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의 '더르바르 광장'
'더르바르 광장'은 네팔의 광장으로써, 카트만두, 랄릿푸르, 박타푸르 세 곳에 위치해 있으며 ‘더르바르’는 ‘왕궁’ ‘궁전’이라는 뜻이다.
카트만두에 있는 ‘더르바르 광장’은 시내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대 네팔 왕궁이 이곳에 있어 ‘허누만 도카 궁전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허누만’은 원숭이 신을 의미하는데 궁전의 중앙 입구 오른편에 붉은 칠을 한 원숭이 석상이 있다. 원숭이 신은 ‘더르바르 광장’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고, 지금도 많은 힌두교도들이 찾고 있는데 네팔인들이 섬기는 그들의 신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더르바르 광장’은 옛 왕궁 외에도 ‘살아있는 신’이라고 불리는 ‘쿠마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나무 한그루로 만든 사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트만두에는 주로 네와르 족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그들의 종교와 삶의 모습이 좀 더 자세히 보였다.
‘더르바르 광장’ 입구에서 들어가는 길.
외국인은 입장권을 끊어야 하고 군복을 입은 사람이 지킨다.
오래된 건물임을 보여준다.
그 옆에 외국에 다녀온 왕이 흰색 건물을 보고 와서 흰색으로 된 건물이 좋아 보였는지 새로 하얗게 칠했다는 궁도 있다.
오른쪽의 건물도 다 궁이라는데 현재는 상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같은 궁인데 적색과 흰색의 건물이 서로 별 것인 것처럼 다른 느낌을 준다.
네팔의 궁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 지은 것처럼 참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데 여기도 공간 없이 들어서 있는 모습으로 마치 다른 곳에서 옮겨놓은 듯하다.
힌두교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가 살고 있는 곳인데 입구에서 쿠마리의 사진을 팔고 있다.
가운데 건물 사진이 현재 쿠마리가 거주하는 곳으로 힌두교도들만 들어가서 만날 수 있고, 종교 기간이라 들어가서 축복기도를 받고 나온다고 한다.
가운데 저 창문에서 얼굴을 보여주기도 한다는데 힌두교의 여신인데도 힌두교도, 불교도가 다 같이 섬기고 있다.
‘쿠마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나라에서 지키며 관리하고 있고, 정사각형 건물로 힌두신의 정교한 조각들도 잘 보인다.
여기가 쿠마리를 만나러 들어가는 문인데 유난히 문이 작고 낮은 것은 이전에 죽은 줄 알고 화장을 하는 중에 깨어나 뻣뻣한 강시의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던 귀신이 있었다는데 그 이후로 강시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작고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즉,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문으로 바꾸어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강시가 들어갈 수 없도록 바꾼 것이다.
문 앞에 보리싹이 있었는데 이건 남자들에게 이런 명절에 축복을 하고 귀에 꽂아주는 거란다.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귀에 우리가 연필을 꽂듯이 보리싹 몇 가닥을 귀에 걸고 다녔다.
관광객이 없는지 들어갈 때와는 달리 쿠마리 사진을 팔던 사람들도 앉아서 쉬고 있다.
건물이 정사각형이라 평소에는 여기(왼쪽 사진 화살표)에서 쿠마리가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쿠마리는 4~5살 사이에 정해지는데 어린아이가 어른과 같이 말을 하고 이전의 쿠마리의 행적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는데도 다 알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뽑히게 된다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쿠마리의 어머니도 정숙하고 몇 가지의 덕목을 갖춘 어머니에게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굉장한 조건을 갖춘 여자아이만이 쿠마리가 될 수 있단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신’이라서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섬기게 되나 초경을 시작하면 신의 능력이 없어진다고 여기기에 쿠마리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쿠마리로 살면서 일체의 바깥 생활을 하지 못했고, ‘살아있는 신’으로 살았던 사람이기에 결혼하기도 힘들고, 이후 사회 적응도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면에서는 평생 먹고 살만큼의 재물을 갖고 나오기에 사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하는데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어 사는 삶이 어떨까 궁금하다.
현재는 그런 쿠마리들의 삶을 위해 개인교사를 두거나 학교생활을 하게 한다던지, 나름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고 하나 청소년기를 신으로 살면서 구별된 붉은 옷과 구별된 음식들만 먹던 신이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방송에서도 쿠마리의 삶에 대한 여러 고충들을 소개하는 것도 보았는데 실제로 만나봤던 쿠마리여서 그들에 대한 이해는 되나, 그들만의 문화와 종교를 머리만으로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각종 신들에게 줄 꽃과 향초들이다.
여기도 궁과 마을이 함께 살았음을 보여준다.
시바 파르바티 사원이다.
대부분 한 건물에 하나의 신을 두고 섬기는데 여기만 부부 신을 섬긴다.
이 두 신은 시바와 파르바티 부부 신인데 마치 왕과 왕비의 모습이다.
어딜 가나 비둘기들이 많아 ‘보드나트 사원’에서는 남편의 어깨에, 그리고 이곳에서는 머리에 비둘기 똥을 맞아 유난히 많은 비둘기들을 꺼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생각하기에 섬기는 차원에서 열심히 모이를 주어 엄청난 비둘기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데 관광객들에게는 너무 많은 비둘기들이 그저 공포의 대상이다.
여긴 실제로 왕이 기거하던 곳이고 제사를 드리던 곳이라서 외국인은 안 된다고 하는 곳인데 능력 있는 가이드 덕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 서 있는 수호신인 '원숭이 신'인 '하누만'인데 많은 음식들을 가져다 비벼서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둥그런 부분이 배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란다.
이들은 신에게 늘 먹을 걸 가져다주기에 모습들이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군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출입문의 입구는 여러 신들의 모습이 있고, 안에는 역대 왕들의 사진들이 있다.
힌두사원(왼쪽 사진)과 동물을 잡았던 곳이다.
이곳에서도 하루에 350여 마리의 동물을 잡아 바쳤다고 한다.
150년 된 보리수나무다.
나무의 잎사귀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서 하트를 만들게 된 계기의 나무라는데 150년 된 나무의 중앙에다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래도 살아있는 나무가 신기하다.
우리나라의 궁과는 다르게 시장이나 마을의 모습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과거의 궁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은 모습과 그 안에 ‘살아있는 신 쿠마리’까지 존재하고 있어 한 마디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더구나 설명이 없으면 뭐가 뭔지 몰라서 더욱 엉뚱한 스토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건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 신’이라는데 그 밑에 힌두신이 누워있어 현재는 괜찮다고 한다.
힌두신이 '악귀 신'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 ‘악귀 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전에는 5,000마리의 물소를 잡았지만 현재는 1년에 한 번 한 마리의 동물을 잡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날도 종교 명절을 맞아 여기서 동물을 잡고 있었는데 내가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도 염소 한 마리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잡고 있어서 여기에 머무는 내내 박타푸르처럼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에필로그
이것으로 네팔 여행의 모든 일정을 마친다.
인도에서 힌두교도들의 겉모습을 보았다면 네팔에서는 그들의 삶과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면의 모습을 본 것 같다.
마치 성경에서 구약시대의 삶을 보는 것처럼 제물을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신앙, 그러면서도 지금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사후세계를 위한 그들의 종교생활은 이해가 되지 않는 점들이 많았지만 마음의 간절함만큼 열심이었던 모습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이 택한 종교와 삶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비록 넉넉하지 못해 어려운 삶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늘 신에게 감사하고, 하루의 시작은 무조건 신과 함께 하는 것부터 하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마침 종교행사기간에 방문하게 되어서 더 깊숙이 네팔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방문에도 친절하고 늘 웃는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60여 개국이 넘는 많은 나라를 남편과 함께 여행을 했지만 네팔은 시간이 오래되었음에도 돌에 새기듯 뚜렷하게 장면들이 남아있다.
때마침 교회로 인해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기의 방문이어서 더욱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이 요구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종교라는 것이 결국 자신의 구원에 대한 것인데 우리는 내가 믿는 신이 아닌 늘 타인으로 인해 낙담하고, 좌절하게 되는데 네팔의 방문은 그런 고민들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었고, 그런 결정으로 편안하게 교회를 옮길 수 있었던 곳이라 비록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구원과는 거리가 멀고 결국 그들을 품고 기도해야 하는 숙제가 내게 남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서 종교인으로서 많은 자세를 배우게 된 곳이다.
기회가 된다면 또 방문하고 싶은 나라인 네팔, 가이드였던 댄디가 한국 돈 80만 원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한국 돈의 가치가 없다며 고민을 해서 남편이 달러로 바꾸어주자 무척이나 기뻐하며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우리나라 돈이기에 우리는 돌아가서 한국에서 쓰면 된다고 하는데도 마치 거저 준 것처럼 고마워했던 댄디의 모습도 나 스스로를 겸손케 하였다.
우리는 당연한 것은 상대방이 미안하다는 말에도, 고맙다는 말에도 별 감흥이 없는데 그런 사소함에도 맘껏 표현을 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다음에 방문하면서 무채를 써는 것이 힘들다 했던 것이 생각나 채칼과 좀 더 수준 있는 한국어 공부를 위해 한국어 교재를 사다 주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댄디에게 좀 더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 채칼과 고급 어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교재들을 준비해 가서 다시 또 만나고 싶고, 지진 이후 잘 복구가 되었는지 그곳의 문화재와 그들의 삶의 전부였던 종교시설은 괜찮은지 두루 걱정되는 마음과 그럼에도 잘 지내기를 바라본다.