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의 엄마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지만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친정엄마가 된다.
그래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지금, 친정엄마가 내게 했던 과거의 아쉬운 기억들로 가득 차지 않길 바라서 아이들이 무엇을 한다 하면 반대는 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밀어는 주되 최선을 다하도록 책임감은 갖게 한다.
반대를 하기보다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을 하도록 최대한의 조언을 해 주고, 대신에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게 하지만 설사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 책망은 하지 않는다. 부모인 우리가 있으니 걱정 말고 다시 하면 된다는 말로 또 도전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능력이 안 되더라도 무한 밀어줄 수 있으니 용기를 잃지 않도록 충분한 디딤돌이 되어주려고 한다.
그래서 난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좋은 후원자이면서 영원히 같은 편으로 아이들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한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같은 여자로서 어리던, 나이가 많던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엄마이길 바란다.
먼 훗날 아이들이 엄마를 기억할 때 슬프고, 아팠던 기억들이 아니라 설사 아이들의 곁에 없더라도 기억되는 그 날들은 웃음부터 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먼저 떠오를 수 있었으면 한다.
친정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없어 그리움만 가득하더라도 늘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바쁜 중에도 함께 낚시하러 다니고, 자전거 앞에 태워 휘파람 불며 강둑길을 달렸던 일, 잘하지도 못하면서 남자인 오빠들과만 노느라 인형놀이 대신 구슬치기부터 배웠던 딸에게 공기놀이를 가르쳐 주겠다며 손을 이리저리 꼬던 아버지의 모습은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 즐거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 병상에서 통증으로 암 투병하던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어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돌아가시는 순간 보여준 환한 미소로 덧칠이 되어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모습은 온통 예쁘고, 좋은 모습만 남아있다.
시가의 어른들이 많고, 장손 맏며느리이다 보니 직장이 없던 내가 혼자 운전을 하여 시골 시할아버지 집에 음식을 해서 4시간 이상이 걸리던 곳을 새벽부터 다니던 엄마의 모습이 안 좋았는지 큰아이는 운전을 안 배우겠다고 하였다.
‘엄마가 운전을 하니 그렇게 맨날 여기저기 다니는 것 아니냐고, 그래서 자기는 운전을 안 배울 거라 ‘는 말을 자주 해서 내심 그런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유야 어찌 되었던 외국에서 지내게 되면서 뒤늦게 운전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반 농담 삼아 ’ 자기는 자기만을 위해 꼭 필요할 때만 운전을 할 거라 ‘고 해서 되도록이면 즐겁고, 행복했던 엄마의 모습만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