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민주적 거버넌스의 의미

왜 첨단산업정책일수록 더더욱 정부의 민주적 절차와 시민의 감시가 필요한가

by 권석준 Seok Joon Kwon

최근 성균관대 사회과학대학장 윤비교수께서 쓰신 글의 핵심은 이른바 '거버넌스'다. 특히 '민주적 거버넌스'가 국가의 정책, 특히 경제와 산업 정책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역할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 지에 대하여 잘 풀어서 설명해 주셨다. 최근 집필 중인 '차이나반도체라이징(차바라)' 마지막 장에서 나는 사실 아래에 쓴 글과 더불어 이러한 내용도 반도체와 AI 산업 위주로 다루려 계획했기 때문에, 초고도 미리 써 둘 겸 이에 대한 내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윤교수께서 지적하셨듯, 국가의 산업정책을 'Top-down'이나 'Bottom-up'의 이분법적 구조로 단선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보다 입체적인 관점에서 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선입견을 갖는 부분은, 예를 들어,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하는 국가에서는 'Top-down' 방식의 산업정책이 주종을 이루는 것이 필연적이고,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의 국가는 민간에 대한 존중이 있을 것이므로 'Bottom-up'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는 것인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더 신경 써서 봐야 하는 하이브리드화된 케이스가 바로 지근거리, 즉, 중국에 있다. 중국은 전형적인 계획경제-일당중심 Top-down 산업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이전에 쓴 글에서도 지적했듯, 중국의 방식은 중앙당 정부가 큰 그림까지는 주도적으로 제시하되, 지방 정부가 세부적 정책을 추진하고 성과관리를 하기 위해 민간 기업을 유치하거나 지원하는 구조를 택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방식은 완전한 Top-down도 아니고, 오히려 Middle-up 구조에 가까운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2010년대 후반 들어, 중국의 여러 산업 분야, 특히 IT, 반도체, AI, 배터리나 신재생에너지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민간 부문의 약진이 두드러져 오히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한다. 겉모습만 보면 중국은 마치 적절한 통제 권한을 갖는 민주주의를 택한 국가의 정부가 열심히 산업정책을 밀어붙이며 경제 부흥을 외치는 전형적인 궤도를 따라가는 중진국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엄밀히 말해 민주주의 거버넌스에서 요구하는 라인을 따르지 않는다. 윤비 교수께서 지적하셨듯, 거버넌스가 민주적인지 여부의 핵심은 정책결정의 투명성(transparency), 책임성(accountability), 공정성(fairness)이 있느냐다. 물론 중국 정부도 정부 정책이 이러한 요소를 준수하고 있다며 충분히 인민들에게 설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산당의 결정에는 수많은 상무위원들, 고위관료들, 지방 성 정부 관료들, 공기업 직원들이 관여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정치적 의도에서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논의 과정은 모두 기록과 관보로 보도되며, 정책에서는 명확한 KPI가 설정되고 정책 자금의 지원을 받은 민간 기업들은 그 성과 달성을 위한 책임을 분담하며, 공동부유의 정신을 추구하기 위해 정책 개발의 성과는 인민들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진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자강', '자주', '굴기'를 해야 한다면서 애국주의나 중화사상을 앞세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중국은 원래부터 대국이었고, 또한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역사의 전환 타이밍에서 잠깐 실기했다는 이유로 세계사의 무대에서 서구에 밀려났지만, 결국 기술입국을 통해 제자리로 가는 것은 역사의 순리고, 그 순리를 따르기 위해 중화민족과 중국 인민을 대표하여 공산당이 앞장서서 중국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해 책임지고 거버넌스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강 하에서는 공산당 정부가 내세우는 거버넌스의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에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며 반기를 든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국가 안보를 위해하고 중국 발전에 토를 단다는 명목으로 제재, 숙청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대응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중국의 거버넌스가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과는 괴리가 있음을 내포한다.


국가가 경제 개발, 산업 부흥을 위해 앞장서서 정책을 개발하고 밀어붙일 때는 필히 그 정책의 설계자가 누구고, 누가 집행할 것이며, 주요 수혜 대상은 누구고, 정책의 성과는 누가 관리하며, 실패했을 경우의 컨틴전시 플랜은 무엇이고, 책임은 누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를 법으로 잘 규정해 두어야 한다. 아무리 꼼꼼하게 법으로 정리해 둔다고 해도,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 부정과 부패가 자주 발생하고, 정경유착이 형성되며, 수많은 실패사례로 인한 삽질과 국부의 낭비가 반복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이미 역사에서 계속 관찰되어 온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이 갖는 함정들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책 속의 산업정책 사례들은 주로 성공 사례 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대부분은 국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좋은 성과를 거둔다고 지레짐작하곤 하나, 사실 그 이면에는 수많은 부작용과 삽질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정부에서 정책에 대한 법제화와 거버넌스가 보장되는 한, 설사 이러한 삽질들이 연속된다고 해도, 국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거버넌스에 대한 피드백 루트 자체가 없고, 민간의 감시가 원천 차단되며,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꼼수들에 대한 처벌과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작동하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정작 정부가 회피할 경우, 정부의 영은 서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은 점차 힘을 잃는다. 그래서 국체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외환이라도 닥치면 국가 위기 상황에 봉착한다.


윤교수가 쓰신 글에서도 멀리 갈 것 없이 이러한 사례를 한국의 IMF 상황에서 많이 발굴하여 분석되고 있다. 특히 한국 IMF 시절의 사례는 민주적 거버넌스가 단순한 구호도 아니고, 철학적 개념도 아니며, 굉장히 실효성이 높은 핵심요소, 특히 정책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민주적 거버넌스 맥락에서 다시 국가의 산업정책의 정체성과 방향을 들여다보자. 민주적 거버넌스가 잘 작동하는 국가의 산업정책이 Top-down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산업정책을 '무엇을 왜' 해야 하는가 보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더 가중치가 많이 주어진다. 이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Dani Rodrik 같은 학자가 쓴 'Industrial Policy:" Don't Ask Why, Ask How'라는 논문에서도 잘 분석되고 있다.*

*Middle East Development Journal (2008)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권석준 Seok J···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최신 하이테크 개발 성과와 기초과학 연구 성과를 해제하는 글을 씁니다. 과학과 사회, 학문의 생태계 지속 가능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이드잡으로 하이테크 스타트업 컨설팅도 합니다.

58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중국의 산업정책 지속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