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것에 대한 공부와 답이 없는 주제에 대한 연구의 차이
학교에 있다 보면 어떤 학생들은 특정한 주제를 들고 와서 이것으로 학부 연구생 경험을 쌓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학생들은 그냥 '연구'라는 것이 뭔지 좀 경험하고 싶어서 연구생 해보겠다는 친구도 있고, 또 어떤 학생들은 솔직하게 '스펙'을 좀 쌓고 싶어서 (즉, S-hero 같은 전국 대회나, 유학 자소서용 스펙, 면접용 스펙 등) 연구생 하겠다는 친구들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학부생이 주어진 커리큘럼만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이 기회를 개척해서 어쨌든 무엇인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 자체는 선생으로서 칭찬하고 도와줄 일이다. 간혹 지극히 이기적인 학생도 없지는 않아, 배운 것 그냥 쏙 빼먹고 그만두는 학생도 있고, 연구원도 아니면서 왜 월급 안 주냐고 따지는 학생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학생은 못 만나 봤음), 그래도 대부분의 학부 연구생들은 학습과 연구의 중간 어디쯤엔가 있는 것 같고, 그들이 정말 연구의 세계로 갈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도 교수의 책무는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학부 연구생들이 연구라는 세계로 들어오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부분이 있다.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학습과 연구는 일견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창 시절부터 주욱 이어온 '공부량과 성적의 선형 비례 공식'을 연구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하다가, 뚜렷한 결과를 못 얻고 실망하곤 한다. 실험을 12시간 할 때에 비해 120시간 하면 뭔가 10배로 데이터가 더 잘 나올 것 같지만, 정제되지 않은 10배의 데이터 뭉치는 그저 노이즈가 될 뿐이다. 120시간 실험을 했다면, 그 실험 결과물의 raw 데이터를 240시간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는데, 그 과정까지도 연구에 포함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면 조급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제된 데이터를 정제된 언어와 논리 구조로 하나의 글로 다듬고 정리하는 것은 사실 더 지난한 작업이고, 따라서 충분히 반복적으로 훈련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불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많은 학부 연구생들이 연구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거나, 특정 학과 과목에서 흥미를 느껴 '연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다 정작 대학원 문턱에서 방황하거나 중도 탈락하는 이유 중, 지도교수에 대한 실망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부 연구생일 때는 비교적 친절하고 나이스 한 교수님이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니 괴수로 바뀌더라, 잡일만 시키더라, 미팅하는 것도 어렵더라 등등의 불만들로 인한 실망일 것이다. 물론 게 중에는 정말 인성이 글러 먹은 교수도 있을 것이고, 학생 인건비 가지고 장난치는 못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학생에게 미루는 한심한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교수는 학부 연구생일 때나 대학원생일 때나 별로 학생 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오히려 대학원생은 본격적으로 학문 훈련시켜야 하고, 월급 주고 등록금 대줘야 하는 부담이 생겨서 더 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차라리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왜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부 연구생이었을 때의 선생과 대학원생이 되고 난 이후의 선생에 대한 인상이 나쁜 방향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일까? 서로 간에 변덕이 생겨서가 아니라, 학생 입장에서 '학습자에서 연구자로의 상전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충격에 대한 원인을 지도교수에게 투영하기 때문일 수 있다. 석사 과정 학생이야 실제로 연구에 할애하는 시간은 2년 중 1.5년도 채 안 된다. 나머지 학기는 취업과 학위 논문 작성/디펜스에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나마도 1.5년 중에 1년 정도는 코스웤과 연구 방법 배우는 것에 금방 소모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긴 시간을 연구에 투입하지는 못 한다. 그러니 상전이 과정도 금방, 그리고 설익은 채로 끝나고, 딱히 충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박사 과정 학생의 경우, 훨씬 더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자에서 연구자로의 상전이를 겪어야 한다. 특히 박사 과정생이 겪어야 하는 상전이는 그냥 연구자도 아니고, '독립된 연구자'로서의 자격 확보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과정이라, 훨씬 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풀하고 압박감과 실패감에 더 쉽게 휩싸일 수밖에 없는 과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훨씬 이전에 먼저 겪었던 지도 교수들은 이 과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 과정인지를 끊임없이 공감해 주되, 학생이 스스로 그 길에서 일어날 수 있게 기회와 시간을 줄 필요는 있다. 물론 제대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박사과정 학생에게는 지도 교수를 바꾸거나 프로그램을 ASAP로 중단하는 것을 권해야 할 수도 있지만, 연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한 학생이라면 권면과 공감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상전이 과정에서 지도교수에게 투영하는 불만과 실망감 역시 그런가 보다 감내해야 하되, 그것이 학생의 열패감으로 이어지지 않게 좌절감으로부터 학생을 끄집어낼 수 있는 자극 장치를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자극 장치야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이야기해보자. 박사 과정 학생이 독립된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자신의 연구 주제를 남과 단절될 정도로 홀로 지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신이 맞닥뜨린 어마어마한 연구의 난제가 알고 보니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분야에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이미 풀린 문제라든지, 힌트를 가지고 있다든지 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그렇지만 자신이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학생의 난점이 어떤 종류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일단 연구자로서의 전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학생이 있다면 자신의 난제를 자꾸 다른 사람들과 디스커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지도교수가 다 감당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같은 학교나 학과 내 다른 전문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필요하다면 속한 학교를 넘어, 다른 학교나 심지어 다른 나라의 전문가들을 연결시켜 주고 더 필요하다면 정식으로 공동 연구의 기회를 주선해야 주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학생이 최신 지식의 업데이트에 뒤지지 않게 다양한 프로그램과 코스웤에 대한 접근성을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수강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이 생각하기에 필요한 부분이라면 청강이라도 허용해 주어야 한다. 박사 과정 학생은 주니어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여전히 학생인 상황이므로, 배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그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세 번째로는 학생에게 있어서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일정 기간의 피정 기간을 허락해 줘야 한다. 급한 프로젝트에 속한 학생이라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정신적인 회복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는 줄 필요가 있다. 무책임한 장기 자리비움은 곤란하지만, 거의 번아웃까지 다다른 학생을 몰아붙이는 것은 싹을 아예 자르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방법론들은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고 많은 교수들이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한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먼저 이런 구체적인 방법을 지도교수에게 제안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지도교수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학생들의 상전이 상태를 모니터링할 필요는 있다. 특히 학위 수여 후 학계로 갈 것 같아 보이는 학생들이라면, 몇 년 후에는 자신의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들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케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지도 교수는 어떻게 보면 어드바이저이기도 하지만 매니저인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각도에서는 소속사 사장처럼 포지션을 잡아야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각도에서는 선생님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에 앞서 학문적으로 먼저 그 길을 간 선배이자 조금 더 연륜과 경험이 쌓인 동료라는 포지션을 기억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한다. 지도 교수들도 주니어 시절, 괴롭고 힘들 때 그 시간이 어땠는지 잘 알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수많은 손길들, 관심들, 자원과 기회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한 땀 한 땀 겨우 짜여가는 학문이라는 옷이 실밥이 풀리지 않은 채 완성을 향해 진행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