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중학교 때는 어깨선이랑 몸동작의 선이 너무 예뻐서 한국무용을 가르치고 싶다고 무용선생님이 우리 집엘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지만 늘 단번에 거절을 했고, 친구들이 피아노를 배우기에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그걸 배워 뭐에 쓰냐며 대학조차 보내지 않으려던 엄마를 기억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그랬다면 또 이해를 했겠지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환경인데 엄마는 내가 하고자 하던 것에 대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단번에 거절을 하였다.
뒤늦게 대학에 가서 피아노에 대한 한을 풀고자 체르니 30번까지 배웠었는데 사실 그 후로 피아노를 치지도 않고 늦게 배운 탓에 말 그대로 쓸모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혼자만의 한은 풀었지 싶다.
얼마 전 집에 있던 아이들이 치던 피아노를 처분하며 이렇게 있는데도 치지 않으면서 그때는 왜 그렇게 아쉽고, 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는지 모르겠다.
대학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도 엄마의 반대로 밀어주지 않아서 고등학교 성적을 잘 받아 특채로라도 가려고 혼자 몸부림치며 공부하여 겨우 대학에 붙고 나니 어쩔 수 없이 대학엘 보내준 엄마다. 과외까지는 아니어도 입시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엄마는 그냥 여자는 시집가기 위해 모든 걸 배우고, 갖추어야 하지만 대학은 엄마의 그 계획에 없었던 듯하다.
한 번도 먼저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 하지 않았고, 늘 과거에 매여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면 그게 여자의 인생이라던 엄마, 그게 내가 기억하는 친정엄마다.
수년 전 결혼생활이 너무 힘들어 그냥 놀러 왔다며 친정엘 간 적이 있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어서 힘들다는 내색은 하지 싶지 않았는데 갈 곳이 그래도 친정 밖에 없었나 보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여전히 당신만의 생각으로 이런저런 불평을 하여서 엄마에게 심하게 막 퍼부은 적이 있다.
“그렇게 아쉬울 때마다 날 찾으면서 왜 한 번도 다른 집 딸처럼, 아니 오빠들처럼 뒷바라지를 안 해 주었냐고, 그때 내게도 오빠들만큼만 해 주었으면 지금 더 좋은 모습으로 엄마에게도 더 잘할 텐데 왜 그랬냐고” 따진 적이 있다.
아마도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지치다 보니 그게 다 엄마 탓이라 생각하여 원망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결혼할 때도 엄마 친구의 아들이 의사라는 직업 하나로 결혼을 밀어붙이려 한 엄마, 대학에서 교수 추천으로 대학원의 조교로 가면서 더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조건임에도 결혼하기로 했으면 결혼이나 하라고 해서 포기해야 했던 일, 정말 인생 가운데 성장하거나 좋은 기회가 왔을 때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찬성하고 밀어준 것이 없다.
그나마 작은오빠나 아빠가 힘이 되어줄 테니 하고 싶은 것 해 보라고 했지만 엄마의 반대로 늘 내가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는 것 같아 최종에는 포기했었던 수많은 기회들에 대해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해 보지 않은 거라 그런지 늘 아쉽고, 억울한 마음이 한쪽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