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뉴어 제도의 유명무실 화가 암시하는 향후 고등 교육 시스템의 변화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이 미국의 플래그십 바로 밑 캠퍼스 주립대 기초과학 조교수로 재직 중인데, 작년 코로나 여파로 인해 신입생 등록률이 현저히 감소했고, 재학생 중도 탈락률도 치솟은 데다가, 주정부 경제 사정 악화로 인해,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예산이 큰 폭으로 감축되어, 급기야는 직원은 물론 교수까지 감축하기로 했다는 총장 명의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테뉴어를 받은 교수들까지 감축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무려 테뉴어 교수 중 5% 이상을 자를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자신도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이직해야 하나 고민을 털어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흔한 상식과는 달리, 테뉴어를 받은 교수라고 해도 학교나 학과가 위기에 처하면 그 신분 보장의 영속성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특히 인기가 없거나 외부 펀드를 잘 못 따오는 전공일수록, 학교에 기여하는 간접비도 별로 없을 것이고, 학생 유치로 인한 등록금 기여 비율도 낮을 것이므로, 학교 운영 이사회 입장에서는 해당 학과를 폐과 하는 수순으로 돌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경우, 물론 본부 측에서는 학과 교수들에게 1년 정도의 말미를 주고 다른 과로 가든지 다른 학교로 가라고 하는데, 운이 좋아 전공의 연관성을 찾은 교수들은 인접한 전공으로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 한 교수들은 정말 갈데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이번에 소식을 전한 그 지인의 지인 역시, 같은 전공에서도 잘 팔리는 전공에 있던 교수들은 인접 공대로 전과했지만, 그렇지 못 한 전공의 교수들은 결국 테뉴어 상관없이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거의 대가급의 교수마저 워낙 하는 일의 분야가 좁은 데다가 이제는 학생들에게는 물론 과제로도 인기가 거의 없는 전공이라, 아마도 그만두게 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미국도 노벨상급의 대가가 아닌 다음에야 나이 지긋한 교수가 아무 보직 없이 전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도한다고 해도 이직하려는 곳의 구성원들이 쌍수 들고 환영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사실 미국 상황은 양반에 속하는 축이다. 우리나라의 학령인구는 꾸준히 감소세고, 작년 신생아 숫자는 30만 명대가 깨졌다. 올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플래그쉽 지거국 중 한 학교의 정시 경쟁률은 3:1에 미달하였고, 이는 수험생들이 보통 정시 지원에 3 학교 정도 원서 쓰는 것을 생각해 보면, 사실 상 미달이나 마찬가지인 경쟁률이다. 모두가 예상하고 있다시피, 인구 통계는 정부나 사회가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 같은 시한폭탄이다. 당분간은 40만 명대 수험생, 신입생이 유지되겠지만, 20년도 안 되어, 그 숫자는 30만 명, 20만 명대로 주저앉을 것이고, 지속적으로 하락세인 대학 진학률까지 고려컨대, 그 과정에서 많은 대학들이 문을 닫거나, 최소한 많은 과들이 통폐합되어 교수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전공을 바꾸든지 아니면 직업을 바꾸는 일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테뉴어 교수들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조차, 온라인 교육의 확대, 대학 교육의 가성비에 대한 회의, 이른바 잘 팔리는 (취업이 잘 되는) 전공으로의 쏠림이 가속화되고 있는 마당에, 테뉴어 받은 교수들의 테뉴어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는데, 한국은 더 심하면 심했지 별 나은 사정은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미국은 인구가 계속 늘기라도 하는데 반해, 한국은 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감소세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 특히 젊은 세대 이민자들이 끊임없이 유입되는데 반해, 한국은 여전히 외국인들이 정착하거나 이민 오기 어려운 나라 중 하나다. 특히, 미국처럼 유학생으로 건너와 학위를 마친 후 한국에 번듯한 직장인으로서 정착하는 비율은 정말 낮다. 한국의 많은 대학들이 교원이든 학생이든,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개방적 태도로 문호를 점점 열고 있다고는 하나, 외국인으로 학교 구성의 1/3 이상을 채우지 않는 한, 외국인으로 학생과 교원을 충원하는 전략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향후 20년 간은 정말 폭풍처럼 우리나라 고등 교육계에 구조조정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유감스럽게도,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이른바 회사들이 몰려 있는 대도시 주변의 주립대나 사립대는 이러한 급격한 교육 환경 변화에서도 그나마 잘 살아남게 될 것처럼, 한국에서도 이른바 좋은 일자리가 풍부한 수도권 지역의 대학들이 이 과정에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다. 전통의 지거국 대학들마저 실질 경쟁률 1:1 미만의 시대에 진입했으니, 지거국을 받치고 있는 중소규모 지방 국립대, 그리고 지방 사립대들은 급감하는 학령인구의 직격탄을 먼저 맞을 것이고, 학생 충원율에서 좋은 점수를 못 받게 될 것이며, 그 과정에서 교육부의 각종 지원 혜택을 받기 위한 점수도 충족하지 못해, 다시 그것은 학생이나 좋은 교원 충원 실패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것임이 뻔하다.
미국은 그나마 나라가 크고 워낙 각 주의 대표 대학들을 중심으로 학문 체계가 잡힌 상황이라 그 충격이 덜 하겠지만, 한국은 훨씬 작은 나라인 데다가,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 지방에 거점을 둔 대학들은 일부 지거국, 일부 국립대의 실용 전공들 (간호, 유아교육, 사회복지, 보건 등), IST들, 일부 의대가 있는 사립대들을 제외하면 많은 전공들과 대학들이 구조개혁의 명목 하에 사라지게 될 운명을 맞게 될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테뉴어를 받은 교수들이라고 해도 이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테뉴어를 받기까지 디벨롭해 오던 그 분야의 기초 학문들은 뿌리째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 타임라인에서 자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 사립대에서 물리학과나 화학과, 생물학과라는 타이틀이 유지되는 기초 과학 전공은 사실 상 전멸해가는 추세이고, 각종 **공학 등의 이름으로 정신없이 이합집산되고 있다. 물론 모두 학생들의 취업률 제고를 위한 대학의 고육지책이지만, 그 과정에서 이미 학문 후속세대가 끊긴 지 오래된 기초 학문 전공 교수들은 전공을 포기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기 시작하고 있다. 언젠가 페친 중 지방 국립대 물리학과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제는 기초 과학 전공이 이합집산되고 그 과정에서 전공의 전통이 끊기는 것은 국립대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도대체 몇 개의 4년제 대학이 필요한지, 몇 개의 전문대학이 필요한지, 몇 개의 기술학교가 필요한지는 아무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다. 보통 시장론자들은 대학의 숫자 역시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 따라 시장이 '자연스럽게' 결정할 것이므로 당연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러지든 합쳐지든, 변신하든 구태의연하든, 대학이 알아서 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의 고등 교육 시스템은 시장주의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YS 정권 때 도드라지긴 했지만, 학교 설립은 상대적으로 쉬웠는데, 막상 폐교는 상대적으로 어려우며, 자산을 매각하여 청산하고자 하지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의 대학은 자산가치 후려침의 희생양이 된다. 또한 지방에 본거지를 둔 대학들이 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것 역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모두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중앙 정부는 어쨌든 간에 국토 균형 발전 정책에 반하는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고, 지방 정부는 그 대학 중심으로 형성된 커뮤니티 혹은 상권의 붕괴, 나아가 지역 전체 경제의 침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 등록금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강제적으로 반값으로 유지된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고, 대학이나 과의 정원, 입시 정책은 교육부의 철저한 관리감독 하에 통제되고 있다. 정말 대학의 운명을 시장주의에 맡기려면 대학이 자구책을 낼 수 있게 연고지를 이전하든, 대학의 자산을 어떤 식으로 처분하든, 등록금을 올리든 내리든, 정원을 줄이든 늘리든, 대학 자체의 전략에 맡겨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부의 정책은 이러한 degree of freedom을 사실 상 극단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법적으로도 그렇게 만들고 있지만, 더 실효성 있는 제한 정책은 각종 재정지원 혹은 BK 같은 연구/교육 프로젝트들이다. 5년 혹은 7, 10년 단위의 장기적 프로젝트를 통해, 각 대학의 중장기 로드맵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마이크로 매니징 하려고 하는 교육부 시각에서 볼 때, 대학이 내놓는 자구책이라는 것은 뻔한 수준일 뿐이며, 이미 교육부 고위 공무원들은 2030년, 2040년쯤 되면 한국의 대학 지형이 대략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이미 철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것은 주기적 평가와 재정지원 제한 등급 발표 정도뿐이다.
이렇게 온전한 시장주의와는 거리가 먼 현 상황에서, 국공립대학은 물론, 재단이 튼튼하지 못 한 대다수의 사립대들은 발전의 한계가 명확하며, 특히 지방에 근거를 둔 사립대들은 이러지도 못 하고 저러지도 못 한 상황에 처해 있다. 지방의 인구는 점점 줄고 있고, 그에 비례하여 학령인구는 더 급감하고 있으며, 그나마 있는 인구들, 특히 젊은 층들은 점점 수도권으로 이촌향도 경향이 짙어지고 있고, 공기관이 아닌 다음에야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회사를 이전하려는 케이스는 정말 가뭄에 콩 나는 수준으로 향하고 있다. 만약 여건과 정책이 허가만 된다면, 아마도 지방에 있는 사립대들은 재단의 상황이 여유만 있다면 수도권으로 올라오고 싶어 할 대학들 천지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름이 울산대, 영남대 같이 지방색이 짙은 경우라면 심지어 교명까지 바꾸고 올라오겠다는 대학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울산대 영남대가 그렇게 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예시일 뿐). 대학의 수준을 1:1로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3:1 정시 경쟁률이 무너진 플래그십 지거국이 만약 수도권, 아니, 하다 못해 천안 정도에만 위치했어도 과연 경쟁률이 이 정도로 미달되었을지 생각해 보면 심히 회의적이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들은 수도권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동시에, 지방에 있는 대학들은 결국 제로섬 게임의 희생양이 되어, 대학 자체의 역량에 합당한 처우나 혜택을 못 누리는 셈이다. 이러니, 탈 지방 러시가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고, 그것이 안 되는 대학들은 차라리 하루빨리 자산을 매각하는 방향으로 폐교를 추진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본격적으로 현실화되는 시대다. 한 때 선망받던 직업이던 대학 교수 역시, 그냥 직업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현실이 무섭도록 다가오고 있으며, 심지어 테뉴어 교수라는 포지션 역시, 순망치한이라는 오래된 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과가 없어지고 대학이 없어지면 그 알량한 테뉴어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학교에 학생이 없다면 외로이 오피스를 지키고 있는 교수가 무슨 교육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2020-30년대는 우리나라 고등 교육 시스템이 나라 수준에 걸맞게 정말 선진화될 수 있을지를 스트레스 테스트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아무리 범람해도, 고유의 학습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하는 포지션을 갖는 대학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고급 연구개발인력을 양성해야 하는 대학원 역시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구 구조의 급변과 AI로 대변되는 산업 구조의 일대 혁신은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전공 시스템, 교육 시스템의 천지개벽을 예고하고 있다. 교육부가 어떤 복안을 가지고 이 험난한 변혁의 시대를 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변혁의 물결은 발목부터 차오르고 있고, 교수들 역시, 사립대든 국공립대든, 각자도생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제 교수의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은퇴 시점까지 대략 20년 조금 더 넘게 남은 세월은 결코 편안한 수면 위의 항해가 되기만 할 것이라 생각지는 않는다. 가성비 따지는 것에 무섭도록 밝은 요즘 학생들에게 충분한 값어치의 교육과 훈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격심 해지는 연구 성과의 경쟁에서 자신의 밥값을 충분히 증명해야 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높은 눈높이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테뉴어라는 제도는 점점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결국 연구와 교육을 삶의 일부로 즐기지 못하면 나를 포함한 교수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앞으로의 시간들 속에서 번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작년에 교수 잡에 지원할 때, 이미 이러한 생각들을 했었고, 여러 경로로부터 한국의 고등 교육 지형의 급변을 보고 배웠으며, 선후배 동기 교수들로부터 중요한 정보들을 입수했는데, 막상 이것이 나의 현실이 되니, 정신이 번쩍 든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수준이 갑자기 후진국 수준으로 급전직하하지 않는 한, 나라의 경제 규모 유지, 필수 직업 인력의 양성, 지식정보사회에서의 학문과 연구 경쟁력 유지를 위해 필수적으로 40-50개 정도의 전통의 4년제 대학은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변혁을 끌고 갈 것인가, 끌려갈 것인가가 진짜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공대가 취업률 에지에서 다소 인기를 끌고 있지만, 영상과 인강에 익숙한 세대에게 공학 전공 공부는 점점 그 난이도로 인해 외면받는 추세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공대 천하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로 장담할 수 없다. 변하는 시대에 걸맞은 변신을 하지 못 하면, 전기자동차 시대에 내연기관 설계를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AI와 텐서 플로우 시대에 포트란 코딩으로 수치 해석이나 가르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교수 스스로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overwhelming information flow를 만드는 것에 동참해야 하며,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여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어느 프로 직업이든 만만한 것은 없겠지만, 교수는 더더욱 스스로 변신을 하지 못 하면 시대에 잡아먹히는 것은 명약관화 해지는 것 같다.
교수로서, 몇 년 후의 테뉴어, 승진도 중요하겠지만, 그 이전에 중장기적으로 교육자/연구자로서의 포지션을 실질적인 레벨에서 고민하고, 급변하는 사회와 기술의 환경 속에, 끊임없는 변신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결국 연구분야의 확대와 실무와의 연결성 강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특하면서도 값진 콘텐츠를 발굴하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내가 해내야 할 일로 생각된다. 삶은 점점 챌린징 해지겠지만, 이왕 챌린징 한 삶이라면 제대로 응전하고 챌린지를 체인지로 변모시키는 지혜를 갖춰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