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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교육의 허점, 그것을 채우는 사교육 함정

공교육의 회복은 사고 능력 함양이라는 기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by 권석준 Seok Joon Kwon

[Disclaimer : 이 글은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 종사자들을 비판하는 글이 아닙니다. 한국의 시대에 맞지 않는 입시 시스템의 왜곡이 비판 대상이라면 비판 대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ON650egSVU&fbclid=IwAR0lCOJIjeDREMp4jJRUPPfdJ_p8TRE3foKjYq2lhP94ZA8tfu9hO8pO-Yg

위 유튜브 영상은 대형 사교육 업체 M사 소속의 이른바 일타강사 중 한 명인 H 강사의 수능 수학 강의 영상의 일부다. 우리나라에 이른바 수포자가 많이 생기는 것은 물론 가장 1차적인 원인은 공교육의 붕괴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이유는 이런 식으로 테크닉만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 인강, 이른바 일타 강사들의 지나친 도식화 단순화 전략에 의거한 문제 풀이 공장형 사교육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육은 붕괴 직전이고, 일부 극소수 수학을 잘하는 학생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족한 수학 공부는 어딘가에서는 보충이 되어야 하는데, 고액 과외가 아니라면 남는 것은 대형 입시 학원들의 일타강사들의 강의 밖에는 안 남는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그르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감히 그럴 판단을 내릴 입장도 아니고, 나 역시 대학생 시절에는 과외 알바로 용돈을 충당하기도 했던 처지니,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에 기생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그간 많은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비판해 온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 성토에 필요 없는 한 마디 더 보탤 필요도 없고, 그럴 자격도 안 된다.


다만 이런 부분은 좀 생각해 봐야 한다. 예시된 일타강사의 삼차 함수 설명은 삼차 함수에 대한 수학적 사고를 원천 봉쇄하며,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라면, 앞으로는 삼차 함수 하면 무조건 곡선의 대칭을 이용하여 답을 빠르고 쉽게 찾는 기술만 먼저 떠올리는 것 밖에는 안 남는다. 물론 평생 수학을 이용하는 직업을 가져야 하는 학생들에게 라면 다항함수에 대한 수학적 의미의 이해가 중요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에게는 수학이란 수리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맞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분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일타강사의 강의는 대다수의 수험생들에게는 시간적으로 볼 때 가성비가 제일 좋은 방식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강의들이 점점 주류가 되고 대형 학원에서도 브랜드를 관리하는 강의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생각해 보면, 이제는 점점 대부분 인간 고유의 지적 활동, 사회 활동이라고 여겼던 많은 부분들이 컴퓨터와 로봇, 그리고 AI 시스템으로 대체되는 것은 뻔할 뻔자인데, 여전히 20세기 방식으로 제한된 시간에 수십 문제를 누가 더 실수하지 않고 주입받은 테크닉을 잘 활용하여 잘 마킹하는지로 학생의 '수리영역'에 대한 능력을 측정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학생이 대학에서 수리영역에 해당하는 내용을 필요로 하는 이공계 전공과목들을 수강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겠다는 말 자체가 굉장히 어색하고 웃기는 발상이다. 인간의 창의력은 짧은 시간의 압박 속에 수십 개의 서로 다른 문제를 앞에 두고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라리 인간의 수학적 사고력을 측정하려면 그나마 수리논술이 더 그럴듯하다. 증명을 하고 공식을 유도하는 것만으로 인간의 수리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컴퓨터가 훨씬 잘 푸는 문제를 누가 더 제한시간 안에 빨리 정확하게 잘 푸느냐로 측정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이상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여전히 우리나라의 입시는 정형화된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받는 것이 가장 미덕인 화석화된 시스템이다. 그래서 사고력을 봉쇄당하고, 특정한 개인의 사고력을 마치 클론처럼 주입받아 입시 문제의 빠른 풀이에만 최적화된 아이들이 그런 입시에서 주로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교육 철학이 분명한 학부모였지만, 기형적인 입시 구조에서 점점 밀려나는 자식을 보다 못해 결국 애간장이 탄 나머지, 그간의 교육 철학 따위 다 하수구에 던져 버리고, 고3 올라가는 아이를 대치동 학원가로 보낸 후, 하루라도 더 빨리 보냈으면 어땠을까 후회하게 된 선배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렇게 기계적 입시에 익숙하진 아이들은 사고력의 성장이 이루어졌어야 했던 황금 같은 시간에 사고력의 정체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실행해 버린 셈이다. 그리고 이는 사고력의 정체를 더 철저하게 통제한 학생들이 더 좋은 점수, 그래서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구조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수능 수학을 공부하여 굉장히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막상 대학에 들어와 수학을 활용해야 하는 기초 혹은 전공과목을 수강할 때는 거의 도움이 안 된다. 수학적인 사고를 대학에 들어오기 전, 일정 부분 훈련받았어야 했지만, 많은 학생들은 3분 남짓한 시간에 한 문제씩 기계적으로 풀어 버리는 습관에 너무 매몰되어 있어, 그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특히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의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입된 일타강사들의 테크닉, 그리고 화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말발을 타고 학생들의 귓전에 맴도는 일타강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수험생들이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계속 수험생의 마인드만 가지게 만들 뿐이다. 심각한 경우, 일부 일타 강사들의 무도덕, 비도덕적인 발언, 사회적인 편견, 인종차별, 남녀차별, 학벌 차별 등에 대한 툭 턴지는 이야기들은 많은 수험생들의 무의식 속에 꽤 오래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어렸을 때 들어온 편견은 쉽사리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기계적 사고방식 주입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일타강사들의 주입식 교육 테크닉 전수 기반의 강의는 학생들을 철저하게 관객 모드로 만들고, 이들이 테크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반복하여 수험생들을 세뇌한다. 그것이 제일 좋은 방식이라고 중간중간 철학 비슷한 발언을 마치 교주처럼 던진다. 무조건 하나라도 더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뿌리가 뽑히지 않는 잡초가 무성히 자라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1-2년 후 어엿한 성인이 되어야 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는 통로를 막아 버리고, 스스로의 철학을 가져야 하는 여유를 없애 버리고, 정보를 찾고 조합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다시 그 과정에서 배우는, 정말 지적으로 생산적이고 풍요로운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처음부터 원천 차단하는 셈이다.


사고력이 봉쇄된 학생들은 대학에서 사고력을 다시 무사히 회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학생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류의 학생들은 애초, 사교육을 받았든 말든, 학습법에 대한 요령이 있고 그것을 실행할 머리가 있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지 못 한 수험생들을 대학의 정문 통과까지는 케어를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는 케어를 어떻게 받아야 할지, 어떤 테크닉으로 물리학,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에 접근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물론 이른바 온라인 교육이 대세가 되는 시절이라면, 대학의 일부 학부 교육 시장 역시 메가스터디 같은 대형 사교육 업체들의 진출이 충분히 가능한 시장이고, 그곳에서도 이 영상의 일타강사 같은 명문대 출신, 심지어 명문대 학-석-박 출신 강사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얼마나 학부의 주요 수학, 과학 코스를 담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돈과 시간,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발달된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이 불가능하라는 법은 없다. 이미 많은 대학원생들은 학교에서 받는 전공 수업에 대한 보강 목적으로 학원을 다니거나 인강을 듣는 비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으니, 만약 이들의 등을 긁어 줄 훌륭한 일타강사들의 서비스가 적절한 가격에 출현한다면 학생들은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는 고통보다, 쉽게 학점을 따고 취업 스펙을 관리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몇 년 후, 아마도 전국 곳곳의 캠퍼스에는 M사의 선형대수 8주 코스 단기 완성, AI 필수 수학 8주 완성, 전자기학 10주 완성 뭐 이런 수업들이 횡행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도 사교육으로 단련된 시스템, 그리고 그에 익숙한 수험생 출신 대학생들이 주류인 환경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게 냉혹하게 바뀌는 와중에, 스스로의 머리를 사용하여 스스로의 손과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정보를 만들어 나가고 자신의 사고 회로를 짜 나가는 학생들의 비율은 그에 비례하여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것이 시대의 대세고, 사회구조와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뭐 어쩌겠는가.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러다가 대학원생, 나아가 박사과정 학생들 대상의 사교육 시장도 열리지 말라는 법이 없겠다. '학위 논문 작성 8주 완성', '실험 데이터 처리 3주 속성 과정' 뭐 이런 강의를 한 강의당 100만 원씩만 받아도 그거 듣겠다고 줄 설 수요자들은 아마 엄청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난 후라도,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 전의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머릿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각종 문제 풀이 테크닉이나 점수 따기 용 암기 지식보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 논리를 만들 수 있는 능력,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남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자세 함양이다. 공교육은 이 부분부터 회복을 시도하여 권토중래를 꿈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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