 한국의 코오롱인더스트리와 SKC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프리아로 공급망을 확대한 것은, 기존의 고분자 기반 포토레지스트 (Chemically Amplified Resists, CAR)에서 금속산화물 기반 포토레지스트 (non-Chemically Amplified Resists, non-CAR)로 초미세 패터닝 기술이 바뀌고 있는 기술 변화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10 nm 이하, 차세대 초미세 반도체 패터닝 공정의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에피텍셜 웨이퍼 (epitaxial wafer)의 경우,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품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간 일본의 웨이퍼 생산 기업 섬코 (Sumco)가 지배하던 시장에 한국의 웨이퍼 생산 기업 SK실트론이 진입하여 7 nm 로직 반도체 용 에피택셜 웨이퍼를 삼성전자 등의 고객사에 납품하기 시작했습니다. 7 nm급 로직 반도체에 들어가는 에피택셜 웨이퍼는 전력 관리 반도체 (PMC), 이미지센서, 마이크로프로세서 (MPU) 등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성이 우수하고 전망도 밝습니다. SK실트론은 2019년 9월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의 웨이퍼 사업부를 5,400억 원에 인수하기도 했는데, 특히 듀폰이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실리콘 카바이드 (SiC) 웨이퍼 사업부를 인수함으로써, 고온, 고전압 안정성을 요구하는 전력용 반도체 및 전기자동차 용 PCU (Power Control Unit)에 쓰이는 반도체 시장으로의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일본이 노렸던 한국 반도체 산업, 특히 그 뿌리부터 흔들려고 했던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공격은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자국의 기업들의 신뢰도 저하와 수익률 급감이라는 자충수가 되었으며, 한국은 이를 기회로 반도체 소재의 안정적 공급망을 단기 안에 회복하여 성공적으로 일본에 대한 반도체 소재 의존도를 낮추고 있는 모양새가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의 완성품은 물론 소재와 부품 같은 기초 생태계에서조차 그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일본의 반도체 왕국은 바야흐로 뚜렷한 쇠망의 기로로 접어든 형국입니다. 이는 이웃나라이자, 일본에 대해서는 업계 후발 주자, 다른 이웃나라인 중국에 대해서는 선발 주자인 셈인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그 변동성이 심해질 전망입니다. 일본의 짧은 반도체 산업 흥망의 역사에서 보듯,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매년 수요와 공급 변동의 폭이 심하며,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역시장이 되어 벌어질 경우, 치킨게임이 빈발함으로써 많은 업체들이 구조조정의 신세가 됩니다. 설사 자금력과 과감한 투자가 따른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약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딘가에서 싹트고 있을 혁신적 기술을 감지하지 못할 경우, 현세대의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는 오히려 재고만 늘리는 매몰비용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죠. 즉, 잘못된 경영 판단과 투자는 의도와는 다르게 사업에 극약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반도체 업계의 순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일례로, 2018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를 오랫동안 고수하던 삼성전자가 2019년에는 인텔에게 그 자리를 내어 준 사례도 있습니다. 삼성뿐만 아니라 한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010년 14%에서 2018년 24%까지 높아진 이후, 2019년에는 19%를 기록함으로써,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를 기록하기도 하였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감소분을, 2010년 2%에 불과했던 점유율을 보였던 중국의 업체들이 2019년 5%로 올라섬으로써 인수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는 것도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1986-1996년의 10년 동안, 미-일 반도체협정이 발효됨으로써 다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미국은 2010년대 이후에도 줄곧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을 45% 이상으로 강고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의 시장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 점유율이 거의 10년 만에 하락했다는 사실은 결코 한국 입장에서 좋은 신호는 아닙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반도체 산업의 지형은 과거의 관습과 문화를 벗어던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자랑했던 일소현명의 철학과 기술자를 극진히 우대하던 장인정신, 개인이 아닌 조직을 앞세운 톱니바퀴 같은 회사 문화가 한 때 그들에게 큰 영광을 가져다준 장점이 되었던 동시에, 나중에는 그들의 몰락을 재촉한 채찍이 되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술 개발만큼이나 급격히 바뀌는 시장의 변화를 읽어 내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스마트한 마케팅 인력을 키워야 하며, 이에 대한 이노베이션을 게을리하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 특히 설립자나 창업자의 그늘에서 언제든 과감하게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하며, 사람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시스템에 의존하는 회사 문화를 키워야 합니다. 과거의 익숙함과 관습이 가지고 있는 관성의 무게를 벗어던져 버려야 하며, 뻔하고 낯익은 길에서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기초 과학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는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1년 뒤 더 풍성한 열매를 가져다줄 볍씨를 삶아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2020년대는 바야흐로 각국이 첨단 기술을 자국에서 확보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입니다. 이미 2020년 초반에 팬더믹이 된 COVID-19로 인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안정성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고, 각국은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국가 주도로 반도체 산업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대 중국 반도체 기술 및 제품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과 제재 조치를 입안하였거나 시행하고 있고, 중국은 이에 맞서 기술굴기를 외치며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자력갱생을 위해 SMIC 같은 중국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반도체 시장, 나아가 차세대 4차 산업혁명 관련 하이테크 시장에서 자국 기업 위주의 기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이어감으로써 버티기 모드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왕좌를 내어 준 일본 역시 반도체 시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주도로 여전히 자국의 기업과 해외 기업의 합작을 통해 반도체 산업에 재진입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전향적인 자세로 자국 업체뿐만 아니라 해외 업체들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인텔과 TSMC의 차세대 공정 라인을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로비를 진행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한국의 업체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국의 기술 전쟁 분위기는 비단 반도체 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정부의 캐치프레이즈 중 하나로서 '4차 산업혁명'을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투자 역시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 개발로 쏠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드론,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스마트 팩토리, 사물인터넷 (IoT),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각 기둥에 해당하는 분야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정부 투자, 세제 개편, 연구개발 지원과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이 분야에 대한 경쟁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절치부심하고 있을 다른 나라들의 맹추격도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먼저 반도체 산업과 전자 산업에서 한국과 중국에게 그 왕좌를 내어 준 일본이 언제든 시장에 다시 진입하기 위해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을 것이고, 이 분야가 고부가가치 산업이 된다는 것을 예전부터 파악하고 있던 미국 역시 앞으로도 그 산업의 주도권을 절대 쉽게 내어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급격히 성장한 화웨이, 알리바바, SMIC, 화홍, 칭화 유니그룹, 텐센트 같은 IT 대기업들의 엄청난 자금력, 그리고 정부 주도가 주도하는 기술 굴기 프로젝트를 내세우며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고, 서유럽 각국 역시 스마트 팩토리와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관련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를 통해 반도체 기술 경쟁력 싸움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1980-90년대의 격심한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이 한 세대가 지난 2020년대 다시 재현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한국의 경제 체급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 4차 산업혁명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통신 기술과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 물리학, 화학, 재료과학 등 관련 분야의 차세대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기초 연구개발 성과가 누적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반은 중국과 비교할 때 그 규모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며, 특히 중국 정부의 반도체 및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 올인 기조로 인한 앞으로 더 집중적인 투자가 이어질 것임을 감안하건대, 향후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경쟁은 대외적으로 더욱 극심한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대부분의 고부가가치 제품들은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공통적으로 비메모리 반도체와 고성능 시스템반도체, 전력제어 반도체 같은 특수 용도의 반도체를 요구하는데, 이 기술은 각 업체가 보유하고 있던 반도체 산업에서의 기술력과 선행 연구개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만 파생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 과정에서 과거 일본이 반도체 시장에서 저질렀던 실수가 한국의 산업계에서 다시금 반복될 경우, 한국의 주요 반도체 업체들, 그리고 생태계를 이루고 있던 중소규모 업체들과 4차 산업혁명 관련한 벤처 업체들은 황금 같은 사업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가격 경쟁력과 기술 경쟁력 싸움에서 밀리는 모양새를 연출하여, 최악의 경우 일본의 전자 및 반도체 산업이 쇠망했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마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본 반도체 왕국의 쇠망사를 직접 그 보고 체험해 왔고, 그 기록을 소중한 사료로서 참고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입니다. 일본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은 자국 내 첨단 기술 생태계의 확장 및 기반 강화에 더욱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정부차원의 제도 개편 및 기초 과학연구 중흥 정책을 개발하고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문호를 외국에 개방하여 각국의 인재를 한국의 기업 인재로 확보하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의 혁신과 더불어, 반도체 산업 전반의 수직 계열화된 구조에서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칩 설계 능력 양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 미-중 간 반도체 기술 전쟁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하여, 수출-수입 다변화 정책과 더불어 소재와 부품 공급망의 다변화를 추진해야 하며, 특히 특정한 한 회사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대 이후의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미-중 반도체 기술 전쟁입니다.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은 제재 대상인 중국에게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큰 비중을 차지하던 화웨이나 SMIC 같은 중국의 고객사를 잃어버릴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에게 역시 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이 상황은 한국의 반도체 업계에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 컨설팅 그룹 (BCG)은 2019년 상반기부터 입안되어 2020년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미국 정부 주도의 화웨이 제재 기조는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반도체 산업 기반을 깎아 먹는 패착이 될 수도 있음을 이미 경고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2019년 기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18%, 매출액 점유율은 무려 37%에 달하는데,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은 이 거대한 시장 점유율을 고스란히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미국 내 반도체 산업 고용 인력 축소와 더불어, 이익 감소로 인한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향후 둔화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바람대로, 2025년까지 중국 자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70%까지 향상될 경우, 이는 전반적으로 미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최소 2%에서 최대 5%까지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실제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5월 이후, 미국의 상위 25개 반도체 업체의 매출은 전년 대비 4-9% 감소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제제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5년 내 세계 시장 점유율은 8% 감소하고, 매출은 16%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이는 현재 45%를 넘나드는 미국의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40% 이하로 낮출 수 있는 주요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 기업에 대한 소재, 장비 수출은 물론, 반도체 전반에 걸친 모든 기술과 상품 거래, 인력 이동이 정지될 경우, 미국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은 최대 18%, 매출은 37%까지 급감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도 보고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미국 정부의 제재 조치는 자국 반도체 업계의 급속한 수익성 약화와 시장 지배력 감퇴를 동시에 불러오는 악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이는 전반적으로 그만큼 한국 기업들에게는 추가로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의 틈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 격차를 유지해 오고 있는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와 파운드리 업체들에게는 더 큰 기술 격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기술력 있는 중소규모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인수와 합병 기회가 자주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특히 차세대 시스템반도체 소재와 소자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전략적 제휴 기회도 많이 생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확보 노력과 더불어, 정부의 지원 노력도 더 구체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에서 하기 어려운 기초 과학 분야 연구를 정부는 더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차세대 반도체 기술의 후보군인 양자컴퓨터, 스핀트로닉스, 광컴퓨터 등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상업화 수준과 거리가 있으며, 기초 연구가 충분히 누적되어야 하는 분야죠. 이에 대한 연구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하기 어려우나, 정부 주도로 연구중심대학과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개발인력을 늘리고 프로젝트 규모와 기안을 확대함으로써 감당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정부는 또한 그 연구개발 성과가 반도체 산업 분야 기업으로 잘 연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기술사업화 프로젝트, 예를 들어 현재 중소기업청이 주관하고 있는 브리지 사업 같은 기술사업화 과제를 더 많이 발족하고 더 많은 연구자와 개발진이 연계될 수 있는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구축하여 관리해야 합니다. 기술거래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연구소, 대학, 중소기업의 특허 출원, 등록, 거래 비용에 대한 보조 정책을 공격적으로 확장해야 하며, 무엇보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관련 표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및 선행 기술 개발에 대해 대기업의 집중적인 투자를 장려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큰 이벤트가 없다면 앞으로도 연평균 4-5% 내외의 견고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수위권으로 진입하기도 어렵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쇠망사를 자세히 살펴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은 일이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일본의 여러 반도체 회사의 쇠망사를 반면교사 삼아 시장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기술의 경쟁력을 키우며 더 적극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하되, 어느 한 기술에 올인하지 않는 포트폴리오 구축, 그리고 풀뿌리 생태계가 그물망처럼 엮일 수 있는 창업 환경 구축과 더불어, 연구중심대학과 연구기관으로부터 파종되는 기술의 씨앗을 잘 관리하고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이 여기까지 발전해 온 것만 해도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기적을 현재 진행형으로 유지할 수 있는 준비를 확실히 해야 어떤 상황에서든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재기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