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터인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은 화장터로 네팔을 방문한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다.
인도의 바라나시를 방문했을 때는 어느 곳을 가더라도 힘을 상징한다는 주황색 옷을 입은 순례자들의 모습이 정말 많았다.
순례자들이 들고 있는 건 의식을 치르는 도구들인데 주로 시바신의 모습, 뱀, 꽃 등이 달려있고, 긴 막대기 양쪽에 물통이 달려있는데 거기엔 순례자들에게 성수인 갠지스강의 물이 담겨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그것만은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소와 사람이 한 곳에서 목욕을 하고, 그 옆에서는 빨래를 하고, 무척이나 지친 모습으로 이곳 바라나시까지 긴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갠지스강을 바라보고 있는 순례자는 어떤 마음일까 궁금하다.
가장 가까이서 찍은 갠지스강의 화장터 모습이다.
화장터 뒤로는 힌두교인들에게는 평생의 소망이 담긴 장소여서 매일 화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도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거처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화장하는 장면을 찍을 수 없고,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를 뺏긴다고 한다.
그런데 화장터로 가까이 다가가면 사람들이 달려들면서 화장하는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안내한다며 친절히 데려가고 나중에 생각보다 큰돈을 요구한다.
그러나 안내자가 없이도 누구나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있다. 다만 마음을 굳게 먹고서야 가능하지 싶다.
사실 이 근처에는 화장하는 냄새가 역겨울 거라 생각했는데 향료를 사용해서 그런지 도리어 소똥 냄새가 더 역겨웠다. 화장터에는 사람보다 소, 개, 염소, 모기, 파리들이 더 많았고, 365일 24시간 내내 화장터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인도인들은 화장을 하기에 죽으면 여기로 와서 시신을 먼저 성수인 갠지스 강에 잠시 담가 성화의 과정을 거치고 물이 어느 정도 빠지면 시신의 모든 부분들이 다 타도록 불을 피우고 재만 남으면 다시 강물에 뿌린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다가 화장한 것을 강에 뿌리며 함께 던지는 동전을 줍기 위해 화장의 재를 뿌리는 주변에는 늘 아이들이 많다. 우리가 노자돈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유인 것 같은데 동전이나 고인이 쓰던 물건들을 함께 던지는 경우가 있어 화장터에는 그것을 주우려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이다.
화장은 화장을 할 때 사용되는 나무 값만 내면 되기에 비용이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소 가격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다만 순례자, 임신한 자, 피부 병자, 14세 미만인 자는 화장을 할 수 없어 그냥 강에 버린다는 말에 그럼, 그 시신들은 어떻게 되냐고 물었지만 끝내 가이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외면했다.
힌두교도들은 성지인 갠지스강에 도착하면 바로 옷을 벗고 목욕을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머리를 감고, 그 물을 마시고, 물속에서 기도도 하고, 성지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주로 가족단위의 방문자가 더 많은데 평생의 소원인 장소에서 정결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시바신(기둥의 왼쪽 모습)에게 기도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인도 바라나시에서의 여행은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두통과 표현하기 힘든 몸의 상태로 갠지스강에 도착을 했지만 발을 바닥에 붙여 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그 당시는 알 수 없는 여러 이유들로 가까이 가서 볼 수 있었는데도 차마 가까이 가지 못해 볼 수 없었던 화장의 전 모습을 네팔에서는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이상하게 바라나시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도 무섭다거나 냄새로 불편하다거나 하는 것이 없었고, 도리어 마지막으로 장례예식을 통해 어머니를 보내는 아들의 사랑과 애절함, 안타까움이 가득했는데 그 모습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것이 더 안타까웠던 곳이다.
(화장이 이루어지는 가트)
타멜 거리와 공항 근처에서 북서쪽으로 약 4km 정도를 가면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 파슈파티나트가 나온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며, 보우드넛과 연결하여 여행할 수 있다.
이 사원은 원래 시바신에게 헌납되었고, 파슈파티나트는 시바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이름 중의 하나라고 한다.
파슈(Pashu)는 '생명체'를 뜻하며, 파티는 '존엄한 존재'를 뜻한다.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강가강)에서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경건한 의식을 볼 수 있듯이 네팔에서는 파슈파티나트 사원 앞을 흐르는 바그마티(Baghmati) 강에서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러한 광경을 엿볼 수 있다. 바그마티 강둑의 파슈파티나트 사원은 네파 힌두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도 전체의 성지이며, 독실한 힌두교도들이 이곳으로 찾아와서 죽고, 화장되어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또한 이들은 여기에서 죽고 화장되는 것이 그러한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강둑으로 늘어선 화장터(가트, Ghat)에서는 부모와 형제의 시신을 태우며 통곡하는 가족과 자식들을 열 지어 볼 수 있고, 화장을 하고 있어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들은 현세의 고민이나 어려움이 아닌 내세를 위한 공덕을 쌓는다는데 어느 영혼이 이제는 이 세상의 업보가 아닌 새로운 세상으로의 안식을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인도의 바라나시와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촬영은 허용되지만, 멀리서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찍는 것이 예의인 듯하여 조용히 지켜보았다.
‘바그마티 강’ 위에 놓인 다리를 중심으로 아래인 왼쪽으로는 평민이, 위(오른쪽)는 귀족계급의 장례가 이루어지고 있다
즉, 다리 아래로 있는 가트(화장터)는 평민들을 위한 화장터라는 것이다.
가트 앞으로 ‘바그마티강’이 흐르고 그 뒤로 붉은 벽돌의 집들은 시립양로원으로 나라에서 운영하며 60세 이상으로 부양할 가족이 없거나 형편이 어려운 환경의 노인들이 기거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이 ‘바그마티강’이 ‘갠지스강‘으로 흘러가는 것이라 여기가 상류가 되는 셈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귀족계급의 장례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대나무로 엮은 널판 위에 알몸의 시신을 눕히고 성수인 강물에 발부터 잠시 담근다.
잠시 후 장남부터 시작해 친척까지 두 손으로 받아온 강물을 얼굴에 뿌리며 마지막 정을 나눈다.
물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장자부터 전 가족, 친척들이 돌아가며 두 손에 강물을 받아와 고인의 얼굴에 부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우리의 장례예식 중에 매장 전 유족들이 하는 삽질과 동일한 의미인 듯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물이 빠진 후 대나무의 널판에서 시신을 옮기는데 그 맨 밑은 짚으로, 그리고 큰 고목의 향나무로 정사각을 만들고 다시 작은 나무토막으로 촘촘히 깔은 뒤 그 위에 시신을 올려놓는다.
알몸에 노란 천으로 덮고, 얼굴과 다리에는 붉은색을 칠하고, 가슴에는 나프탈렌과 설탕, 버터, 향료를 보자기에 쌓아 얹고 그 옆에 평소 고인이 쓰던 물건이나 아끼던 물건들을 함께 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화장을 해도 역겨운 냄새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들만 장례의식에 참여하고 나머지 가족은 뒤에서 지켜본다는데 3형제가 맏아들부터 불을 붙이기 전 불꽃을 들고 한 바퀴 돌고 있는데 큰아들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아들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이마와 발에 연이어 입을 맞추면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 슬픔을 당해보지 않으면 누가 알겠느냐마는 그 어머니에 대한 사랑만큼은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향료를 모아둔 가슴부터 불을 붙이며 마지막으로 덮고 있던 노란색 천도 걷는다.
불꽃을 올려놓고 아들이 그 슬픔을 표현하지 못해 어머니의 발에 마지막 입맞춤을 연이어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배부터 향나무를 올린다.
큰아들을 다른 가족들이 격려하며 데려가는데 어느 나라건 맏아들에 대한 기대는 큰 것 같다.
장례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이 천민이 아닌 브라만 계급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만큼 이들에겐 장례가 종교의식이라고 믿는 거겠지만 생각 밖의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담당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이들의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한 건에 대략 50$ 정도 받는다고 하는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의 의식은 아무나 하면 안 되는 성스러움 그 자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는 시신 위로 가득 향나무를 쌓아 올리지만 시신을 누르지 않게 테두리를 두르며 쌓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네처럼 이들도 고인에 대한 예는 다 갖추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납작한 나무판넬을 올리고 짚으로 다시 덮는다.
다 타기 위해서는 2시간가량 걸린다고 하는데 그 시간 아들들은 머리, 수염, 눈썹까지 모두 면도를 하고 상주로서의 모습을 갖춘다고 한다.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뒤쪽으로 있는 붉은 벽돌의 집은 상주들이 13일 동안 기거하는 곳이란다.
장례가 치러지는 13일 동안은 학교, 직장을 모두 쉬면서 흰옷을 입고 아들들은 머리와 수염, 눈썹까지 모두 면도를 한 체 추모를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은 365일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네 삶에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듯이 이곳에서는 늘 죽음이 새로 시작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화장이 이루어지고 그 한 편에는 이전에 귀족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히말라야 산’을 향해 지었다던 사원이 있는데 일렬로 정렬되어 있어서 마치 한 사람이 지은 것 같으나 다르다고 한다.
사원 안에 있는 시바신의 성기 모습도 하나씩 일렬로 13개가 보이는데 아들을 낳기 위한 것으로 가운데는 다 이 모양을 갖추고 ‘히말라야 산’을 향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뒤쪽으로 보이는 황금빛 사원은 세계에서 제일 큰 힌두사원으로 힌두교 신자만 들어갈 수 있어서 우리는 겉모습만 보았다.
화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트 뒤편의 흰 건물(왼쪽)은 ‘마더 테레사 병원‘이다.
옆에 양로원이 있고, 거기서 죽으면 시신이 아직 따뜻할 때 화장을 하기에 죽기 전 자신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장기들이 있으면 기증을 하기 위해 ‘안구기증 센터’가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사원 정상에 올라서니 힌두사원과 양로원, 병원 등 사원의 전 모습이 보인다.
여긴 가트 뒤에 있는 양로원이다.
노인들이 밖에 나와 앉아있는 건 식사 배급 시간이라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인데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들이 여기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행복한 삶의 시작이기에 고통스럽지 않다고 한다.
이런 시설에는 형편이 어렵거나 돌봐줄 가족이 없는 경우가 1순위로 들어올 수 있는데 대기자들이 늘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평생 내세를 위해 빌고 빌며 공덕을 쌓았기에 이제 죽은 이후는 고생도, 병도, 가난도 없는 삶을 살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 죽음을 기다리는 그 순간까지 행복하게 지낸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저 가난하고, 병든 노인네일 뿐인데’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씁쓸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음 생에는 더 많이 행복하길 바랐다.
양로원 안의 힌두사원인데 주변과 다르게 엄청 화려하다.
우리는 들어갈 수가 없어 안을 보지는 못했지만 양로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들은 내세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네팔인들의 종교는 신앙생활이 어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삶 속 한순간도 종교와 분리되지 않은 채 그들은 지금의 행복이 아니라 내세의 행복을 빌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본 ‘파슈파티나트 힌두사원’의 모습이 삶을 마감하는 화장터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또 다른 시작인 셈이기 때문이다.
톱니바퀴처럼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양로원에 들어왔지만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에 그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가진 것 중에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눈이라도 떼어주고 떠나려는 모습에서 그들의 종교와 삶이 하나로 이어진 모습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